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19호실에 초대할 각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작성자 은진송
남의 연애를 도대체 왜 봐?
결혼은 19호실에 초대할 각오, 이번 생은 처음이라

누구에게나 19호실이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지호가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책으로 극 후반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텍스트입니다.
지호: 한 부부가 있는데요. 완벽한 부부에요. 남들이 보기에도 부족함 없고 자신들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 그런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해요. 그래서 남편이 2층에 아내의 방을 만들어줘요. ‘어머니의 방’ 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런데 어느새 그 방에도 아이들이 드나들게 되고 가족들도 출입하면서 그 방 역시 또 하나의 거실이 되어버려요.
세희: 그래서 그 아내는 어떻게 하나요?
지호: 그래서 그 아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싸구려 호텔에 가족들 몰래 방을 하나 구해요. 그리고 가끔 몇 시간씩 그 방에 혼자 머물러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방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세희: 그 방은 완벽하게 혼자인 자신만의 공간이니까요. 결혼을 한다는 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진다는 거니까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죠. 충분히. 좋은 얘기네요.
지호: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죠. 사실 그 책, 읽으면서 세희씨 생각을 했어요. 그러셨잖아요. 인생에서 책임질 수 있는 건 이 집과 고양이 그리고 자신 뿐이라고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거라고. 그때는 저도 그 말이 와닿았거든요. 저 역시 이 방 하나 책임지기도 힘드니까요. 근데요.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을까요?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세희: 글쎄요. 외롭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살았던 것 같네요. 타인을 견디고 부딪히기 보다는 혼자인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이 19호실은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이자 주제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집’을 매개로 남녀주인공의 관계가 시작되고, 주변인물들도 ‘집’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얽힌 남녀주인공은 한 집에 살면서도 사랑하지 않아서 서로의 19호실을 존중할 수 있었고 이는 만족스러운 동거로 이어졌지요. 그러나 지호와 세희가 사랑하게 되자 오히려 한 집에 산다는 사실에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둘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가끔 인간이 참 오만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 결혼할 사람, 연인, 배우자, 평생을 함께 할 가족과의 관계는 노력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죠. 결코 그렇지 않음에도, 그 관계만큼 노력해야하는 관계가 없는데도 말이죠.
작중에 삽입된 또 다른 문학 작품, 정현종 시인의 <섬>에 이런 시구가 등장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함께한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며, 더욱이 결혼으로 '가족'이 된다는 건 '나'와 '우리'를 어떻게 타협해 나갈지를 고민하는 진지한 과정이자 결정인 셈입니다. 사랑할수록 노력이 필요하고 필연적인 노력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상대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죠.
세희와 지호는 이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기를 택한다. 그들은 서로의 19호실을 열었음에도 각자의 19호실을 인정하기로 합니다. 그 공간을 넘나들면서도 보장하며 그리하여 공존하기로 합니다. 그들은 결혼이 그저 사랑의 감정이나 제도만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탁하며 존중하는 노력이 핵심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결혼 생활의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