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우송, 음습하게 솟아오르는 뿌리
작성자 반달가슴곰
오싹한 식물도감
낙우송, 음습하게 솟아오르는 뿌리
한국에는 어떤 나무가 가장 많이 심어져 있을까요? 흔히 보는 가로수부터 생각해보면 은행나무, 벚나무, 단풍나무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소나무도 빠질 수 없겠죠.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소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0년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심어진 나무 중 소나무, 편백나무 등의 침엽수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오늘은 소나무 중에서도 가장 음습한 곳에서 자라는 '낙우송'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최근 저는 충남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왔어요. 목련나무로 유명한 수목원인데, 한여름에 가니 목련꽃은 볼 수 없었죠. 그래도 다양한 식물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요. 뜨거운 햇빛을 피해 잠깐 연못 근처 그늘에 피신해 있다가 낙우송을 봤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나무가 아닌 나무의 뿌리였어요. 연못가의 진흙을 뚫고 석순 같은 것이 솟아 있더라고요.
뿌리가 솟아난 이유
낙우송은 해변가, 석회암, 늪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인데요, 물 속에서는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물 위로 뿌리가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기근, 공기뿌리(Aerial Root)라고 해요.
기근은 식물의 호흡을 도울 뿐 아니라 습한 땅에서 2~5m에 달하는 커다란 나무를 지탱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공기뿌리를 가진 식물은 또 있어요. 맹그로브나 난초, 담쟁이덩굴과 같은 식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죠. 남쪽 지역으로 갈수록 역동적이고 기묘한 모습의 나무를 자주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공기뿌리의 구분
식물의 공기뿌리는 식물이 자라는 환경과 중력에 순응하며 자라는지 아닌지에 따라 구별된다고 합니다.
교살자 유형: 다른 나무에 붙어 기생하는 식물 중에 공기뿌리를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 공기뿌리가 숙주를 휘감아서 목을 조르는 것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되었는데요. 무섭게도 어떤 경우에는 교살자가 숙주보다 오래 살아 남기도 한다고 해요. 대표적으로 호주 동부에 자라는 무화과 나무의 일종인 Ficus macrophylla(사진)가 있습니다.
기공포 유형: 토양이 물에 잠기는 환경일 때, 뿌리를 공기 중으로 솟아나게 하여 식물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합니다. 뿌리의 표면은 작은 구멍들로 덮여 있습니다. 낙우송의 공기뿌리, 맹그로브 나무가 속한 유형입니다.
이밖에 기생, 전파 유형 뿌리 등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식물의 생김새는 생존 전략과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에 맹그로브같은 뿌리가 나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습이 꽤 기괴하다는 사실. 흥미롭지 않나요?
서양에서는 이 뿌리가 인간의 무릎과 닮았다고 "knee root"라고 불러요. 축축한 늪에서 인간의 무릎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꽤 음침하죠. 솟아오른 물줄기가 그대로 굳어져 있는 모습 같기도 해서, 인간이 안 보는 새 나무 혼자 늪을 기어다니는 거 아닌지, 의심도 해보게 되네요.
오늘은 뿌리에 집중해서 나무 자체는 크게 다루지 않았는데요. 낙우송(떨어질 낙, 깃털 우, 소나무 송 = 落羽杉)은 보통 침엽수와 다르게 낙엽이 지는 소나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잎을 떨군 낙우송의 모습도 뿌리만큼이나 기괴한 느낌을 준답니다.(사진) 딱 학교괴담 재질.
어쨌거나 저는 낙우송을 알게 되면서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 침엽수는 왠지 춥고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랄 것 같다는 선입견이 확 깨지게 되었어요. 여러분도 비슷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낙우송(학명 Taxodium distichum)의 이미지를 구글에서 한 번 검색해보세요. 기괴하면서 신비롭기도 한, 정말이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답니다.
<오싹한 식물도감>은 가급적 우리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콘텐츠로 흔히 접하는 식물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기괴한 식물을 찾거나 제보해주시면 또 돌아올게요. 안녕.
참고
영문 위키피디아 "Aerial root" 항목
국립수목원 유튜브
모야모 어플리케이션 식물 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