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느닷없이 ‘아저씨 맥주’ 기네스에 푹 빠진 이유 ☘️

Z세대가 느닷없이 ‘아저씨 맥주’ 기네스에 푹 빠진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Z세대가 느닷없이 ‘아저씨 맥주’ 기네스에 푹 빠진 이유 ☘️

고슴이의비트
고슴이의비트
@gosum_beat
읽음 16,153

아일랜드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 저는 “아일랜드는 기네스(Guinness)지!”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맥주 중에서 기네스를 가장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기네스는 마땅히 별도의 장르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네스는 건강에 좋다고 믿거든요. (‘Guinness is good for you’는 1929년에 나온 유명한 광고 슬로건이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정말로요.)

기네스가 엄청나게 인기가 높은 술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흑맥주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청량감이 있고 ‘시원하고 깔끔한’ 라거의 인기가 훨씬 높아요. 해외에서는 기네스 하면 ‘아빠나 삼촌뻘 되는 아저씨들이 먹는 술’, ‘중년의 럭비 팬들만 먹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자리 잡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몇 년 전부터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Z세대가 기네스에 푹 빠져들고 있어요. 올해 연말을 앞두고는 치솟는 인기 때문에 기네스 공장을 쉬지 않고 돌려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는데요. 영국 일부 펍에는 기네스 공급이 제한되기도 했다고. 오늘은 2024년 연말을 앞두고 벌어진 ‘기네스 대란’을 자세히 살펴봤어요.


훑어보기 👀: 난데없는 ‘기네스 대란’ 사태의 전말 🇬🇧🇺🇸

12월 초, 영국 곳곳의 펍에는 비상사태가 벌어졌어요. 기네스의 모회사 디아지오(Diageo)로부터 “기네스 공급량을 제한합니다” 하는 공지가 내려왔기 때문. 회사 측은 “지난 1개월 동안 엄청난 소비자 수요”가 몰린 탓에 사재기 등을 막고 연말까지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펍·바의 기네스 발주량을 제한하겠다고 했어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공장을 이미 풀로 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 공급을 더 늘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고요.

크리스마스 등 연말 시즌 대목을 앞두고 있던 펍들은 난리가 났어요. 영국 런던의 한 유명 펍은 기네스 맥주통 8개를 주문하려 했지만 4통밖에 주문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그러자 이 펍은 손님들을 대상으로 다른 맥주 두 잔을 마셔야 기네스 한 잔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하는 ‘기네스 배급 카드’ 제도를 시행했어요. 기네스 재고가 일찌감치 바닥 난 곳도 많다고. 

‘기네스 대란’은 영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 됐어요. 일부 언론은 늘어나는 수요를 예측하지 못한 회사 측의 준비 부족을 질타했는데요. 한편에서는 “홍보 전략 아냐?”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고.

회사 측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 아일랜드 본사에 비축하던 기네스 물량까지 영국에 공급하기로 했어요. 미국 등 북미 지역으로 보내려던 기네스도 잠시 공급을 보류한 걸로 전해졌고요. 회사 측은 “265년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기네스를 현재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어요. 그런데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전례 없는 이런 ‘기네스 대란’의 배경으로는 몇 가지가 꼽혀요. 우선 11월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이 참가한 국제 럭비 대회가 열린 게 원인으로 지목돼요. 대회 기간 동안 영국의 수많은 럭비 팬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펍으로 몰렸고, 그 결과 기네스 재고가 빠르게 소진됐다는 것.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Z세대 사이에서 기네스 열풍이 분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와요. 특히 최근 틱톡과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에서 ‘G분할(splitting the G) 챌린지’가 바이럴된 게 컸다고. 더 깊게 보면, 기네스의 유행은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Z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요. 이게 다 무슨 얘기일까요?


자세히 보기 🔎: 265년 전통의 기네스가 Z세대 사이에서 힙해진 비결 ✨

‘G분할 챌린지’의 규칙은 제법 간단해요. (1) 전용 잔에 가득 담긴 기네스를 준비한 다음 (2) 한 모금에 딱 적당한 양의 기네스를 마셔서 (3) 잔에 남은 기네스의 거품 아랫면이 기네스 전용 잔에 새겨진 ‘Guinness’의 ‘G’를 정확하게 반으로 가로지르게 만드는 것. 기네스 특유의 크리미한 거품과 검은 맥주가 만나 생기는 경계선을 단 한 모금으로 ‘G’의 가운데에 정확히 맞추는 게 포인트예요. 

이 챌린지는 2021년부터 런던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아일랜드와 미국으로도 퍼졌어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에 챌린지 영상이 끝도 없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데요. 유행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건 올해부터라고. 미국에서는 ‘split the G’ 키워드 구글 검색량이 11월에 정점을 찍었고, 에드 시런이나 니얼 호란 같은 셀럽들이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관심이 치솟았어요. 소셜미디어 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은 올해 12월 ‘split the G’를 키워드로 한 구글 검색량이 1년 전보다 7배가량 늘었다고 분석했고요. 

기네스를 소재로 다루는 인플루언서들도 활발히 활동 중이에요. 영국 런던의 펍을 돌며 “펍의 기네스 품질이 얼마나 엉망인지”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shitlondonguinness’가 대표적인데요. 기네스를 정석대로 따르지 않아 거품의 양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기네스의 맛과 품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곳들을 맹비난하는 이 계정의 팔로워는 25만 명에 달해요.

