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성장통에 관하여 <청춘 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우리 모두의 성장통에 관하여 <청춘 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작성자 집과둥지

로맨스물이 가르쳐준 것들

우리 모두의 성장통에 관하여 <청춘 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집과둥지
집과둥지
@user_mg8ux4d2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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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장벽 중에 장벽인 애니메이션. 청춘 돼지와 바니걸이라뇨... 하지만 제목 장벽을 살짝쿵 뛰어넘으면 나만이 아는 나의 아픔을 돌아볼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청춘 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꾸지 않는다>는 학원 로맨스물의 외양을 하고 우리가 살아오며 겪는 불안과 상처를 어떻게 잘 아파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은요

원작 카모시다 하지메 애니메이션 감독 마스이 소이치

사실은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

제목에 등장한 '바니걸 선배'인 마이와 주인공 사쿠타의 썸타기로 시작하는 <청춘 돼지>는 의학적인 증거가 없는, 그리고 현실에도 없는 '사춘기 증후군'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사춘기 증후군 때문에 생긴 현상들을 주인공이 해결하는 식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게 주된 서사이다. 이때 사춘기 증후군은 일종의 상징이나 비유로 봐야 적절하다. 예컨대 마이는 유명 아역 배우였으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게 되고 결국 사람들은 마이가 존재해 있어도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마이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서' 바니걸 옷을 입고 돌아 다닌다.

이처럼 작품은 사춘기 증후군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사춘기 때-혹은 그 나이가 아니라도 한 뼘씩 커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고민과 감정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현상을 '증후군', 즉 병의 증상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사춘기의 질풍노도와는 조금 다르며, 증상이 신체화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신체적 성장통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성장통'의 의미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지난함을 돌보고 돌아보며

만약 사춘기 때, 학창 시절에, 10대 때 할 법한 고민이 병이 된다면 어떨까? 만약 내가 나로 서기 위한 고민들이 병이 된다면 어떨까? 그 병이 증상으로 나타난다면 어떤 형태일까? 고민들에 기인해 기이한 증상들이 발생한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력이 기반이 되어 내러티브가 구성되었다.

​작품에서 묘사하는 병화(化)된 고민들은 꽤나 심오하다. 에피소드는 차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다면, 친구들로부터 소외된다면, 죽는다면, 트라우마로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형제자매와 비교 당한다면,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면, 이라는 고민에 대한 상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으로 인해 발생하는 등장인물들의 증상들을, 전혀 사춘기스럽지 않고 세상만사 관심 없어 보이는 주인공을 필두로 해결한다. 해결은 마법이나 판타지적 설정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고민을 가진 당사자들이 자기의 고민을 스스로 이겨내면서 이루어진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상황은 분명 필요하지만, 결국 해결은 그 자신에게 맡겨진 셈이다. 마치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가 겪어낸 그 시간이 그 자체로 의미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가벼워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지난했던 성장에 전하는 위로와도 같은 작품, <청춘돼지는 바니걸 선배의 꿈을 꾸지 않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