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날씨를 묻는 일
작성자 도시산책자
도시산책자의 영감
매번 날씨를 묻는 일
<도시산책자의 영감>은 제가 제가 여행 속에서 보고 들으며 떠올린 생각과 영감 중 나누고 싶은 조각들을 골라 기록하는 아티클입니다.
안녕하세요. 제 삶의 모토는 목적지는 여행, 지금껏 28개국 85도시를 산책했어요. 2001년에 태어났고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일하게 된 사회 초년생입니다. 🚶♀️
모두 안녕히 지내셨나요? 정말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늘 많은데 진득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퇴근해서 저녁 해 먹고, 치우고, 종일 찌뿌둥했던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여 보겠다고 가까운 공원까지 산책하고 오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됩니다. 그래도 오늘은 마음을 다 잡으며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창밖을 바라볼 수 있나요? 어느 나라, 어느 지역, 몇 층인지, 실내인지 야외인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오늘 그곳의 하늘은 맑은지 또 기온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옷차림은 또 어떠신가요?
제가 있는 싱가포르는 11월 말부터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들었어요. 어떤 날은 비가 30분간 폭우처럼 쏟아지다가 금세 맑아지기도 하고요. 또는 오전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할 때까지 미스트처럼 비가 하염없이 내리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거의 5일 가까이 해를 구경한 적도 없을 만큼, 확실히 흐린 날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래도 건기 때보다는 기온도 낮아 덜 습하고, 공기도 맑은 것 같아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이 기간 동안 우산은 필수로 꼭 챙겨서 다녀야 하는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한다면요. (아, 빨래도 잘 안 말라서 힘들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이렇게 상세하게 날씨와 계절에 설명드려도 실제로 그 나라에 가서 살아보며 피부로 느끼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상상이 되거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사계절을 경험하며 자라왔지만 싱가포르는 1년 365일이 여름이라 크리스마스가 한달도 안 남은 이 시점에도 나시와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디를 가도 트리가 반짝여요.) 그러니 한평생을 싱가포르에만 살았던 사람에게 겨울을 설명한다면 그 온전한 감각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공기가 살짝 차가워질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초겨울의 시작, 추워서 이불 밖을 나가기 싫은 마음,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걷다가 길거리에서 먹는 어묵 국물 한 입같은 것들이요.
그래서인지 요즘 가족과 친구랑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가 해외에 나와있는 것이 확연이 체감되고는 합니다. 페이스톡 하는데 엄마는 수면바지를 입고 계시지만, 저는 3벌의 반팔 잠옷 중 하나를 골라 입는 순간 등 말이에요.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분명 같이 여름이었는데, 청명하고 아름다운 가을 낙엽 사진을 구경했고, 얼마 전 첫 눈 내리는 모습을 아빠가 보내주신 동영상으로 실컷 구경했습니다.
또 지금 멕시코에 있는 제 친구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그곳은 경험해보지 못할 만큼 건조하다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자다가 너무 습해서 새벽에 깬 적도 있을 정도인데, (에어컨을 싫어해서 잘 안트는 편이에요.) 남미에서는 피부가 퍼석하고 인공눈물이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걸 들을 때마다 우리가 정말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게 그 어느때보다 체감되고는 해요.
이런 순간이 불쑥 찾아올 때마다 같은 날씨를 공유하지 않는 것은 해외살이에 있어 물리적인 거리나 시차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의 거리를 만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나는 경험하고 있지 못하는 날씨를, 따라서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한쪽에게는 당연한 것을 계속 물어야하니까요. 말 끝마다 친구들에게 ‘춥다는 데 감기 조심해’라는 말을 덧붙여도 저는 그 추위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없으니까요. 싱가포르가 유독 계절이 딱 하나로 멈춰있는 곳이라 이런 생각이 더 짙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그러면서 사계절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우리 생각만큼 당연하지 않고 훨씬 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순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계절에 맞게 거리에 피고 지는 꽃을 눈에 담고,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음식들을 챙겨 먹고, 한 계절이 지나갈 때 아쉽지만 그 다음을 기다리는 설렘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요. (네, 제가 지금 겨울을 몹시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투덜투덜 아쉬움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한결같은 이곳에서 날씨 질문을 핑계로 더 자주 안부를 묻고 걱정을 나눌 수 있어 꽤 괜찮은 요즘입니다. 땀 흘리며 찍었다는 싱가포르 시내의 트리 사진을 보내주며 친구들을 웃기기도 하고요. (지금 시내 어디를 가도 캐롤이 재생되고 있답니다?) 오늘은 요즘처럼 SNS를 통해 서로에게 긴밀히 맞닿아있는 시대가 또 없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 날씨와 계절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은 지금 매우 춥다고 들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역시 상상이 안 가네요!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추위를 끔찍하게 많이 타서 막상 경험한다고 하면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게다가 기온도 차가운데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소식이 연일 들려옵니다. 싱가포르는 시차가 한시간밖에 나지 않아 저도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부디 크게 마음 다치시지 않으셨기를 바라며. 지금 계신 곳의 날씨를 마음껏 즐기시기를 바라요.
저는 다음에 다른 이야기로 곧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