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에서 온 진옥: 대북제재가 국경 지역 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
작성자 ehwa
대북제재가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회령에서 온 진옥: 대북제재가 국경 지역 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
회령은 북한에서 김정은의 할머니인 김정숙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최고 권위자 할머니의 고향이기에, 여타 규모가 비슷한 다른 지역에 비해 인프라가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선전하는 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도시이다. 또한 회령은 지리적인 위치를 볼 때 중국과 밀거래가 용이한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두만강 폭이 좁아 중국의 큰 도시인 도문시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다. 대북제재가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알기 위해, 20대 초반까지 회령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진옥과 인터뷰를 하며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북한 정권이 제기능을 못해 생겨난 신흥 부자/돈주 계급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배급이 끊기면서, 먹고 살기 위해 중국과 소규모로 교역하는 보따리 무역상이 생겼다. 많은 주민들이 장사에 뛰어들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주민들 간 경제 활동도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 활성화, 소비 문화 변화, 개인의 자율성 확대 등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돈주'라고 하는 신흥 자본 계급이 생겨났다. 돈주는 자금력이 있어, 지역 장마당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서비스업을 하거나 크게는 지역을 뛰어 넘으며 유통업을 통해 부를 쌓은 계급을 의미한다. 회령에서도 돈주들의 경제력이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진옥의 부모님도 장마당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했고 수완이 좋아 부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지칭하는 전형적인 돈주라고 할 수 있다. 진옥의 부모님은 자금력과 주민들의 깊은 신용을 바탕으로 석유 장사를 했다. 진옥은 북한 주민들에게 석유 제한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주었다.
석유가 가장 많이 필요한 의외의 산업인 농업분야
“북한에서 가장 기름(석유)을 많이 소비하는 게 군수(군대)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군수가 아닌 농업에서 기름이 가장 많이 소비돼요. 왜냐하면 한국처럼 고차원적으로 농업 기술력이 발전된 곳은 기계가 농사를 지어서 농업 생산량을 가져오는데 북한은 (대북제재로 인해) 석유 수급이 어려우니 인력에 의존한 농사를 짓고 있어요. 밭에 거름을 주고 모종하고 수확까지 모든 걸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거죠. 저는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대북제재는 실패했고 북한 주민들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을 해요."
진옥이 말했듯, 국가 발전에 중요한 자원을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석유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석유를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외부의 지정학적인 요인과 그로 인한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은 1980년대 후반까지 중국, 소련, 이란으로부터 매년 180-300만 톤의 원유를 수입했으나, 2010년 대북제재의 여파로 그 양은 20-30만 톤으로 하락했고, 2017년에는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10만 톤 미만으로 하락했다. 한국의 연간 총 석유 수입량은 약 5,000만 톤인데, 이와 비교하면 북한의 원유 수입량이 얼마나 낮은 수치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대북제재 중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석유 수입 제재는 북한의 핵 포기 및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함이고,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국제 사회의 연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석유 수입 제재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심화되고 있다.
한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북한의 농업 생산량
북한 식량 부족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기준에 따르면, 북한은 연간 659만 톤(1인당 150kg)의 곡물이 필요한데, 2023년에는 필요량의 약 17%인 109만 톤의 식량이 부족했다고 추산한다. 대북제재로 인해 농업 생산에 필수적인 비료, 농약, 농기계 등의 수입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낙후된 농업 기술과 노동 집약적인 방식으로 인해 단면적당 농산물 생산성이 매우 낮다. 현재까지도 밭 개간에 소와 인력을 이용한다.
1998년의 유엔개발계획의 조사에 의하면 농업 현장에서 운행 가능한 농기계 동력은 보유량의 20%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더해 대북제재로 비료, 농기계 등의 수입이 제한되면서 농업 생산량 감소와 생산물의 품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1인 농업 생산량을 비교 분석했을 때 북한은 1인당 1.5톤, 남한은 1인당 5.2톤으로 약 3.5배의 차이를 보인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인해 군인들도 밀수에 동참
식량난 속에서 주민들과 군인들까지 중국과의 밀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군인들도 군량미나 필수품 지원을 국가로부터 지원 받지 못해 중국에 송이버섯 등을 밀수하고 있다고 한다. 인공재배가 불가능한 자연산 송이버섯은 중국에서 인기가 있기 때문에 여름 한 철 수확해 중국에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작물이다. 송이버섯 등을 팔아 돈을 번 후,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한다. 진옥은 말한다.
“군인들이 중국 상인들한테 밀수로 송이버섯을 팔아 생필품을 사요. 치약까지 다 거의 한국의 송염 치약 있잖아요. 그리고 한국 고추장까지 밀수로 수입해서 사용했었어요.”
배급이 끊기고 모든 구성원이 자급자족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북한의 현실을 반영한 현상이 아닐까? 군에 공급되는 군량미도 턱없이 부족해 군인들도 일반 주민과 밀수 시장에서 경쟁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게 현재 실정이다.
하지만 대북제재 이후 북한 정권이 외화 벌이를 위해 주도적으로 밀수에 가담하면서 주민들의 밀수 행위를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다. 당국이 허가한 소수만 중국과의 밀수가 가능하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중국과 밀수나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이후 국경이 봉쇄되면서 중국과의 밀수 및 무역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최근 회령 주민들이 고립상태에 빠져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대북제재는 세상과의 교류를 재개하고 언젠가 해외로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북한 주민들의 희망에 재를 뿌리는 것은 아닐까? 현재 북한 주민들은 내일의 희망이 없는 단절과 고립 상황에서 오늘을 견디고 있다. 과연 지금 당장 끼니 해결이 힘든 사람에게 당국에 저항하여 목소리를 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출처]
김규철, 《북한의 석유 교역 분석과 정책적 시사점》 (세종: 한국개발연구원, 2022), p. 9.
“여전히 소가 쟁기질...자칭 ‘장군님’ 욕심에 욕보는 북녘땅 [이충우의 소소한 관심],” 매일경제, 2023.04.27.
통계청, “북한통계”
“북한군 10명 중 9명 군내 사망사고 경험... 식량 부족도 심각,” BBC 코리아, 2021.03.30.
“먹을 것 없어 극단적 선택…회령시, 주민 식량부족 사태 긴급회의,” DailyNK, 2022.03.16.
본 아티클 프로젝트는 여성정치연구소 2023년 소모임지원 사업 운영비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