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어쩌면 당신에게 필요한 물음표, TOK

작성자 수인

국제 바칼로레아 학생의 렌즈

ep 4: 어쩌면 당신에게 필요한 물음표, TOK

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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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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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바칼로레아 학생이거나, 아니면 국제 바칼로레아 과정을 수강한 적 있다면 한국 교육과정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과목인 '지식의 이론'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직역을 해서 굉장히 딱딱하게 들리지만.. 원래는 Theory of knowledge, 줄여서 TOK 톡이라고 부른다. 이 톡 과목은 내가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다뤘던 DP 과목과는 전혀 다른 과목이다.

분명히 깍두기같은 존재인 과목이지만, IB 학생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과목이기도 하다. IB 전체 점수 환산 방법은 7점 만점 X 6개 DP 과목 + EE + TOK = 45점 이기때문에 (물론 기껏 해봤자 1-2점 정도 차이겠지만서도) 최종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TOK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요컨대 무시할 순 없는 과목이라는 거다. (이 과목에서 점수가 안 나온다면 학위 취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 요상하고도 신기한 Theory of knowledge 과목이 뭐고 왜 IB에서 이 과목을 그토록 강조하는지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일단, IB는 TOK을 이렇게 정의한다.

Theory of knowledge (TOK) plays a special role in the 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Diploma Programme (DP), by providing an opportunity for students to reflect on the nature of knowledge, and on how we know what we claim to know.

Theory of knowledge는 학생들에게 지식의 본질우리가 어떻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제 바칼로레아 과정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출처: https://www.ibo.org/programmes/diploma-programme/curriculum/dp-core/theory-of-knowledge/what-is-tok/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는 '지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다. 내가 TOK의 주제와 존재 이유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져보겠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지식이라 정의하고 말할까? 지식은 절대적인 것일까? 지식은 관점과 힘의 분배에 의해 영향을 받을까? 누가 어떻게 지식을 만들어내고, 또 어떻게 지식을 사용할까? 지식에 우위가 있을까? 등등. TOK은 학생들이 실제로 배우는 DP 과목 속 내용을 좀 더 철학적으로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사람들이 세운 '지식'이라는 지붕을 슬쩍 보는 게 아닌, 그러한 지붕이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는 거다.

내가 이 과목을 수강하며 현재까지도 계속 고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지식의 바운더리다.

예를 들어, 다수가 동의하는 믿음은 지식이 될 수 있을까? 천동설 이전 지동설이 주장되었던 때, 우리는 그 지동설을 지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냐는 거다. 또, 우리가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지식이 될 수 있을까? 종교에서 설명하는 세상의 탄생은 지식이 될 수 없는걸까? 늘 증명할 수 있어야만 지식이 될 수 있다면, 수학에서 두 점을 잇는 선은 하나만 존재한다와 같이 미리 다함께 정해놓은 것은 지식이 아닌것일까. 옛 서적에 나오는 민간요법은?

이 질문은 어째.. 고민을 할수록 더 답이 안나오는 갑갑한 질문인 것 같다.

왜 지식이론은 필수 과목이 되었을까?

이쯤되면 궁금한 게 있을 것 같다. 이게 왜 필수과목인지 의구심이 충분히 들만하고도 남는다. 한국에서 신기하게 철학 과목이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그리고 의무적으로 해본 적 없다. 나도 이런 질문형 수업이 너무 어색하다보니, 처음에는 뭐 이렇게까지 씩이나 생각해야하나 싶었다. 지식이 뭐 지식이지, 이걸 굳이 어려운 말로 꼬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더군다나 학생의 도리인 공부만 잘하면 될 것이지 뭐 이리 귀찮고 어려운 과목까지 듣나. 목구멍에서부터 불만이 터져나오곤 했다.

내가 국제 바칼로레아를 만들고 구상한 사람은 아니지만서도, 감히 지식 이론이 필수과목이 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그건 새로운 물음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업을 되돌아보며, 최종 심사에 포함되는 에세이를 준비하며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 다수의 믿음으로 이동하고 전달되는 지식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갇혀있는 사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잘못된 정보를 지식이라 굳게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던 것들에 신선한 물음표가 툭, 툭 던져져 신기한 광경을 만들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보니, 사물이 신기하게 보였다. 단순히 제로콜라 하나를 보면서도 지식의 점유 가능성과 아스파탐이 바꿔놓은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 생각했고, 한약을 먹으면서도 양약과 한약 중 어떤 지식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수십분동안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또 난해한 설치 미술을 보며 지식은 과연 순수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열린 사람이 되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과목이 지식이론이지 않았나, 조심스레 얘기해본다.

어쩌면 당신에게 필요한 물음표

나는 지금 이 시대를 초고속 정보 시대라 칭하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정보가 쏟아진다. 그에 따라 지식 전달이 굉장히 원활하고, 또 빠르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아주 빠르게 전달하고, 빠르게 지식으로 분류한다. 그 지식이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지식일수도 편향적이고 치우친 지식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도 어느순간 나를 되돌아봤을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물음표 없이 주어진 정보를 그저 받아들이고 지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신빙성도, 정확도도 크게 신경쓰지 않은채 그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지식이라 칭했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내가 이젠 잠시 멈추고 생각한다. 이 정보가 지식이 되어도 괜찮은건지, 충분히 균형이 잡혀있는지, 객관적인지. 이상하게도 신선한 물음표들과 머리를 굴리며 나의 지식창고를 서서히 채워나간다. 어쩌면 이 물음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잠시 서서 생각할 수 있는 것. 일상의 변화를 주는 것. 당연함을 흐리고 새로움을 채워넣는 것. 오늘 밤에는 당연한 것에 한번쯤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