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에서 온 은하: 대북제재가 북한 해안 마을 어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작성자 ehwa
대북제재가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신포에서 온 은하: 대북제재가 북한 해안 마을 어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북한산 맛 좋은 수산물, 인근 국가에서 인기
명태가 유명한 신포는 북한 최대의 수산물 생산지다. 신포에서는 명태, 가자미, 도루묵, 낙지, 멸치, 대구, 방어 등 다양한 어류가 잡힌다. 러시아의 차가운 해류가 흐르는 오호츠크해가 가까운 덕분이다. 북한산 수산물은 인근 국가인 일본, 한국,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 일본에서는 북한 수입품 1위가 북한산 어패류일만큼 인기가 높았다.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게와 문어, 오징어 등 북한산 수산물을 많이 찾았고, 특히, 중국에서는 북한산 수산물이 30-40% 이상 가격이 비싼데도, 완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깨끗한 바다와 자연산 수산물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통조림처럼 가공된 상품도 인기가 있었다.
수출이 잘되면 주민들도 대환영
신포에는 수산물을 취급하는 냉동 공장, 통조림 공장 등이 있는 ‘수산사업소’가 있다. 은하는 “지역 내 2-3만명이 수산사업소에 고용되었다”고 기억했다. 북한 정권은 수출을 목적으로 수산사업소를 통해 각 고깃배에 계획량을 할당하곤 했다. 어부들은 수산사업소 계획량을 채우고도 수산물이 남으면 가져갈 수 있었다. 주민들은 계획량만큼 정부에 지급하고, 나머지는 장마당에서 판매했다. 할당된 계획량보다 더 많이 잡을 경우 그만큼 장마당에서 더 팔 수 있기에, 수산물이 많이 잡히는 철이 오면 ‘눈에 불을 켜고’ 낙지(오징어)를 잡는 어부들이 많았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낙지 팔아 쌀 사먹는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외화를 벌기 위해 어업권을 불법으로 파는 북한 정권
하지만 2017년 8월, 유엔 안보리 2317호가 채택되어 북한 수산물 수입이 전면 금지되었다. 대북제재 이후 외화 획득이 시급했던 북한 정권은 자국의 바다에서 고기나 수산물을 잡을 수 있는 권리인 어업권을 중국 수산업자에 팔기 시작했다. 2016년 제재 이후 배 한 척당 2,000만 원씩, 총 300 대까지 허용해 외화를 벌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듬해 안보리 결의안 2397호가 통과되면서 어업권 판매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글로벌어업감시(Global Fishing Watch)에 따르면 북한 수역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2017년엔 900 대, 2018년엔 700 대에 이르렀다. 최근까지도 북한 정권은 1년에 약 89억 원 어치의 거액의 어업권을 판매했다.
원유 부족으로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가고 장사에 어려움을 겪는 북한 어민들
어업권 판매로 어장을 잃은 어선들은 한정된 수역에 몰려들었고, 좁은 수역에서 어획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형어선, 소형어선, 철선과 목선 등 가릴 것 없이 오징어나 물고기를 잡으러 가면서 해난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군부대 소속의 어선들은 민간 어선에 접근하여 어획물과 배의 연유(석유)를 강탈하곤 했다. 수산사업소 소속의 어선들은 윗선에서는 할당량을 채우라는 독촉을 받고, 바다에서는 군부대 어선에 어획물을 뺏기곤 했다. 그러자 수산사업소 어선들은 어민들의 소형 어선을 공격, 어획물을 강탈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어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더 먼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대북제재 이후 기름(석유)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배를 움직일 원유는 없었지만, 오징어나 물고기를 잡으려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민들은 하나의 큰 철제 모선에만 원유를 주입한 뒤 여러 척의 소형 목선을 밧줄로 연결하여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선이 난파되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어민들이 늘어났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에서 ‘북 추정 난파 목선'이 발견되는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 11월 24일 아키타현 해수욕장에서 발견된 목선 갑판에서는 20-50대로 추정되는 시신 여덟 구가 발견됐다. 2019년 12월 28일에도 아홉 구의 시신을 실은 목선이 일본 북서부 사도섬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북-러 국경에서 30여km 떨어진 연해주 포시에트 해안에서는 북한 선적으로 추정되는 난파선 수십척이 발견되었다. 원해로 이동해 조업하던 중 소형 목선들이 침몰하거나, 고장이 나 해류에 떠내려가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나간 바다에서 성공적으로 낙지를 잡아 돌아오더라도, 도시로 나가려면 차를 움직여야 하는데 기름이 없었다. 대북제재 이전처럼 낙지를 팔아 쌀을 바꿔먹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 수산업 전체를 큰 부진에 빠뜨렸다.
제재 이후 국가 주도 밀수만 가능, 숨막히는 주민과 취약계층
주민들이 장사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 까닭은 원유 부족 문제뿐만이 아니다. 대북제재와 국경 봉쇄 이후 북한 정권은 외화 획득을 위해 정부에서 허가한 기관, 단체, 개인만 중국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통제를 강화했다. 즉 국가 주도 밀수만 가능해진 것이다. 서민들이 생계를 위해 밀수를 해서 장마당에 팔거나, 중국 상인들과 직접 거래를 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은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대북제재와 국경 봉쇄 이후 시장에서 서민들이 장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예전에는 서민들이 밀수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부가 허가한 기관, 단체, 개인만 거래가 가능해요. 즉, 국가 주도 밀수만이 가능한 상황인 거죠. 그래서 더 이상 서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아요. 장사를 할 수 없어 배급에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어요. 제재와 코로나 이후 외화를 벌려는 국가가 서민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어서 그는 말한다.
“국경 봉쇄 이후 장마당이 파괴되고, 국가의 통제가 극심한 지금이야말로 대북제재가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인, 아동, 한부모 가정 등 배급 시스템 안에 있을 수 없는 취약계층의 경우 그 영향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북제재의 실효성을 검토할 때, 과연 이와 같은 북한 주민들의 상황은 고려되고 있을까?
[출처]
“신포에 설치된 KEDO 북한 사무소, 한국 외교관 2명 북한에 첫 상주”, KBS, 1997.07.28.
KOTRA, 《북일 경제관계 현황과 전망: 00’-05’ 북일 교역액을 중심으로 》(서울: KOTRA, 2006), p. 9
“[단독] '北어선 무덤' 수십척…죽음의 조업 내몬 김정은 민낯”, 중앙일보, 2023.05.11.
[출처]
북한에서 포획되는 명태의 절반은 신포에서 난다.
유엔 안보리 2317호는 북한 수산물 수입 금지에 관한 내용은 있었으나, 어업권 판매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북한 정권의 어업권 판매 이후 유엔 안보리 2397호에선 어업권 판매 금지를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