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결국은 의사소통! TMI의 기준은 무엇인가?
작성자 북렌즈
일잘러를 위한 문해력 처방전
[문해력] 결국은 의사소통! TMI의 기준은 무엇인가?
지인의 회사 회식 자리에서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순간, 높으신 분이 목청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하시는데, 많은 순간이 그렇듯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어요. 그때 젊은 직원이 큰 소리로 리듬을 타며 이야기합니다.
부장님, TMI ~ x 3
순간 분위기가 싸해질 수 있었는데, 워낙 경쾌하게 3번이나 연달아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웃으며 마무리 되었어요. 나~중에 그 직원을 향해 무례하다는 뒷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큰 일 없이 넘어갔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 ~ 허허허! 하는 분위기로 말이죠. 인터넷에서 보던 TMI(Too Much Information)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였죠.
이 이야기를 듣고 저도 재미있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회사 팀원들과 커피를 먹는데, 한 분이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 더운데! 뜨거운 커피 드시네요?"라고 가볍게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아, 제가 장이 안 좋아서 차가운 커피를 못 먹어요."라는 대답이 왔어요. 저는 이 대화를 통해 팀원의 장이 좋지 않다는 유익한(?) 정보를 얻었어요. 그런데 옆 자리에서 다른 분이 "그건 좀 TMI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자 대답했던 분도 "그런가~ 호호"하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정말 TMI일까요?
사진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71108123400887
대화 '양의 격률'의 포인트는 대화 속에서 적정한 양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느냐입니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첫째, 대화 속 정보의 양이 부족할 때입니다. 과묵한 두 남자, 장인어른과 사위가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 막 그려지지 않나요. TV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스마트폰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굉장히 암울한 시간이 됩니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귀는 2개고 입은 1개니까, 상대방 말을 듣는 것이 좋다는 말도 익숙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들을 준비만 하고 있으면 어떨까요? 오가는 정보가 거의 없을 거예요. 여럿이서 대화하는데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뻘쭘하고 식은 땀이 나기도 해요. 그럴 때는 침묵이 금이 아니라 독이에요. 말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 소극적인 대화의 태도 또한 격률 위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적당한 참여와 함께, 대화의 내용을 같이 만들어갈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 좋은 거예요.
둘째, 대화 속 정보의 양이 너무 많을 때입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 너무 많은 양은 정신만 혼란스럽고... 오히려 알맹이가 쏙 빠질 수 있어요. 실컷 떠들었는데 남는 게 없는 공허한 대화가 될 수 있죠. 그것도 한두 사람이 독점한다면, 비호감 TMI가 될 수 있어요. 강의처럼 말하는 입장, 듣는 입장이 정해져 있으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역할에 충실하면 되니깐요. 강사한테 말 많다고 뭐라 하지 않습니다. 열정적이라고 칭찬하죠.
하지만 오히려 역할이 명확하지 않을 때, 위험한 순간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같이 대화하는 자리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면, 결국 다른 사람의 발언권을 빼앗는 결과가 나오니까요. 메세지 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교류되기 힘듭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또다른 의견을 들을 기회도 박탈당할 수 있죠. 그러니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게 되는 겁니다. 투 머치 토커는 그래서 경계해야 합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듭니다. 대화에서 어느 정도의 정보 양이 적절할까요?
사실 답은 없습니다. 그때그때 달라요! 실망하셨나요? 독서모임을 오래 운영하면서 매번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한정된 시간, 정해진 인원, 어떻게 대화를 의미 있게 이어 나갈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발언권을 조율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말 좀 해주세요~"라고 발언을 권유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이만 정리할까요~?"라고 발언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여럿이 발언을 요청했을 때는, 한 쪽을 선택하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나름의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더라고요. 똑같이 자기소개를 부탁해도,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사람이 있고, 짧고 간단히 일목요연하게 정보만 전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타일이 다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발언권을 골고루 가지려고 해요. 짧게라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질문을 던집니다. 발언권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지목해서 요청하기도 해요. 두 명이라면, 티키타카의 형태를 띠는 것이 좋겠죠. 내가 어떤 질문을 받았다면, 상대방에게도 그 질문을 해주는 식입니다. 상대방만 이야기한다면, 내 경우는 ~ 하며 되찾아오는 방법도 있어요.
[대화 문해력 Tip] 여럿이 대화를 할 때, 발언권의 횟수를 속으로 세어 보세요. 그리고 가장 횟수가 적은 사람을 찾아 의도적으로 질문해 보세요.
(예) (발언권이 적은) 승화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이 많지 않아도 알찬 대화가 있고, 허황된 말만 많이 오가는 공허한 대화가 있어요. 절대적인 양이 많다고 다 TMI 취급을 받지는 않습니다. 대화의 주제를 벗어날 때,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벗어날 때, 뜬금없다고 느껴집니다. 오히려 양이 많아도 방향을 잘 잡으면 이야기꾼 대우를 받아요. 그렇다면 모두가 대화의 주제를 어느 정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훨씬 기준을 잡기 수월해집니다. 발언이 적은 분들에게는 키워드를 콕 집어서 명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아요. 발언이 많은 분들에게는 방향을 계속 코칭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하는 사람도 무아지경에 빠져 길을 잃는 순간이 많거든요. 그럴 때는 적절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대화 문해력Tip] 리액션을 하면서 간단히 대화의 주제를 언급해 주세요. 모르는 척 다시 물어보는 것도 좋아요. 살짝 어긋난 방향을 되돌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예) 지금 좋아하는 책 추천해주시는 거죠? 메모하며 들어야겠네요!
: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면 결국 주관적인 기준이 중요합니다. 그 기준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청자들의 반응이에요.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들 초점이 나갔다? 시계만 보고 스마트폰만 본다? 그럴 때는 토크 욕구를 살짝 내려 놓고 대화를 환기시킵니다. 말을 많이 한 것도, 삼천포로 샌 것도 아닐 수 있어요. 잔인한 말이지만 똑같은 내용을 말해도 누군가는 '알잘딱깔센' 대우를 받고, 누군가는 'TMI' 취급을 받을 수 있어요. 어떻게 말하느냐의 차이도 있기 때문입니다.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기준이 돼요.
[대화 문해력 Tip] 다른 사람이 발언할 때도 주변을 관찰해 보세요. 누가 말하면 분위기가 다운되고, 누가 말하면 분위기가 업되고, 그 차이를 느껴 보세요.
(예) 승화님은 중간중간 예를 섞어서 말하니까 훨씬 몰입도가 높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