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서로의 19호실을 열고 또 존중하는 일 <이번 생은 처음이라>

결혼이란 서로의 19호실을 열고 또 존중하는 일 <이번 생은 처음이라>

작성자 집과둥지

로맨스물이 가르쳐준 것들

결혼이란 서로의 19호실을 열고 또 존중하는 일 <이번 생은 처음이라>

집과둥지
집과둥지
@user_mg8ux4d2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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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19호실이 있다. 아무리 가까워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방. 아무리 편해져도 초대할 수 없는 그런 방.
- <이번 생은 처음이라> 중에서

흔히 사랑의 종착지처럼 여겨지는 결혼은, 다시 생각해보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일 것이다. 결혼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제도화한다. 따라서 '나의' 삶도 곧 '우리의' 삶으로, 제도를 따라 재편된다. 그렇게 재편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공간'이다.

tvN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집이 필요한 여자 주인공 지호와 집 대출금을 갚는데 모든 생활에 맞춰져 있는 남자 주인공 세희의 로맨스가 중심인 드라마이다. 둘은 가치관이 잘 맞고, 방과 월세가 필요하다는 서로간의 조건이 잘 맞아 결혼을 하게 된다. 작품은 감정 없이 시작한 결혼이 감정이 생기면서 오히려 결혼 자체가 불편해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공간에 대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 | 연출 박준화 남성우 극본 윤난중

누구에게나 19호실이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지호가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책으로 등장하여 극 후반부에서 활발히 개입된다. 책의 내용을 극중인물이 읽음으로써 인용하는 방식과 극중인물이 대화하며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삽입되었다.

지호: 한 부부가 있는데요. 완벽한 부부에요. 남들이 보기에도 부족함 없고 자신들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 그런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해요. 그래서 남편이 2층에 아내의 방을 만들어줘요. ‘어머니의 방’ 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런데 어느새 그 방에도 아이들이 드나들게 되고 가족들도 출입하면서 그 방 역시 또 하나의 거실이 되어버려요.

세희: 그래서 그 아내는 어떻게 하나요?

지호: 그래서 그 아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싸구려 호텔에 가족들 몰래 방을 하나 구해요. 그리고 가끔 몇 시간씩 그 방에 혼자 머물러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방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세희: 그 방은 완벽하게 혼자인 자신만의 공간이니까요. 결혼을 한다는 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진다는 거니까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죠. 충분히. 좋은 얘기네요.

지호: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죠. 사실 그 책, 읽으면서 세희씨 생각을 했어요. 그러셨잖아요. 인생에서 책임질 수 있는 건 이 집과 고양이 그리고 자신 뿐이라고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거라고. 그때는 저도 그 말이 와닿았거든요. 저 역시 이 방 하나 책임지기도 힘드니까요. 근데요.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을까요?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세희: 글쎄요. 외롭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살았던 것 같네요. 타인을 견디고 부딪히기 보다는 혼자인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이 19호실은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이자 주제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집’을 매개로 남녀주인공의 관계가 시작되고, 주변인물들도 ‘집’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얽혔지만, 서로의 19호실을 지켜주던 남녀주인공이 제도로서의 결혼이 아니라 사랑으로서의 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들의 19호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둘은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서로의 19호실을 존중할 수 있었다. 지호와 세희는 고민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완벽하게 보장되어 왔던 나만의 공간과 그 공간에 오롯이 존재하는 '나'를 사라지게 만드는 거라면, 그게 우리의 사랑을 위협할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을 지속해야 할까?

결혼은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함으로써 공존하는 것

가끔 나는 인간이 참 오만하게 군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 결혼할 사람, 연인, 배우자, 평생을 함께 할 가족과의 관계는 노력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작중에서 삽입된 또 다른 문학인 정현종 시인의 <섬>에는 이런 시구가 등장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함께한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며, 더욱이 결혼으로 '가족'이 된다는 건 '나'와 '우리'를 어떻게 타협해 나갈지를 고민하는 진지한 과정이자 결정이다.

세희와 지호는 이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기를 택한다. 그들은 서로의 19호실을 열었고, 각자의 19호실을 인정하기로 한다. 그들은 결혼이 그저 사랑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탁하며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걸 깨닫는다. 지금까지 집을 소재로 나만의 19호실을 존중하는 과정과 공존의 핵심을 말하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