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 인터뷰: 모순적인 기대를 뚫고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 🎤
원소윤 님, 어떤 사람이냐면요...

Q. 반갑습니다, 소윤 님! 뉴니커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뉴니커들 안녕하세요! 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원소윤입니다. 반갑습니다.
Q. 평소 소윤 님이 하시는 활동을 3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면 무엇일까요?
‘먹고, 자고, 싸고’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자연인으로서도 그렇지만, 창작자로서도 먹고 자고 싸는 게 중요하거든요. 인풋을 넣고, 내 안에서 시간을 들여 숙성시키고, 아웃풋을 내는 거죠. 그게 제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영희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이유: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Q. 처음 영희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신 과정이 궁금해요. 어떤 경로를 통해 참여 제의를 받으셨나요?
일단 요조 님한테서 연락이 왔고, 요조 님을 통해 오지은 님을 소개받았어요. ‘홍대 여신’과 ‘홍대 마녀’가 저를 꼬드긴 셈이죠. (웃음) 얼마나 짜릿했겠어요.
Q. 평소 요조 님과도 친분이 있으셨나요?
무사책방에서 북토크를 한 번 한 적이 있지만, 그 외에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어요. 그런데 두 분의 연락을 받고 나니까 제가 대학생 때 요조 님의 ‘기타 등등’이랑 지은 님의 ‘익숙한 새벽 세시’를 읽었던 기억이 딱 나더라고요. 마음이 가라앉고 외로울 때 읽었던 책, 내 옆에 있어줬던 책의 저자들이 나를 불러주다니 영광이었죠.
Q. 영희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소윤 님의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영희’라는 이름이 굉장히 생소했어요. 요즘에는 <나는 솔로> 식 작명 때문에 '영숙'이나 '정숙'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잖아요. 그런데 거기 영희는 한 번도 활용된 적이 없잖아요? 우선 그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철수와 영희를 보통 함께 얘기하는데, 철수는 익숙한 반면 영희는 낯선 느낌이더라고요.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영희'라는 이름을 새로 발견한 셈이죠.
요즘 이런저런 페스티벌이 많잖아요. 한 친구가 “야, OO 페스티벌 가자!” 하는데, 다른 친구가 “근데 그건 철수 페스티벌이야.”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웃음) 그 페스티벌의 이름이 되게 멋들어졌는데, 그걸 그냥 '철수 페스티벌'로 불러버리는 데에서 쾌감을 느꼈어요.
Q. ‘여성 예술가들이 한데 모이는 페스티벌’이라는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는 어떠셨나요?
워낙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마을 느낌일 듯해요. 영화 ‘미드소마’ 속의 마을 같은? (웃음) 제가 여성 창작자로 불린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왜냐하면 제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이럴 때 느끼는 거죠. “아, 나 여자구나.” 한편으로는 ‘그럼 영희페스티벌 무대에는 어떤 사람까지 설 수 있는 거지?’ 하는 경계에 대한 생각도 했고요.

Q. 보통의 페스티벌은 뮤지션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소윤 님은 코미디언으로 페스티벌에 출연할 예정이신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사실 이번에 뮤지션으로 참여하는 건데... (웃음) 장난이고요. 사실 음악이랑 코미디는 잘 안 섞이거든요. 에너지의 모드가 달라요. 음악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아주 집중하지 않아도 잘 즐길 수 있는 반면, 코미디는 일단 야외 공연이 쉽지 않죠. 집중해서 들으면서 텍스트를 따라가야 하고요. 그러다보니 한 공연에서 음악과 코미디가 연달아 나올 때 상당히 난감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사실 많이 쫄고 있어요. 라인업을 보면 앞뒤로 음악 공연이 있고, 그 사이에 코미디 공연이 들어가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Q. 그런 위험에도 흔쾌히 무대를 하시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뭐였나요?
그 위험을 한 번은 뚫어보고 싶었어요. 족족 망했기 때문에 ‘돌파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언젠가 한 번은 제 앞 순서에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공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분위기를 다 찢어버린 거예요. 그다음에 제가 올라가서 분위기를 다시 꼬맸죠. (웃음) 관객 분들이 다들 하이해져서 둥둥 떠 계시는데, 그걸 끌고 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그 위험을 제대로 돌파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있습니다.
Q. 연희페스티벌에 오는 관객들에게 갖고 계신 기대나 걱정이 있나요?
‘여자 화장실 줄이 얼마나 길까?’ 하는 걱정을 하죠. (웃음) 사실 여성분들은 정말 마음 아플 만큼 잘 웃어주십니다. 그래서 대단히 큰 걱정은 없어요.
