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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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lreview

금주의 한-탄

연결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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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둘째 주]

이번주 화요일(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습니다. "이번 주엔 이 주제로 쓰자!" 마음먹고 한동안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당위).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의미).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가능).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전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저 편지를 길어 올렸습니다. 변진경 시사IN 편집국장이 "대한민국은 참 '모드 변경'이 빡빡한 사회"라고 제게 말했던 기억과 함께요.

All lives matter


출처 :  unsplash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기안84처럼 태어난 김에 살든, 죽지 못해 살든, 죽고 싶지만 일단 떡볶이부터 먹든, 어찌 됐든 살아가야 합니다. 이 단순한 전제는 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삶이 한없이 작아 보일 때조차도요. 우리는 때론 너무 왜소해 보이는 삶에 질문합니다. '나의 삶이 잘못된 건 아닌지', '도대체 무엇이 좋은 삶인지' 말이죠.

울트라 캡숑 오빠, 울트라 캡숑 후배, 울트라 캡숑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하지만 그 실패가 우리의 삶을 잠식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됩니다. '사소해 보이는 삶'('사소한 삶' X)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의 이야기를 한 번 보시죠. 자신의 결혼 예정일에 친형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던 그는,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직장('뉴요커')을 그만둡니다. 그리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미술관 경비원에 취직하죠.

그의 말처럼, 삶은 '형형색색의 화려하고 충만한 세상'과 대비됩니다. 삶이 그저 단순하고 정적만으로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밋밋한 순간에도 각자의 색깔과 에너지는 여전히 뿜어져 나옵니다. 이번 주 배우 정해인 씨가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20240910 씨네21發 <과시 없이 본질에 가닿는, <베테랑 2> 정해인>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의미 있습니다.

설사 그걸 당신이 이해하지 못할지라도요(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中).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엄근진 주의


출처 : unplash

'그냥~ 으레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하며 투덜거리시는 게 벌써부터 들립니다. '너가 뭘 알아?' 심지어는 씩씩대는 목소리와 삿대질도 느껴집니다.

공감의 역치를 쭉 낮춰 '극도로 연결된 감각'을 너무 많이 발휘하는 걸까요. 그래서 전 때때로 심각한 슬픔을 느낍니다. 제가 기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감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끔 '그래서 넌 어떤 글을 쓰고 싶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이 문장들을 인용합니다.

20230624 SBS發 <‘거짓 정보와 싸우는 사람’ - 정은령 SNU 팩트체크센터장>

직접 목격한 장면을 재현하여 일부러 또다른 불편을 발생시키는 일. 사람들을 연결된 감각으로 줄줄이 엮어내는 일. 이렇게 밑바닥을 찍고 길어 올린 제 '공감 역치'는 타인과 연결되는 비밀 통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밑바닥 터치가 어떤 의미에선 큰 자랑이 되기도 하죠(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中).

'실제로' 연결된 감각


출처 : unplash

앞선 말들이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아 실사례들을 가져왔습니다. <사는 게 정답이 있으려나?: 슬럼프 극복 편>에 나오는 유희열 씨의 이야기입니다.

이게 바로 '연결된 감각의 실제적 발현' 아닐까요. 이렇게 우리가 하나둘씩 연결되기 시작하면 행복해집니다. 실제로 일평생 행복을 연구한 서은국 교수님의 과학적 결론입니다.

20240603 폴인發 <"인생의 마이너스 통장 없애면 행복해질까?" 서은국 교수의 조언>

그러니 귀한 자원인 여러분, 같이 연결된 채 살아갑시다. 힘들면 도와주고, 내가 힘들면 도움받고. 그렇게 연결된 채 상부상조합시다.

만약 인생의 결승선에서 삶을 인위적으로 종결지으시려거든, 다시 출발선으로 뚜벅뚜벅 되돌아가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출발선에서 당장의 것들부터 차근차근 시도해보시길(임경선 <자유로울 것> 中) 권합니다. 같이 행복하고, 생존합시다.

아, 물론 정반대로 '단절된 감각'의 실사례도 있습니다. 오늘의 글을 꼭 봐야 하는 한 명을 굳이 꼽아야 한다면, 바로 '그분'이 아닐까요.

20240909 주간경향發 <‘지지율 20%대’ 대통령이 만든 정치 실종 시대…결국은 ‘각자도생’>


자살 관련 현실태 하나만 짧게 짚겠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2022년 기준, 1년에 12,906명. 하루 약 35명, 41분에 한 명꼴로 사망합니다.

다소 거칠게 얘기하자면, 축구 1경기할 때마다 2명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겁니다.

정부는 극도로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매 5년마다 자살 예방 기본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2023년~2027년에 해당하는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현 26명 수준에서 2027년 18.2명으로 30%가량 낮추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조규홍 복지부장관에게 '4년 만에 자살사망자 수 30% 감소시키는 게 현실성이 있다고 보는지' 물었습니다. 속된 말로 '...겠냐?'라는 질문에 조 장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직접 통계청 자살률 그래프에 정부의 목표를 덧대봤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의 계획대로라면 빨간색 선의 기울기만큼 자살률이 급격히 떨어져야 합니다.

2013년 28.5명에서 2017년 24.3명까지 기울기(평균 변화율)는 -1.05.

2022년 25.2명에서 2027년 18.2명까지 기울기는 -1.4.

즉, 자살률이 최근 15년 중 가장 가파르게 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시다시피, 산술적으론 쉽지 않겠네요.

하지만 부디 기적이 일어나길. '연결된 감각'으로 '급추락'을 같이 응원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