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싱가포르는 추석에 안 쉴까?
작성자 도시산책자
도시산책자의 영감
왜 싱가포르는 추석에 안 쉴까?
<도시산책자의 영감>은 제가 제가 여행 속에서 보고 들으며 떠올린 생각과 영감 중 나누고 싶은 조각들을 골라 기록하는 아티클입니다.
안녕하세요. 제 삶의 모토는 목적지는 여행, 지금껏 26개국 84도시를 산책했어요. 2001년에 태어났고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일하게 된 사회초년생입니다. 🚶♀️
모두 추석 연휴 잘 즐기고 오셨나요? 길었던 연휴 후 일상으로 복귀하여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복작복작하고 정신 없는 것이 또 명절의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저는 오늘 아침에 빠르게 평소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지난 아티클의 조회수를 보며 약간 놀랐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오늘자 뉴닉 뉴스레터를 열어보니 제 아티클이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오랜 뉴닉의 팬이자 구독자로서 뉴스레터 한 켠을 차지하다니 큰 영광입니다. 🤗✍
그러면 오늘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사실은요.. 슬프게도 지금 싱가포르에 사는 저는 연휴 기간 똑같이 출근해 평소처럼 일 했답니다. 싱가포르는 추석이 법적 공휴일(Public Holiday)로 지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싱가포르라는 국가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대목에서 약간 의아하실 것 같아요. 싱가포르의 인구 70% 이상이 중국계인데 중화권의 큰 명절인 중추절(中秋節)에 쉬지 않으니까요. (참고로 홍콩과 마카오도 중추절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의아하기도 하고 억울하여(?) 찾아보았는데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바로 싱가포르의 국가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다음 주제로 아주 진지한 여행 이야기를 준비했었는데 그래도 시기에 맞춰 오늘은 잠깐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싱가포르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입니다. 싱가포르에 오면 누구라도 하루, 아니 몇 시간만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인종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 단박에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같은 MRT를 타서 주위를 스윽 둘러보면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가 주를 이루고 저같은 한국인까지 한데 섞여있습니다. 수치로 중국계 약 74.3%, 말레이계가 약 13.5%, 인도계가 약 9%, 그리고 나머지 3% 정도를 다른 인종이 차지하네요. 그래서 걷다보면 필리핀어(타갈로그)도 자주 들리고, 주로 직장 때문에 파견 온 서양 사람도 정말 많습니다.
MRT 얘기로 잠깐 돌아가자면 정차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은 기본적으로 영어입니다. 하지만 역사 내 표기는 중국어, 타밀어(인도), 말레이언어까지 다 써져있습니다. 실제로 이 4개의 언어는 싱가포르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일상에서 실제로 공존하는 모습을 볼 때 다인종 다문화의 국가임을 실감합니다.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무심결에도 수차례 들으며 자라난 저희에게는 특히 낯선 풍경이기도 합니다.
싱가포르는 올해 59살이 되었습니다. (저도 생각보다 더 어려서 놀랐습니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넘어 온 중국과 말레이계 이민자들, 인도계 그리고 현재 금융과 경제의 허브로 성장하며 싱가포르로 모이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다양성을 지키며 다민족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강력하고도 확실한 정책이 뒷받침되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자면 ‘다언어 교육’를 소개해 보자면요. 싱가포르의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수업받지만 자신의 모국어(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 하나를 선택해 필수로 배워야합니다. 따라서 자신과 가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영어로 문제없이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 성장합니다.
지난 아티클에서 저는 지금 인도 집주인 가족분과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었어요. 언젠가 수다를 떨며 얘기해보니 실제로 가족의 두 아들도 학교에서 타밀어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납득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반드시 자신의 모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하네요(!) 단순히 개인의 흥미로 다른 언어를 선택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분들은 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 없지만 저와 얘기할 떄 빼고는 타밀어를 사용합니다. 나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 모국어라 그런 거겠지요.
지금까지 싱가포르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봤는데요. 이제 중추절이 공휴일이 아닌 이유도 예상이 가시나요? 바로 싱가포르의 (몇 안되는) 공휴일을 보면 신년, 노동절, 크리스마스같이 범세계적인 행사를 제외하고는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여러 민족이 믿는 종교가 달라 기념해야 할 행사가 다르기 때문에, 공평하게 나누어 지정하는 것으로 다양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위 사진이 얼마 전 발표된 싱가포르의 2025년 공휴일인데요. 보시다시피 Chinese New Year이라고 해서 1월 말에 설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반기의 추석 마저 공휴일로 지정해버리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쳐질 수 있기 때문에 잘 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살펴보면 불교, 힌두교, 이슬람 그리고 크리스천까지 고르게 대표적인 날을 꼽아 공휴일로 지정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석가탄신일 정도를 제외하면 종교와 공휴일 사이에 큰 연관이 없는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죠. (신생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기념할 역사적인 날이 적기도 하고요. - 관련해서는 8월의 National day가 한번 있답니다.) 더 구체적인 기념일 종류를 이번 아티클에서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궁금하시다면 해당 자료를 참고해 보세요. 👉 (참고자료)
자, 그렇다면 싱가포르에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중추절은 조용히 지나갈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연휴가 아닐 뿐 중화권에서는 크게 기념하는 행사인만큼, 한참 전부터 차이나타운 일대는 시끌벅적했습니다. 아래 사진 속 '불아사'라는 곳에도 예쁜 장식이 잔뜩 달렸고요!
회사에서도 기분 전환 차원(?)으로 중추절을 기념하는 여러 장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 투명한 물고기가 랜턴(lantern)인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이 Moon cake(월병)을 선물 받은 건데요. 저희가 송편을 먹는 것처럼 여기서는 이 동글동글한 월병을 먹습니다. 아주 달고 쫄깃해서 커피 홀짝이며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칼로리가 엄청나다는 소문을 들어서 아찔했지만요. 🤔🥮
이렇게해서 오늘은 제 개인적인 궁금증과 억울함에서 시작되었던 질문에 대해 답을 해 보았습니다. 지난 글과는 다르게 역사 수업같이 느껴져 지루하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싱가포르에 살며 다양성을 소개할만한 재미난 이야기가 생기면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저도 참 많이 배우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럼 남은 오후도 화이팅 하시길 바라며, 저는 곧 여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의 의미라는 주제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