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지나가는 것들
작성자 블라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이런 생각 해 보신적 없으신가요? 이 넓은 길을 걷는데 왜 하필 저 사람과 부딪힐 뻔해서 내가 양보를 해야하는가, 저 차와 내 차는 왜 이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을까, 내가 기다리던 버스의 기사님과 승객들은 그 시간에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지하철에 앉았을 때 맞은편에 보이는 그 사람은 나와 어떤 관계일까... 좀 쓸데 없는 생각들이기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스쳐지나가는 것들(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간 그 곳에서 나를 만났고, 나와 그것들에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한 두번이냐 하겠지만, 지금 나와 함께 하는 것들과 사람들도 결국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것들이기에 얼마나 오래 함께 하는가의 문제이지 결국 헤어져야 한다는 마지막은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지금의 친구, 가족,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길에서 부딪히는 사람도 모두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들이지요.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여년 함께 했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갔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 자리가 점점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대단한 일을 해 준 것도 아니고 없어서는 안 될 사람도 아니었음에도 그 자리에 그가 없다는 것이 크게 다가온다 했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고 안정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을텐데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 각자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다 10여년의 시간이라는 하나의 '점'에서 나와 잠시 지내다가 다시 그의 방향으로 나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했습니다. 10여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결국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들'..
길에서 부딪힐 뻔 했던 그 사람과 10여년을 함께 했던 그 사람.그 시간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다 만난 사람.. 헤어짐의 허무함이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점'에는 상당히 그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이어령 교수의 '빵만으로는 살수없다'에서 이어령 교수는 '십자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가로선과 세로선이 수직으로 만납니다. 수직으로 지나는 선과 수평으로 지나는 선, 그 둘이 만난다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중략) 십자가로 만나는 그 점, 그 부분은 수직선과 수평선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중략)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수직선과 수평선은 오로지 딱 한번 만날 뿐입니다.'
오로지 딱 한번 만나 만들어지는 십자가의 그 한 점. 거기엔 수직선과 수평선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합니다. 잠시 스쳐지나간 그 사람, 10여년이라는 시간(잠시)을 스쳐 지나간 사람(수직)에게도 나(수평)의 무엇인가가 포함되어 다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십자가는 그 한 '점'이 하나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수많은 그 한 '점'이 있습니다. 그 한 '점'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할 듯 합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다 수 많은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그 곳에도 그 한 '점'이 보였습니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발자국들이 방향이 다르게 밟혀지기도 했고, 몇 발자국 같은 방향으로 가다가 흩어지기도 했고, 내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계속 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스쳐지나가는것들', 그 '점'을 어떻게 지내느냐,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하느냐가 우리의 삶을 만들고 '나'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자체가 바로 '내'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