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여행기자, 꿀 빠는 직업 아냐?" I 여행기자의 고충 4

작성자 에디터솔솔

일이 된 여행, 여행이 된 일

3화: "여행기자, 꿀 빠는 직업 아냐?" I 여행기자의 고충 4

에디터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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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정말 오해입니다.

사실 저도 글 쓰는 것과 여행을 좋아하니, 여행기자가 되기 전에는 '꿈만 같은 직업 아닐까?' 생각했어요. 물론 달콤한 부분도 있지만 씁쓸한 점도 꽤 많다는 걸, 경험해 보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여행하며 돈을 벌고 싶거나 여행 기자가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여행기자의 괴로움(?)도 한번 살펴본 후 이 분야에 뛰어들지 말지를 결정해 보면 어떨까요?

아, 우선 먼저 '여행기자'의 '여행'은 아래와 같은 '여행'이 (대부분 거의)아님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즉, "니가 가라. 하와이." 하면 갑자기 가야 할 수도(하와이는 좋네요..), 난생처음 복불복으로 만나는 다양한 연령대와 성격의 사람들(예를 들어 타 언론사 기자나, 여행사 직원 등)과 같이 다니며 방을 써야 할 수도, 내 취향이라고는 1도 없는 여행일 수도 있습니다(회를 못 먹는데 수산시장 취재를 가야 하거나, 자장가 같은 잔잔한 노래만 듣는데 헤비메탈 축제를 가야 하는 등).

그래서 특히 주변 사람들이 '네 돈 안 쓰고 해외 곳곳을 여행 다니고 맛난 거 먹어서 좋겠다'는 뉘앙스로 전하는 말들이 사실 힘들 때가 많아요. 그 여행은 이 여행이 아니니까요. 이것도 고충이라면 고충이지만, 직업 자체에서 느끼는 애로 사항을 중심으로 말씀드릴게요.


  1. 더울 때 더운 데서,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게 기본
    정수리가 태양열 발전기였다면 좋았을 텐데요. 이번 여름은 야외 출장이 빼곡한 계절이었어요. 우선 뜨거운 중국의 산을 여러 개 올랐고요. 따가운 가시 같은 불볕으로 유명한 8월 말의 일본을 장소마다 기본 20~30분씩 걸어 다녔어요.

    중국의 태항산 I 사진 너머 저의 땀이 보이시나요

    선풍기는 있어도 무(無)쓸모. 모자 속에는 김이 가득 찼죠. 에어컨, 아이스 아메리카노, 수박이 생각나도 너무 '멀고도 먼 그대'였습니다. 여행과 계절은 꼭 함께 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콘텐츠가 필요하다면 덥든 춥든 다녀올 수밖에 없는데요. 보통 '여행'이라 하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곳으로 떠나고 으슬으슬할 때는 따뜻한 곳으로 떠나지 않습니까. 여행기자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점 중 하나예요.

  2. '제 여행은 언제쯤 가죠?' 출장에 다 써버린 체력
    출장 중에는 무거운 카메라와 취재에 필요한 짐을 들고 계속해서 걸어야 해요. 돌아와서는 시차 적응이 안 되는 와중에 출근도 해야 하죠. 또 출장 중에 아무리 메모해 놔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휘발되니 다녀와서는 최대한 빨리! 기사로 작성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스케치해 놔야 합니다. 이뿐일까요? 기존에 하던 일도 많을 겁니다.

    업무 일지 일부 I 연속 출장 일정으로 밀려 버린 업무들

    거래처와의 커뮤니케이션, 팀원들과의 소통, 아직 다 발행하지 못한 지난 취재와 출장 관련 기사들, 게다가 PM을 맡은 일은 상부에 진행 상황도 보고해야 하고요. 써버린 체력은 회복할 시간도 없이 점점 더 소모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쉬는 날에는 일상생활을 회복하기에 바쁩니다. 밀린 빨래와 화장실 청소 등과 같은 일을 하거나 침대에서 종일 누워 게이지를 충전하기 마련이에요. 여행이 좋아서 여행 기자가 됐는데, 어쨌든 여행을 많이 다니긴 하는데.... 어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여행은 못 하네?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3. 감상은 저리 가라, 15분마다 이동해야 하는 일정
    외부에서 항공권 비용이나 숙소를 제공한다 해도, 기자를 출장 보내려면 회사는 어느 정도의 출장비를 기자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우선 당장은 비용이 드는 일이죠. 여행기자는 회사원이다 보니 그 비용을 당연히 수익으로 바꾸어 가져다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출장으로 간 지역 혹은 국가에서 콘텐츠화할 수 있는 소재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야 하죠. 짧은 일정 동안 많은 장소를 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사카 출장(2박3일) 당시 다녀온 스폿 일부가 파란색과 빨간색 위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사진과 영상 촬영도 중요하기에 야외라면 보통 해지기 전에, 실내라면 마감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합니다. 여행지가 다 붙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동 시간까지 고려하다 보면 한곳에 머무르는 시간을 짧게 잡을 수밖에 없어요. 여유를 즐기거나 차 한 잔을 느긋하게 마시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 거의 뭐, 젓가락에 소스를 콕 찍어 맛보는 정도로 감상하고, 전용 버스 없이 혼자 떠나는 빽빽한 패키지여행 일정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4. 일과 삶의 경계는 가뿐히 지워버리는 직업
    처음에 입사할 때 선배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일과 삶이 구분되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 그 질문을 받았을 때는 정확히 어떤 일상을 보내게 될지 가늠이 잘 안 갔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게 살고 있네요. 예를 들어 주말에 친구와 만나 맛집을 찾아간 상황으로 가정해 볼게요. 들어가자마자 맛집의 인테리어와 분위기, 주메뉴와 시그니처 메뉴를 자연스레 살펴보게 됩니다. 이곳을 기사화하거나 회사 SNS에 올린다면 어떻게 쓸지 시나리오를 떠올리게 돼요.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을 때, 저는 다양한 구도로 찍어 보며 '아 이런 사진은 이렇게 찍어야 하는구나.' 하면서 사진 연습을 하게 됩니다. 음식을 맛볼 때는 '이 맛있는 맛을 어떤 단어와 표현으로 설명해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또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걸 깨닫게 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정말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놀 때는 노는 것에 집중해야 휴식이 될 텐데 그러기 쉽지 않은 게 살짝 아쉽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일하며 특히나 크게 느낀 고충을 적어 보았는데요. 어떠신가요?

어찌 되었든 여행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분명 이런저런 단점이 있지만 어쩌겠어요. 제게는 여행기자의 좋은 점이 더 와닿기에,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 좋은 점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소개하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