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추석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회상에 따르면, 약 40년 전 추석은 '교련복을 입고도 덜덜 떨어야 했던 추위'였다고 하는데요. 교련복이 뭔지는 몰라도, 이번 추석은 30도를 넘나드는 더위였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이게 뭐람"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더랬죠.
추석 연휴를 맞아 나름 한산해진 산책길에서 돌아와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김예슬과 주현우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절 때 겪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고통을 뜻합니다. 저 또한 명절증후군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이런 질문이 화근이었습니다.
그저 "노력 중이에요", "잘.. 되겠죠"와 '하하' 웃고 만 뒤, '김예슬'을 생각했습니다.
2010년 3월 10일(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는 자퇴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이 문장들을 처음으로 읽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온갖 부정의 언어들을 쏟아내며 그녀가 외친 건 이 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른바) '자퇴 선언'은 당시 각 포털사이트 1면, 아고라 메인, 각 대학 게시판, 트위터 등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심지어는 MBC 뉴스데스크, SBS 8시 뉴스, 경향신문 1면 등 주요 언론에도 보도됐죠.
그렇다면, 제 질문입니다. 오늘은 이때와 많이 달라졌나요. 지금의 청년들은 그 때와 달리 '대학을 거부'할 수 있고, '안녕'한가요. 기성세대는 우리에게 화답하고 있나요. 자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밴드 자우림에서 베이스를 치는 김진만 씨가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에서 스치듯 지나가며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학생들을 위한, 청춘을 위한, 명절 증후군 청년 환자들을 위한 약간의 변명을 하고자 합니다. '젊은것들의 못 돼먹은 예의범절'이라고 치부하시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헤아려 주시면 어떨까요. <이동진의 독서법>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듯 '샅샅이' 헤아려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샅샅이 살펴보면, 우리가 조금은 더 좋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청년들이 귀에 에어팟을 꽂은 채 일하고,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고 반문하며, 텔레그램 딥페이크를 돌려보는 추악한 인간들은 아니니까요. 그저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도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EBS는 일도, 취업 준비도 3년 넘게 안 하는 약 8만 명의 청년을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만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한 발짝 더 깊이 들어와서 '왜 그런지'를 살펴본 겁니다. 절망스럽게도 그곳에 절망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3년 이상 취업난을 겪으면 그냥 쉬어버린다는 뜻이었죠. 2년 넘게 열심히 자기소개서와 스펙을 쌓았는데 어떤 회사도 받아주지 않았을 때 느끼는 '사회를 향한 배신감', '나를 향한 패배의식' 등이 한꺼번에 겹칠 겁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숫자를 단지 '8만 명의 청년=의지 없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까요.
현대차, 두산, LG전자 최연소 임원이자 27년간 마케터로 일해온 최명화 대표가 폴인과의 인터뷰(20230710 폴인發 <현대차, LG전자 최연소 임원 최명화의 커리어 강점찾기>) 말미에 갑자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혼자 킥킥대고 웃었습니다. 깨진 건 내 지원서일 뿐,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요. 나를 떨어뜨린 회사들을 하나씩 떠올렸습니다. 속으로 장담했습니다. 후회하실 것이라고.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