그런데 그런 걱정은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더 가슴 찢어지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걱정. 예를 들어 넓은 광장에 혼자 서서 느끼는 소외감은 자연스럽고 익숙하지만, ‘여기는 정말 내 사람들이 많은 곳이야, 나 여기서 완전 즐길 거야!’ 하고 왔는데 어떤 부분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건 훨씬 크게 다가올 수 있잖아요. 누군가는 소외감을 느끼고 외롭겠지, 생각해요.
Q.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지만, 또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외에 대한 이야기군요.
맞아요. 사정상 못 오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그래서 저는 이 행사가 매해 돌아오는 연례 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회차, 3회차 거듭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올해는 영희페스티벌이 시작되는 첫 회잖아요. 그래서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여성 코미디언으로 살아간다는 것: “훨씬 다양한 여성 코미디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Q. 최근 국내 코미디 신이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소윤 님의 경험이 궁금해요. 남성 코미디언과 다른 특별한 지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부담이 있죠. 8년 전에 ‘씨네21’ 김혜리 기자님이 하신 말인데, 그때만 해도 마블 영화 시리즈에 여성 히어로가 ‘블랙위도우’뿐이었거든요. 누군가는 블랙위도우가 물리적으로 엄청 강하기를 바라고, 다른 누군가는 엄청 지적이길 바라고, 다른 누군가는 진정한 사랑을 찾길 바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자가 꼭 사랑을 해야 돼?’ 한다고요. (웃음) 여성 캐릭터가 한 명이다 보니까 다중의 요구가 한 사람한테 쏠리는 거죠.
저는 절대적인 쪽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씬(Scene)에 들어왔으면 좋겠고, 플레이어가 더 많이 생겨서 제 개인적인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저는 스탠드업 코미디 중에서도 ‘원라이너(One-Liner)’*라는 장르를 하는데, 저 혼자서 ‘크라우드 워크(Crowd Work)’**도 하고 원라이너도 하고 스토리텔링도 다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크라우드 워크를 하는 여성 코미디언, 스토리텔링을 하는 여성 코미디언 등 다양한 코미디언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크라우드 워크?: 코미디언과 관객이 즉흥적으로 대화하면서 진행되는 코미디 장르를 말해요. 관객의 답변이나 반응을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예외성과 즉흥성을 매력으로 꼽는 사람이 많아요.
Q. 소윤 님에게 쏟아지는 모순된 기대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있나요?
있죠. 저를 보면서 ‘너무 안전하던데?’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또 누군가는 ‘꼭 불편한 농담을 넣어야 돼?’ 하고요. 근데 이 모든 책임을 결국 제가 져야 하잖아요. 다양한 기대를 골고루 채워줄 수 있도록 여성 플레이어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Q.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같은 수식어가 실제 소윤 님 본인보다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경험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처음 코미디를 시작했을 땐 채식 농담이나 서울대 농담, 페미 농담 같은 걸 아예 안 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땐 ‘임신중절’에 대한 농담을 7분 동안 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호스트들이 저를 소개할 때 항상 ‘채식주의자’나 ‘페미니스트’ 같은 수식어를 붙이더라고요. 그 소개 뒤에 무대에 올라가게 되는데... 호스트가 던진 소개 멘트에 뻣뻣하게 굴기보다 받아칠 필요가 있었죠. 게다가 어쨌든 코미디는 엔터테인먼트니까 ‘아, 사람들이 이런 걸 내 캐릭터로 생각하는구나’ 알게 된 뒤부터 관련 농담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어요.
Q. 의도치 않았지만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같은 키워드로 주목받기 시작한 거군요.
채식주의자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엄청 소중하고 필요한 거지만, 사실 저는 이거 굉장히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최근에 뉴욕에 가서 오픈 마이크 공연을 10번 정도 했는데, 거기서는 채식이니 페미니 그런 거는 농담의 건덕지도 안 돼요. (웃음) 오히려 ‘나 여자인데, 페미니스트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게 훨씬 ‘위험한’ 농담이 되죠. 언젠가는 페미니스트나 채식주의자라는 정보값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Q. 페미니즘이나 채식은 어쨌든 정치적 신념의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무거운 소재를 농담으로 다룰 때 소윤 님 안에서 생기는 고민이나 갈등은 없는지도 궁금해요.
처음에는 고민이나 갈등이 있었어요. 근데 그건 배불렀을 때 얘기고, 지금은 고민이고 갈등이고 자시고 농담 하나하나가 너무 갈급해서 그럴 겨를이 없어요. 일단 뭐라도 만들어야 돼요. 일단 써야 돼요. (웃음)
그래도 어떤 이야기를 다룰 땐 최대한 입체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페미다, 채식주의자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제가 뭐 잘난 척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와중에도 겪는 한계와 자조와 곤란한 부분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것들을 최대한 다루려고 하죠.
