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넷째 주]
It's the Economy, Stupid!(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를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꺾은 건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하죠.
이 말을 떠올린 건 지난 24일(화), 국회 문체위 현안질의 때문이었습니다.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문제
이번주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이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비판하는 영상 이 화제였습니다. 정 회장 코 앞에서 '사퇴하라'고 압박한 장면입니다.
오늘 들으면서 다시 한번 느끼는 거는 '정몽규 회장 체제가 끝나는 게 맞구나'라고 하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건 '왜 눈치를 보지 않지?'라는 거였습니다. 두 가지를 좀 생각해 봤습니다. 첫 번째는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은 저희랑 살아온 궤적이 좀 다른 것 같으세요. 확실히.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의 궤적과 다른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대기업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셨고,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엘리트로 살아오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래서 우리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을 좀 했고요. 두 번째는 '왜 눈치를 보지 않지?' 밖에 있는 사람들은 축구협회에 구체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공간을 허락하지 않죠. 예를 들면 인사권에 우리는 전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국민들이, 팬들이 경기장에서 "정몽규 OUT", "홍명보 OUT"을 외쳐도 협회 입장에선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이러는 거죠. 우리는, 팬들은,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서 축구협회장을 뽑을 수 있는 선거인단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전 표현대로 하면 '체육관 선거'를 하는 거죠. 내 편 사람들만 체육관에 모아놓고 하면 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팬들과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에 이 많은 문제들이 문제라고도 느끼질 않는 거예요. 우리랑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문제의식이 없죠. 공감 능력도 없습니다. 풀어나갈 생각도 없는 거죠. 저는 이런 무능력, 무원칙, 불공정은 하나의 어떤 사건이 아니라 지금 정몽규 회장 체제가 이어지는 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이전에, 지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다고 비판한 겁니다. 그 이면엔 '완전히 다른 삶의 궤적'이 있었고요.
그다음 날인 25일(수)엔 박 위원이 라디오(20240925 YTN라디오 發 <뉴스FM 이익선 최수영 이슈앤피플 >)에 나와서 더 구체적으로 얘기합니다.
박문성 : 저는 정말 옆에서 들으면서 '다른 세상을 살아가나? (싶었어요)'. 아니 일반적인, 우리 이렇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문제다'라고 하는 걸 '문제다'라고 인식조차 안 해요. 제가 어제 그 국회에서 말씀드렸던 건 '왜 눈치를 보지 않냐?', '사람들의 시선과 왜 눈높이를 맞추지 않을까?' 저는 (눈높이를) 못 맞춘다고 생각을 합니다. 최수영 : 아하.. 안 맞춘 게 아니라 못 맞춘다? 박문성 : 왜냐하면 그분의 삶의 궤적은 우리랑 다르죠. 한 번도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사회에서 경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항상 먼저 높은 위치에서 기회를 얻어왔죠. 처음부터 회사에 입사를 할 때도 그랬고 거기까지 올라갈 때도 그랬죠. 우리와 출발선이 다릅니다. 그런 절차와 과정이 왜 중요한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차근차근 이 말들을 복기하다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이걸 일일이 설명해 줘야 아는 것일까 싶어서요.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설명해서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사세 엘리트 출처 : unsplash 정혜승 북살롱 오티움 대표가 쓴 책 <정부가 없다 >엔 '그사세(그들만이 사는 세상) 엘리트' 실사례가 나옵니다.
소위 엘리트들은 전문가 바보 같아요. 사람들이 다들 하고 사는 송금하고, 영수증 챙기고, 살림하고, 마트 가고, 그런 일상을 엘리트들이 얼마나 알까 싶습니다. 다들 1등만 해서 자기 손으로 일반적인 경제생활을 제대로 해봤는지 모르겠어요. 민원이나 서류 떼러 관공서에 갔을 때의 어려움과 당혹감 같은 것도 잘 모릅니다. 일반인들과 경험치가 너무 달라요. 사회는 그들을 1등으로 포장해 왔지만 무슨 1등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되는 일도 해보고, 안 되는 것도 해봐야 좌절감과 효능감을 느끼는데, 실제 일을 해본 적 없는 엘리트들은 경험 근육이 하나도 없어요. 마침 하버드 출신 한덕수 총리가 2023년 9월 국회에서 “택시 기본요금은 1,000원쯤, 시내버스 요금은 2,000원”이라고 틀리게 말해 망신을 산 것은 고위 공직자들의 드물지 않은 실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한 번도 직접 눌러본 적 없어서 오랜만에 혼자 탔을 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아 당황했다는 어느 정치인의 에피소드도 실화다. 국민의 삶을 모르니 어디가 가려운 곳인지 모르는 것은 물론, 누구나 느끼는 문제에 공감이 쉬울 리 없다. 엘리트란 것만 믿고 리더 역할을 맡기는 것이 이렇게 위험하다.
