사물의 소멸/한병철
작성자 블라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사물의 소멸/한병철
이미 '피로 사회'로 유명한 한병철 교수님의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서사의 위기'라는 책을 알게되어(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보다 그가 쓴 많은 책들 중에서 '사물의 소멸'이라는 발견하였습니다. '읽었다'가 적절하지 않지만(철학교수인 저자답게 철학용어와 더불어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들과 내용들이 힘들었습니다.), 나름 노력하며 손에 쥐고 있었기에 읽었다 하겠습니다.
'서사의 위기'처럼 제목에서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 듯 했습니다. 사물의 소멸... 제목만으로도 뭔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짧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던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을 것 같아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습니다. 딱 디지털, 아날로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얼마 전, 딸과 이야기하다 자기가 즐겨보는 유튜브 영상이 유튜브를 볼때마다 자주 뜨는 걸 보고서는 그 영상이 요즘 인기가 있고, 많이 업로드 된다고 하길래, 그건 '알고리즘'때문이라 얘기해주었습니다.
'알고리즘? 그게 뭔데?'
'어? 알고리즘?.. 어... 그게 뭐냐면...'
갑작스런 질문에
'그거 왜 요즘에 인공지능이... 블라블라블라~~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검색어를 검색하면... 블라블라블라~~~ 아빠가 야구 영상 보면 그게 ai가 인식해서... 블라블라블라~~~... 어 이사람 야구에 관심있나 보네 해서 야구용품 광고영상도 같이 보여주고... 블라블라블라~~~ 그래서 너 한테도 그 영상이 많이 뜨는거고.... 그래서 이게 좋으면서도 무서운거야...' 라며 초등학생 딸에게 설명을 하였는데.. 이해했을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얼마 전 점심때도 직원들과 점심을 먹는데..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요즘엔 음성 인식으로도 작동하는 기기(핸드폰, 노트북)이 많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ai가... 그래서 검색한 적도 없던 것들이 갑자기 광고영상에 뜬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는 거죠.. 통화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이 기기들이 듣고 있다가 화면을 켜는 순간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겁니다. 가끔 아이폰에 있는 '시리'가 ㅅㄹ발음이 들어가는 단어를 잘못 듣고는 시리가 갑자기 '네!'라고 대답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지만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물의 소멸'에서는 이런 일들을 언급하며, 정보가 넘쳐나서 좋은 세상인 것 같지만, 오히려 '감시'를 당하고 있는 위험한 세상이라 이야기해줍니다. 수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데,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그 보다 그 수 많은 정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를 뿐 아니라 그걸 쉽게 취득할 수 있어 어떻게 사용이 될지 아무도 모르고, 통제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 위험하다 합니다.. 우리의 '편리'(시리처럼 음성으로 조정이 가능한, 궁금한 건 검색만 하면 다 알려주는, 고생하지 않고도 ai가 글도 써주고, 위로의 말도 해 주는 등등)사 '감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또한, 이 책에는 인터넷과 같은 가상의 공간으로 인해 관계의 단절, 공동체의 파괴에 대해서도 걱정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를 쫓아 질주하지만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두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온갖 곳으로 달려가지만 단 하나의 경험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기억을 되짚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지만 타자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보는 존속과 지속이 없는 삶꼴을 발전시킨다."(p.19)
끊임없이 소통하지만(카톡 단톡방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반갑하게 인사하고 친밀하게 이야기나누지만) 공동체에는 속하지 못하고, 엄청난 데이터들을 검색하고 저장하고 하지만 기억은 하지 못하고, 팔로우와 팔로워의 관계를 맺지만 그들과는 마주치지 않음으로 가상의 관계만 이어가는... 마치 차를 타고 열심히 달려 이 먼 곳까지 왔지만, 단하나의 경험도 단 하나의 풍경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
디지털이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듯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상호감정(아날로그)의 교류가 필요없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아니 너무 무섭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로봇, ai와 함께 지내는(영화에서처럼 그들에게 지배당하거나, 살기위해 그들과 전쟁을 치뤄야 하는)세상이 되지는 않을지 웃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물의 소멸을 위해, 아날로그의 부활을 위해 딸아이에게 저렴한 '필름'카메라를 하나 선물했습니다. 필름카메라의 감성을 느끼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 사진 한장을 만나기 위해 많은 시간과 그 시간동안의 기대(?)감을 느껴보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제 '서사의 위기'를 손에 쥐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