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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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 클럽

아! 나의 조국

리
@camer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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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극적인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 뉴스창을 누른다. 가장 상단에는 ’학생 운동 참여 학생, 머리에 최루탄 맞고 의식불명 ‘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사건의 경과와 개황을 상세하게 적어둔 활자들이 기사 내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당시의 현장을 최대한 세세하게 묘사하는 단어들을 보며 당신은 잠깐 놀라고 분노한다. 하지만 활자가 말하는 것들, 예를 들어 ‘피를 흘리는 학생의 머리’ 라거나 ‘ 메케한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거리‘ 같은 모습들은 흐릿하게 상상해볼 뿐, 직접적인 충격이나 전달은 와닿지 않을 것이다. 눈에 읽히는 헤드라인과 내용은 분명히 충격적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해당 기사를 잊거나, ‘그런 사건도 있었지’ 정도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같은 뉴스지만 다른 형태다. 같은 헤드라인에 아래의 사진만 걸려있다.

이번에는 아마 사진을 보자마자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사진 속 상황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자마자 당신의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다른 뉴스들을 찾아보며 SNS에 당장 이 사진을 게재해 지인들에게 이 뉴스를 알리고 싶어할 것이다.
 SNS도 휴대폰도 없던 1987년, 이 사진 한 장은 모든 국민들이 각자의 일상을 잠시 내려두고 광장으로 향하게 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정태원 기자는 로이터 통신 소속의 외신 기자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기부로부터 숱한 협박을 받았다. 사무실로 찾아와 "당신 그러다 대갈통에 바람구멍 난다" 라고 으름장을 놓는 안기부 요원의 말에도 "기자가 현장에서 총 맞아 죽는 것같이 영광된 건 없다."라고 대차게 대꾸할 만큼 대담한 기자였던 그는 당시 현장에서 유일하게 교문 앞까지 진입했던 두 명의 기자 중 한 명이었다. 최루탄과 몽둥이가 누굴 향하는지도 모르는 시위 현장을 목숨 걸고 들어간 그는 아수라장이 된 교문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보자마자 "아, 또 죽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당시의 그도 대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였다.

  당초 이한열 열사의 피격 소식은 조선일보에 짧은 기사와 다른 사진으로 간략하게 보도되었다. 군사 정부의 보도 지침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중앙일보 사진부 이창성 부장은 정태원 기자에게 따로 연락한 뒤 그의 집에서 사진들을 가져왔다. 가져온 사진들을 넘기다 이한열 열사가 피 흘리고 있는 사진을 보자마자 "이건 써야 한다" 는 직감을 느꼈다고 한다. 보도를 꺼리던 편집국장과 반드시 신문에 실어야 한다고 대들다시피 설득하던 이창성 부장 사이 실랑이는 그날 편집 마감 시간까지 이어졌지만, 결국은 다음날인 11일자 신문 보도가 결정되었다. 그렇게 다음날 신문 지면에 게재된 이 사진은 전국적인 민주항쟁 운동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된 것이다. 만약 이한열 열사에 대한 뉴스가 전날의 짧은 기사만으로 끝났다면 6월의 항쟁은 훨씬 더뎌졌거나 그 누구도 국민에게 행해진 국가의 폭력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일보 고명진 사진기자가 촬영한 이 사진은 6월 민주항쟁의 또 다른 상징적인 사진이다. 웃통을 벗고 포효하고 있는 앞의 남성은 ‘최루탄을 쏘지 마라’ 라고 외치며 달려나갔다고 한다. 뒤에서 펄럭이는 태극기 앞에서 손을 번쩍 들고 울부짖는 듯한 남성의 모습은 자유에 대한 열망, 국민을 짐승 길들이듯 야만적으로 짓밟는 조국을 향한 투쟁을 무엇보다 처절하게 보여준다.

  태극기를 들고 있는 두 남성의 신원은 훗날 밝혀졌지만, 사진의 한가운데에서 달려나가는 남자는 아직도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 사진이 모든 시민의 가슴에 불을 지핀 가장 큰 이유다. 변화란 가장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평범한 일상이 더 중요한 보통의 사람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하는 위대함을 전달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권력 앞에서 두려움보다 큰 간절함을, 우리는 사진에 투영한다.

  그런데 왜 이 사진의 제목은 ‘나의 조국’이었을까? 자신들을 유린하고 있는 조국인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걷다 보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을 묶어놓은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한강, <채식주의자> 中

역사의 투쟁을 담은 사진 앞에서 이번에는 다른 생각을 해본다.

나의 조국은 무엇인가? 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나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우리는 사진 속 이들의 염원이 이루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시청 광장을 가득 메웠던 군중은 그들이 외치던 직선제를 이뤘고, 그들을 짓밟던 대통령은 마침내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럼에도 당시의 사진들을 보는 우리는 어쩐지 저마다의 이유로 사진 속 이들과 연결된 마음을 느낀다. 정말 완벽히 해결된 문제가 맞는지 짚어보기도 하고, 또 다른 골치 아픈 담론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방치된 낡은 문제는 없는지 들춰보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사진의 시대보다 더 나아졌는가, 아니면 더 복잡해졌는가. 우린 여전히 '더 가치 있는 것'을 보는 눈을 가졌는가.

  사진 속 시간은 멈춰있다. 영원히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 밖의 우리는 유수의 시간을 걷고 있다. 사진을 볼 때, 멈춘 시간은 흐르는 시간에게 말한다. 계속 나아가라고, 더 나아질 수 있다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자고. 그리고 묻는다. 당신들의 시대는 우리의 시대보다 좋아졌나요.

  사진의 진정한 힘은 여기서 나온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시공간을 초월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힘. 너와 내가 타자화 되지 않는다는 마음을 길어내는 힘.

어쩌면 사진이야말로 시대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 이현준,<역사를 바꾼 한 컷의 힘, 보도 사진의 미래는?>, KBS, 2021.6.13

  • 안홍석, <오늘의 이한열을 사는 사람, 역사 바꾼 그 사진 정태원 씨>, 연합뉴스, 201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