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생물다양성 (2) - 세계는 총성없는 유전자원 전쟁 중
작성자 지구별시골쥐
나의 환경이야기
#4 생물다양성 (2) - 세계는 총성없는 유전자원 전쟁 중
강원도 평창에서 촉발된 한일 딸기전쟁
2024년 하계올림픽의 열기가 프랑스 파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잠시 시공간을 되돌려 내가 생물다양성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2018년 강원도 평창으로 기억을 복귀해본다. 대한민국은 2018년 건국 이래 최초로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다. 당시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여러모로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멋진 단합을 보여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최초 단일팀부터 컬링 종목이 국민스포츠로 부상하는 데 공헌한 팀 킴(Team KIM)의 은빛 활약까지 감동의 파노라마 연속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여자 컬링은 세계 강호를 차례로 꺾으며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는데, 그중 백미는 한국이 예선에서 유일하게 패한 일본과의 준결승전이었다.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 끝에 한국이 승리한 건 주지의 사실. 그런데 이 승부가 도화선이 돼 한일 양국이 신경전을 벌인 번외 경기가 있었다. 바로 '딸기 품종 논란'이다.
그 시작은 하프타임 때 일본선수단이 딸기를 먹는 장면에서 비롯됐다. 동메달 획득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딸기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어서 반했어요"(韓国のイチゴはびっくりするぐらいおいしくてお気に入りでした)라고 말한 한 선수의 발언이 이슈가 됐다.
이에 일본 농림수산성 수장 사이토 겐(斎藤 健)은 "일본에서 유출된 품종으로 한국에서 교배된 것(日本から流出した品種をもとに韓国で交配されたもの)" "선수는 일본의 맛있는 딸기를 꼭 드시길 바란다"(選手には日本のおいしいイチゴをぜひ食べていただきたい)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렇게 총성 없이 치열했던 '한일 딸기전쟁사'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한일 딸기종자의 유래
일본 농수상 발언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야생형 딸기는 고대 로마 문헌에 첫 등장한다. 현재 모습을 한 개량 딸기 품종은 18세기 후반 유럽 중부(프랑스 지역)에서 재배·보급됐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문호를 개방하면서 네덜란드산 관상용 딸기를 들여왔고, 1920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산 상업용 딸기를 수입·품종 개량해 아시아 시장을 잠식해갔다.
우리나라 딸기 첫 재배는 일제강점기 때 시모노세키 모종을 반입해 경남 밀양 삼랑진에 심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 후 딸기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1995년부터 정부 주도 하에 품종 개량에 발 벗고 나섰지만 재배가 까다롭고 병충해 문제로 연구에 난항을 겪었다. 그 결과 2005년 기준 일본산 '레드펄·아키히메'가 국내 딸기 재배품종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생물다양성 세계화의 물결#1: 자원부국의 규칙에 따라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화에 반하는 것은 중력법칙을 반하는 것과 같다"(It has been said that arguing against globalization is like arguing against the law of gravity)라며 국가간 교류가 긴밀해지고 시공간 통합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이 세계화 물결의 선봉장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한 미국이다.
특히 딸기 같은 농산물품의 국제교역 헤게모니는 미국이 쥐고 있다. 농업대국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한층 강화된' 지적재산권협정(TRIPs-plus)을 준수해야 한다. 생물자원부국인 미국은 FTA 협상시 상대국에 생물체에 대한 특허대상을 확대하고, 종자개발자에게 지적재산권이 주어지는 '1991년-국제식물신품종보호협약(UPOV, International Union for the Protection of New Varieties of Plants)' 가입을 강제하고 있다(류예리, 2018).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 물결은 한미FTA 체결로 이어졌다. 정부·기업·학계·국민(농가)이 충분히 대비치 못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1991년-UPOV 협약에 가입했다. 비록 유예기간(2년)이 있다고는 하나 일본 딸기가 국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했기에 그들 종자를 활용한 재배·수출 로열티가 매년 30억~60억 원으로 예상됐다.
생물다양성 세계화의 물결#2: 농업 위기를 기회로
2004년 <중앙일보>는 "日(일)에 로열티 주고 뭐가 남나, 딸기 농가 속 탄다"라는 기사를 통해 민·관·산·학의 참담한 심정을 보도했다. 한국 정부(농촌진흥청)는 1995년부터 시작한 딸기 품종개량 연구에 박차를 가했는데, 2005년, 아키히메·레드펄 등 외래품종 교배를 통해 '설향'(눈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딸기)과 같은 국산품종을 개발했다.
덕분에 국산 딸기(개량품종)는 현재 국내 재배면적의 90%, 품종 보급률 94.5%를 차지고 있다. 일본에 지불하는 로열티도 없다. 한일 양국은 딸기 수출 경쟁국답게 홍콩·싱가포르·태국 등지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다. 국내 품종 설향이 워낙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성이 높아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보니 일본은 과거 대비 연간 약 400억 원 수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밖의 사례가 또 있다. 1988년 일본이 개발한 '씨 없는 청포도' 품종도 국산화에 성공한 것. 일본이 품종 등록을 못한 사이 일반 포도보다 당도가 높고, 과육이 커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샤인 머스켓'의 개발·상업화에 성공했다.
국제 규정을 준수하며 합법적으로 육종(breeding)한 신품종이기에 일본에 로열티를 지급 안해도 되는 순수 한국 유전자원이다.
생물다양성 세계화의 물결#3: 총성 없는 유전자원 전쟁
이렇게 농업기술력을 확보한 한국이지만, 강대국의 생물주권 침탈에 눈 뜨고 코 베인 과거도 있었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크리스마스 나무는 과거 유출된 한반도 자생식물 구상나무에서 비롯됐고, 토종 수수꽃 털개회나무 또한 '미스킴 라일락'으로 국내 역수입되는 실정이다.
보다 뼈아픈 사실은 일제강점기동안 수많은 한반도 고유종 학명이 '일본산(Japonica, Japonenis)'으로 등재됐다는 것. 육첩방(六疊房)의 흔적이 자욱한, 돌이킬 수 없는 창씨개명을 당한 한반도 유전자원은 무수히 많다. 따라서 일본 품종이 유출됐다는 일본 농수상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을 포함한 세계 농업기술국이 그러하듯 한국 정부도 로열티 지불하고 확보한 타국 종자를 국내산과 교배 육종했고, 지식재산권 승부에서 선취했을 뿐이다.
바야흐로 일본 농업 수장이 견제할 만큼 한국 육종기술은 우수해졌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세계는 향후 생물다양성협약(나고야 의정서)과 같은 국제협약 틀 안에서 종자·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2018년 8월부터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에 관한 법률(유전자원법)'을 시행하며 대비 중이다. 웰컴 투 생물다양성의 세계화 시대!
글쓴이 기사 원본 (오마이뉴스. 2019) https://omn.kr/1jj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