Q. 사안을 입체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한다는 말씀이 인상 깊어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보면 거기서 말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사실 ‘불완전한 페미니스트’를 말하는 거잖아요. 그것처럼 저는 나쁜 페미니스트, 나쁜 채식주의자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훌륭한 농담 소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입체적이기도 하고 진솔하기도 하니까요.

Q. 영희페스티벌의 영문 계정명이 ‘forever glory and joy’잖아요. 처음 ‘영광과 기쁨’이라는 컨셉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사람들이 이 날만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게 아니고 이게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페스티벌 기간이 6월 12일부터 14일까지잖아요. 그럼 12일부터 영광과 기쁨이 시작돼서 내년 6월 11일까지 계속 이어지는 거죠. 3일 동안 기쁨을 만땅 충전해서 그걸로 1년을 살고, 또 충전하고, 또 그걸로 1년을 살고. 이렇게 너무 뻐렁치는 기획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저는 모든 게 끝나고 난 이후를 생각하게 돼요.
Q. 소윤 님이 코미디언으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영광스럽고 뿌듯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고 스탠드업이라는 코미디 장르 자체에 관심이 생겼을 때. 혹은 ‘저도 스탠드업 코미디 해보고 싶어졌어요!’ 하는 말을 들을 때. 기본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가 마이너하기도 하고, 감성에 잘 맞지 않는다는 평을 접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고 하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해요.
Q. 소윤 님이 코미디언으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거 통할 것 같아!’ 생각하면서 새 농담을 가져갔는데 진짜 딱 통했을 때. 근데 제가 정말 확신을 갖고 있는 농담이라면 농담이 안 통해도 기분이 좋아요. ‘너네가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해 뭘 알아? 이거 진짜 좋은 건데.’ 속으로 뻗대기도 합니다. (웃음) 그리고 먹힐 때까지 계속하죠. 같은 농담도 단어나 호흡을 달리하거나 더 친절하게 하면 결국 먹힐 때가 오거든요.
Q. 소윤 님은 코미디 외에도 소설책을 출판하고 팟캐스트에도 출연하시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잖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또 염두에 두고 계신지 궁금해요.
일단 지금 연극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아마 내년에 극이 올라갈 거고요. 에릭 오 감독 그리고 안담 작가와 작업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년에는 아마 영어 코미디를 열심히 하게 될 것 같아요. 외국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거든요.
영희페스티벌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잘 지내자. 그리고 내년에 또 만나자!”

Q. 영희페스티벌에 오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얻어갔으면 하시나요?
오히려 많이 버리고 가도 좋을 것 같아요. 좌절감, 우울함, 슬픔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버리고 간다고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뭘 얻어갈 생각으로 오시면 제가 부담스러우니까 그러지 마세요. 다 저한테 버리고 가세요. (웃음)
Q. 이 페스티벌에서 이것만은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는 소윤 님만의 기대 포인트를 하나만 짚어주신다면요?
저 완전 있어요. 저희 팀 이름이 ‘영희희희’인데 저와 김서연, 최예나 이렇게 3명이 하거든요. 그런데 기획자이신 오지은 님도 앞에 살짝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거예요. 저는 그 무대가 진짜 기대돼요. 지은 님과 통화를 10분 정도 간략하게 했는데 많이 웃었거든요. 원래도 본인 혼자 하는 토크를 30분, 1시간 동안 하실 만큼 경력자시잖아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소윤 님이 오르시는 무대도 살짝 스포해주실 수 있나요?
‘영희희희’는 다채로운 무대가 될 거예요.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은 완전 단독자로 하는 공연이라는 점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떤 농담을 할지 저는 알 수 없고 관여도 못 해요. 하지만 평소 그 인간들이 농담하는 스타일로 짐작하건대, 아마 서로 굉장히 다를 거예요. 플레이어들 각각의 내용도 다르고 스타일도 아예 다른, 다양한 무대가 될 거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다른 곳에서 하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농담을 많이 할 예정이에요.
Q.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모든 ‘영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려요.
영희야! 우리 잘 지내자, 그리고 내년에 또 만나자. (웃음)
왜냐하면 우리가 자주 만나는 게 아니니까,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고 데면데면하고 민망할 수도 있잖아요. 여자 코미디언만 해도 라인업이 별로 안 겹쳐서 저희끼리 마주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잘 지내자, 그리고 내년에 또 만나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 페스티벌 기간: 2026.06.12~14
- 페스티벌 장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