모든 엘리트를 까내리고자 함은 아닙니다. 다만 '엘리트만 주도하는 사회'는 분명 위험하다는 겁니다. 진짜로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조차 누르지 않으며 사는 엘리트도 있으니까요.
'엘리트만 주도하는 사회'가 세상에 어딨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길게 첨언하진 않겠습니다.
20240622 중앙일보發 <"20대女 국방장관하는 느낌"…워킹맘 씁쓸했던 尹 저출생 회의 >
“20대 여성이 국방부 장관을 한다면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겠나. 그런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 뉴스를 봤다는 한 40대 워킹맘이 전한 말이다. 이 여성은 “뉴스 사진을 보니 회의장에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들만 가득했다”며 “그분들이 일·가정 양립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해보셨을지 솔직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회의 현장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받아 적는 정부 고위직은 모두 1960년대생 남성들이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포함해 이날 모습을 드러낸 정부 부처 장관들은 모두 남성이었고, 대통령실 참모들과 경제계 및 지자체 출신 인사 중에서도 여성을 찾기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민간 분야에서 맞벌이 워킹맘이 소수 참석했는데 초대 손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캐나다, 스페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선 '다양한 유형의 대법관'을 구성해야 한다고 아예 법적으로 못 박아놨을 정도로 '다양성'에 진심 입니다(아, 물론 우리나라는 예외입니다).
<정부가 없다 >를 계속 보겠습니다.
요즘 세상은 혼자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복잡하다. 인간의 창의성에서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문제 해결의 주체가 개인에서 팀으로 바뀌는 거다. 집단의 수행 능력에 다양성은 필수다. 서로 비슷비슷한 의견에 동조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대신, 서로 다른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과정에서 해결 방안이 나온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성이 능력주의보다 결과가 낫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이 책의 결론도 '다양성'입니다. 다양성은 '뛰어난 성과'를 냅니다. 다양성은 '공정함과 정의로움' 따위의 번지르르한 말보다 실제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물론 과학적으로도, 우리는 다양해야 합니다. 20240522 더나은미래發 <[데이터로 읽는 생물다양성] 50년 동안 전 세계 생물종 3분의 2 감소 >에서 말하듯, 다양하지 못하면 멸종하니까요.
생물다양성은 중요한 지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생존을 위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자연이 하나의 사슬처럼 엮고 있고, 하나씩 공백이 생기면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결국 곧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생존과 번영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2020년 9월 ‘제5차 지구생물다양성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 사이에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군의 68%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어, 6번째 생물종 대멸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니 좋게 말하면 '다양성 확보', 나쁘게 말하면 '엘리트 순혈주의를 오염시켜야' 하는 거죠.
개집에서 잘 수 있나요? 출처 : unsplash 그럼 도대체 어떻게 다양해질 수 있을까요? 슬의생, 응답하라 시리즈를 함께한 나영석 사단의 이우정 작가가 했던 말(20240723 폴인發 <'서진이네2''지구오락실' 박현용PD, "제 역할은 인사관리죠" >)에 힌트가 있습니다.
낮은 자세로 스텝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왕작가의 일침입니다. 물론 개집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는 더 아래로 내려와야 할 겁니다. 진짜 바닥 민심이 뭔지 파악해야 합니다. 실제 현장의 필요한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걸어 내려오든, 타의로 끌려 내려오든.
동어반복이겠지만, 굳이 한 마디를 더 하겠습니다. 이병률 작가의 <혼자가 혼자에게 >에 나온 말입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어딘가에 떨어져 보지 않는 우리는, 어디에선가 망해보지 않은 우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더 낱낱이 설명해 주는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게 박문성 해설위원이든 누구든 간에.
그러니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문제'가 진짜 문제야! 이 바보야!
지난주 글(<아직 한 발 남았다 >)에 한 독자분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작년부터 내 머리 한켠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화두는, '그래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나의 지분은 얼마나 될까'입니다."
그래서 퇴근하고 짬을 내어 1시간 동안 개인적인 생각 을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