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시집을 품에 안고 ... 가을맛 시집 6권

가을이 오면 시집을 품에 안고 ... 가을맛 시집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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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시집을 품에 안고 ... 가을맛 시집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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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길고도 맹렬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마침내 가을이다. 선득한 바람이 한결 길어진 소매 사이를 가볍게 휘감는다. 차고 단단한 가을 공기에 코 끝이 불규칙하게 뻐근하다. 공원은 산책하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웅성거림으로 빽빽하다. 그리웠던 가을의 감각이 구석구석 스며든다.

언젠가부터 가을은,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잠깐의 단계가 돼버린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짧은 순간을 더욱 가을답게 보내고 싶다. 책장에 쌓인 눅눅한 여름 먼지를 털어내고, 가을의 감각이 잔뜩 농축된 시집들을 꺼낸다. 문장 속에 웅크리고 있던 가을의 버석한 얼굴과 슬픈 얼룩이 서늘한 공기를 만나 왠지 적적해진 마음 속에 폭발한다. 가을을 가을의 마음으로 나게 하는 시집의 화학작용에 한껏 취한다. 이 취기가 가시고나면 더없이 헛헛해지겠지만, 고엽 같은 마음까지도 기다렸던 가을이다.

고독은 아직 버리지 못한 가을의 습관이자, 이번에도 눈 감아줄 가을의 특권이다. 쓸쓸하고 건조한 표정의 시집에서는 가을 냄새가 난다. 가을을 닮은 시집을 읽으며, 내게 허락된 짧은 고독을 가능한 오래도록 맛본다. 쌉싸름하고 새금한데 이따금 달콤하다. 어릴 적에는 도통 이해되지 않던 홍삼캔디와 아메리카노, 그리고 담배의 맛이 마냥 쓰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달콤쌉싸름한 가을이 왔다. 부러 고독을 읽는다.


1.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2003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진은영 시인의 첫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젊은 시인의 분노와 탄식에 눈을 따갑게 비빈다. 부조리한 세상에 시인은 화가 나고, 슬프고, 무섭지만 굳게 정색하고 시를 쓴다. 세상이 지겹고, 삶도 지겹지만, 그래도 시를 쓴다. 시도 저항의 방식이고 고발의 형태이다. 그 무엇보다 적극적일 수 있다.

진은영 시인의 젊은 마음이 굵직하게 담긴 시집이다. 진은영 시인의 유명한 시, <청혼>과는 확연히 다른 어조지만, 그럼에도 좋고, 또 그래서 좋다.


2.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 이현호

2018년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현호 시인의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많은 사랑을 받은 시집이고 시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되는 시집이기도 하다.

화자는 비어 있다. 비어 있음과 홀로 있음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태초부터 혼자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무언가를 가졌기에 결국에는 잃었고, 잃었기에 비었다.

슬픔과 고독은 공백을 메꿀 순 있어도, 부재를 대신할 순 없다. 우리는 사는 내내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불행한 운명일까? 명백한 사실이기는 하다.


3.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 손미

2019년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손미 시인의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지독한 예민함에 질식하고 만다. 시인은 모든 고통에 연루된다. 타자의 고통이 자신과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연결된 인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곧 누군가의 죽음이고, 나의 평안이 또한 누군가의 고통임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고통스럽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 어둑하고 위태로운 맨밑바닥부터, 어쩌면 지하부터 사랑하기를 시도한다.
취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4.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 이수명

2011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이수명 시인의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인간의 시선에 담긴 인간적인 위계를 허문다. 낭만으로 소재를 제한하지 않고, 혁명으로 타파한다. 익숙하지 않은 모순에 혼란스러운데, 동시에 굉장히 통쾌하다.

시인이 거부한 인간적인 낭만은 가을의 속성과는 대치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을에 읽기 좋게 건조한 문체다. 시를 꽤 좋아해 온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이 시집을 완성한다.


5. 생물성 : 신해욱

2009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신해욱 시인의 『생물성』. 계절을 불문하고 가장 애정하는 시집 중 하나이다. 또한 신해욱 시인의 팬이기도 하다.

간결하고 핵심적인 문장들에 경탄한다. 치밀한 여백까지 아껴 읽고 싶다.

'나'에 천착하는 동안 나는 너무 무거워지고, 너무 많아지고, 너무 이상해진다.
나보다 긴 나, 나보다 무거운 나, 나보다 많은 나.
너 같은 나, 나와 다른 나.
나의 삶은 과연 1인분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나에 대한 충돌과 나에서 비롯된 확장과 나를 향한 수렴이 생물성으로 설명된다.
위로의 말 하나 없이, 너무 많은 '나'를 견디는 사람을 위로해주는 시집이다.


6.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 임솔아

2017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주로 소설을 쓰는 임솔아 시인의 첫 시집이다.

세상은 괴괴하고 못된 사람들은 많다. 부조리한 사회가 첨예한 문장을 통해 드러난다. 등장하지 않는 연대를 깨달은 순간, 신속히 연대를 다짐하게 된다. 적극적인 냉소에 다급해진다.

무작정 고독한 가을에, 이유 있는 쓸쓸함과 씁쓸함을 읽는다.

By Heeseung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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