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 루틴] 장거리 통근의 기쁨과 슬픔
작성자 씨시레코드
갓생을 부르는 직장인 통근 루틴
[통근 루틴] 장거리 통근의 기쁨과 슬픔
30분이 2시간으로 늘어난 후 실감한 직주근접의 중요성
"프로 이직러"라고 불렸던 나는 정규직으로 회사를 네 번 옮겼다. 인턴도 여러 곳에서 했기 때문에, 서울 시내를 다니다 보면 어쩐지 죄다 내가 일했던 곳인데?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여의도, 잠실, 강남, 서울역, 명동, 을지로, 시청, 신사, 하다못해 서울대입구까지. 그만큼 다양한 통근시간을 경험했고 이에 따른 감상은 위와 같다.
도어 투 도어 20분인 회사들을 다닐 때는 행복했다. 아무리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길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없으니 야근을 할 때도 큰 부담은 없었다. (물론 야근은 싫었다) 3~40분은 조금 귀찮았지만 평균적인 통근시간으로 감내할 수 있는 정도? 심지어 나는 왕십리 거주자였기 때문에, 서울의 어딜 가더라도 3~40분 이내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직장이 서울일 경우에는.
최근 좋은 기회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가고 싶었던 회사였지만 2차 면접을 위해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가는 길은 비현실적이었다. 세 번째 버스에 오르며 생각했다. 이걸 매일 해야 한다고? 떨어져도 슬퍼하지 말자. 어차피 이렇게 못 다녀. 그렇게 신포도를 생각하는 여우의 심정으로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축하해주시던 부모님도 걱정스레 물어보셨다. 어떻게 다니려고?
다운받은 이후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직방 앱을 켰다.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검색했고, 보증금과 월세를 봤고, 조용히 닫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몸빵하자.
하지만 매일 왕복 4시간을 길에서 자거나,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나가지 않은 것은 내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선택을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세이노의 가르침>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헬라어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두 개이다. 하나는 '크로노스'인데 흐르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대상으로의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인데, 의미 있는 시간, 가치 있는 시간, 보람 있는 시간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땅에서 '잘 산다'라는 것은 부자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꾸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422p
그렇게 나는 "통근시간"이라는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만들기에 돌입했다. 그러던 와중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자청님의 <역행자>에서 본 구절도 떠올랐다.
"매일은 못 해도 1주일에 하루만이라도 하자, 이것조차 안 하는 사람이 99퍼센트에 가까우니까. 이것만 해도 남들을 훨씬 앞지를 수 있다. 역행자가 될 수 있다."
"1주일에 하루 30분만 책을 읽자. 이것만 해도 상위 5퍼센트 안에 든다."
역행자, 자청, 225p
그동안 잘 사용하지 못했던 밀리의서재를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다. 다만 출근길과 퇴근길의 컨디션은 천지차이였고, 2시간 내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만의 루틴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루틴의 중요성은 <기획자의 독서>를 집필하신 김도영님도 잘 설명해주신 바 있다.
"루틴은 좋은 결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행동들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스포츠를 떠올리면 아주 쉬운데요,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몸을 풀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최상의 컨디션을 기억해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준비하는 모든 것이 루틴에 해당합니다."
기획자의 독서, 김도영, 240p
해당 글을 통해 독서, 외국어, 팟캐스트 청취, 음악, 기록 등으로 이루어진 나의 출퇴근 루틴을 하나씩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금도 상황에 따라 매번 바뀌고는 있지만, 출퇴근 루틴을 확립한 지금은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다.
"길에서 시간을 허비한다"라는 생각이 아마 장거리 통근러를 제일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출퇴근 루틴은 일상을 관리한다는 감상을 주어, 인생에 활기를 더할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말하지만 재택하는 날은 여전히 행복하다 ㅠㅠ (입사 후 1번 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