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도 이 시점의 한국이 아닌, 30년 전 완전히 다른 인종 구성/문화/역학관계를 가진 사회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을 근거 삼아야 할 정도로 ‘흑인이 동양인에게 직접적/집단적 폭력을 가한’ 케이스가 드물다는 점도 얘기해야만 하겠죠. 부정할 수 없는 백인 선망과 여타 인종에 대한 배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nigga’에 준하는, 오로지 아시안만을 노린 혐오 표현에 노출되어 봤을지도 의문이에요🧐 [마이너 필링스📖: 문제는 아시안 vs 블랙이 아니야] 동북아 이민 2세대인 캐시 박 홍이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가 이 복잡한 문제의 답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캐시 박 홍은 동양인의 독특한 소수자성으로 인한 구조적 피해가 미국 시민사회 공론장에서 충분히 거론되지 않던 현상을 꼬집고 있어요. 하지만 이 지적은 ‘흑인의 피해는 그보다 많이 기록되었으니’ 그들이 아시안보다 더 강자라는 오류로 빠지기 위한 게 아니라, 인종적 소수자끼리의 싸움을 조장하고 방임한 ‘백인 중심의’ 역사를 정확히 겨냥하기 위한 것이에요. “ “앞으로 백인 우월주의는 백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티스트 로레인 오그레이디가 2018년에 한 말이다. ⋯ 백인 세상은 이미 우리를 집단 학살 전쟁의 하급 파트너로 모집했고, 흑인을 적대하고 피부색을 구분하는 일에 징집했으며, 이민자의 일자리를 낫으로 밀 베듯 쳐내는 기업의 직원이나 심지어 대표로 삼았다. … 아시아계 미국인은 무슬림이나 트랜스젠더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다행히 심한 감시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연성 파놉티콘 속에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조건부 실존을 특정짓는다. “ 캐시 박 홍의 말이에요. 그는 흑인 vs 한국인 이민자 구도로 늘 언급되는 LA 폭동에 대해서도 더 정확하고 풍부한 맥락으로 파악하고 있어요. 당시나 지금이나 한인 사회에 흑인 빈민층에 대한 반감과 편견이 늘 공기 중에 떠도는 것을 인정하며 ‘아시아인은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말하는 거죠. 백인들이 보기에 ‘더 성실한 아시안’들은 흑인, 갈색인(brown)보다 경제적 사회적 압박을 ‘덜’ 받았고 그렇기에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흑인들은 구조적인 배제에 더 많이 부딪혔다고도 논증하고 있어요. 캐시 박 홍이 가장 강조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인 사회와 흑인 사회 간에 우정에 기반한 교류가 존재했으며 많은 이들이 약탈과 폭동에 자기 ‘이웃’이 휘말리지 않게 경고하고 도왔다는 지점이에요. [우리가 해야할 일은?] 어쩌면 굉장히 일관된 인종 구성의 사회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이 이제야 비로소 다인종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체득 중인 과도기라 일어나는 논쟁일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속도가 느릴 수는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서로 가르치고 자성하며 천천히라도 나아가는 일이라고 저는 믿어요. 복잡한 층위의 문제이다 보니 말이 무척 길어졌는데요. 도자캣의 가사나 흑인 커뮤니티의 태도 등에 관해 다른 의견이 있거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답글로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