반대로 훌륭한 기네스를 마실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곳도 있어요. 이런 ‘인증’을 받은 곳은 입소문을 타며 Z세대 손님들이 몰리기도 한다는데요. 젊은 층과 여성 등 이전에는 기네스를 멀리했던 소비자들이 기네스에 푹 빠진 데에는 이런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많아요.

미국의 경우, 최근 몇 년 사이 아일랜드 문화가 부쩍 인기를 모은 게 기네스 유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어요.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아일랜드 배우 폴 매스칼,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소설 ‘노멀 피플’의 작가 샐리 루니, 아일랜드 가수 리사 오닐 등이 그 주역으로 꼽히는데요. 이들 덕분에 ‘쿨한’ 아일랜드 이미지가 자리 잡으며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오랜 아이콘 중 하나인 기네스에도 관심이 쏠렸다는 것.

기네스가 260년 넘는 역사와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브랜드라는 점도 이유로 꼽을 수 있어요. 기네스는 콜드브루와 섞은 ‘기네스 콜드브루’를 출시하고, 논알코올 주류 트렌드에 맞춘 ‘기네스 0.0’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기네스 0.0은 단숨에 영국 1위 논알코올 맥주 자리에 올랐다고. 최신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결과가 나타난 거예요. 기네스는 우리나라에서도 팝업스토어를 열고, 햄버거짜장 컵라면과 협업하는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고요.

화려하고 자극적인(?) 근래의 주류 트렌드에 대한 반발이 ‘올드한’ 기네스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어요. 내추럴 와인이나 크래프트 비어와는 달리 기네스는 ‘팬시(fancy)’함과는 거리가 먼 편인데, 그게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떠올랐다는 거예요. 기네스를 좋아한다는 건 ‘겉멋’보다는 맛과 품질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그게 오히려 ‘힙하다’는 이미지로 자리 잡은 것. ‘기네스 잘하는 펍’을 알고 있다면 ‘뭘 좀 아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도 한다고.

이런 이유들 덕분에 기네스는 고공 행진 중이에요. 미국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레스토랑·바·술집에서 판매량이 가장 빠르게 늘어난 수입맥주로 꼽히고, 기네스 맥주를 취급하는 식당·바도 확 늘었어요. 2022년 영국에서는 펍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맥주 1위에 올랐고요. 다른 맥주 판매량은 크게 늘거나 줄어들지 않은 반면, 올해 7~10월 기네스 판매량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20% 넘게 증가하기도 했다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Z세대 사이의 기네스 열풍은 무엇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Z세대의 취향이 기네스와 딱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도 나와요. 다른 맥주와는 다른 기네스만의 ‘극적인 요소’가 새로운 젊은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

사실 기네스는 꽤 까다로운 맥주예요. 정확한 방법을 지켜 따라야 하고, 캔에 든 기네스는 반드시 잔에 따라 마셔야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거든요. (기네스를 캔으로 그냥 마시는 건 범죄입니다. 정말로요.) ‘완벽한 기네스’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요. 모양도 중요해요. 거품과 맥주의 경계선은 깨끗해야 하고, 곱고 적당히 두꺼운 거품이 위에 올라가야 하는 것. 그렇다 보니 ‘기네스를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 같은 글이나 영상이 관심을 끌기도 해요.

‘@shitlondonguinness’ 운영자는 이런 기네스만의 특별함이 차별화된 경험을 이끈다고 말해요. “라거를 주문할 때는 어떤 모양으로 잔에 담길지 신경 쓰지 않죠. 기네스를 주문할 땐 달라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측하게 돼요. 그 경험을 즐기는 게 바로 기네스 문화의 핵심이죠.”

기네스는 고객의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 중 하나예요. 기네스 팬들은 “기네스를 대체할 수 있는 건 기네스뿐”이라고 말할 정도인데요. 보통 ‘흑맥주 = 기네스’로 인식되고, 다른 흑맥주는 묻지도 않고 기네스만 찾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고요.

생각해 보니 저 역시도 기네스의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맛, 크리미한 거품뿐만 아니라 기네스를 마시는 경험 자체도 즐겨왔던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 기네스 캔 맥주를 잔에 따를 때 크리미한 거품이 정확한 비율로 생긴 ‘완벽한 기네스’가 만들어지면 뿌듯한 마음에 사진을 찍고는 하거든요. 기네스가 서징 현상을 거쳐 새까맣게 변해가는 드라마틱한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을 때도 많고요.

‘클래식은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거예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유한 특징,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 등일 텐데요. 어쩌면 다소 갑작스러운 Z세대의 기네스 사랑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는 늘 새로운 걸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걸 찾고 싶어 하니까요. 지금처럼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많은 것들이 불안정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럴 테고요.


[비욘드 트렌드] 에디터의 관점을 담아 지금 우리의 심장을 뛰게하는 트렌드를 소개해요. 나와 가까운 트렌드부터 낯선 분야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비욘드 트렌드에서 트렌드 너머의 세상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매주 금요일 12시 ‘고슴이의 비트’ 레터 받아보기

👇 ‘고슴이의 비트’ 계정 팔로우하고 매일 새로운 콘텐츠 보기

방금 읽은 콘텐츠, 유익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