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한 서사 읽기

유해
2023.12.19•
[유해한 서사 읽기] 세번째 질문!
N-word, 아시안이 써도 괜찮다고?😱
지난 주말, 인스타 릴스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흑인-유대계 백인 혼혈인 가수 도자캣의 콘서트 쇼츠를 하나 보게 됐어요. 저도 자주 듣던 노래라 흔한 번역/편집본 쇼츠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가 ‘nigga’를 포함한 가사가 나오기 직전 “백인들은 안 따라부르는 게 좋을 거야”라고 장난스레 경고한 부분을 강조해서 화제가 된 영상이었어요.
영상 속 청중도 도자캣도 이게 시니컬한 유머란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같이 웃고 지나갔다고 느꼈는데요. 딱 이 부분만 편집해서 가져온 한국인 계정주의 캡션도 의문이었고, 그에 호응한 일부 유저들의 댓글도 굉장히 날서있더라고요.
좋아요를 많이 받은 상위 댓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건 대충 이런 삼단논법이었어요.
1) 흑인 비하 표현이 싫으면 애초에 노래에는 왜 넣는 거냐?
2) nigga를 흑인만 쓸 수 있다는 룰은 누가 정한 거냐?
3) 흑인들은 동양인을 비하하면서 우린 nigga도 못 쓰게 하는 건 역차별이다 (⁉️)
n-word 관련해서는 ‘당연히’ 쓰면 안된다는 게 전세계적 역사적 합의라고 생각해서, 이런 ‘난 nigga를 꼭 쓸 거야, 안 된다고? 너희가 뭔데’ 하는 반응이 정말로 놀랍고 신기했어요. 당사자가 아닌 인종이 써서는 안 될 만큼 무거운 핍박의 역사가 있는 표현이고, 바로 그 때문에 흑인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n-word를 쓰지 않는다는 의견을 분명히 하니까요.
그런데 해당 릴스에 주로 10대 중후반인 인스타그램 유저들이 댓글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특정 인종 차별적 표현을 대놓고 쓰는, 심지어 ‘n word를 쓰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일부러’ 쓰는 반 친구들이 무척 많아졌다고 해요.
그걸 듣고 보니 몇 년 전 의정부고 졸업사진 블랙페이스 논란도 떠올랐어요. 아무래도 한국에서만 살아온 상대적으로 어린 학생들은, 현대 인류가 인종 문제에 대응해온 역사나 의식적 노력의 필요성을 아직 다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블랙페이스 논란은 ‘유머’를 겨냥하려다 선을 넘어버린 무지로 봐줄 수 있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확실히 ‘흑인만 소수자라고 인정받는’ 국제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반감이나 흑인 자체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으로까지 번진 것 같아요.
[왜들 그리 화가 나 있어..?😡]
일단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특정 구절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내 가수’의 당사자성 발언에 (엄청나게 진지하게 금지당한 것도 아니지만) 백인 팬들은 그럭저럭 수긍한 것 같은데, 유독 한국에서 우위 인종으로 살아온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뭘까요?
도자캣이 과거 가사에서, 또 일상 속에서 백인우월주의를 긍정하는 발언이나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을 조롱하는 워딩을 종종 드러냈다는 게 비난의 근거이긴 했어요.
물론 그가 타 인종에 대한 존중까지 나아가지 못한 건 아쉽고 성찰이 필요한 일이 맞겠죠. 하지만 개인이 아프리칸 아메리칸 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흑인의 아시안에 대한 (백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비하를 보자마자 아시안도 흑인에 대한 (백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혐오를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그건 대체 누가 이기는 싸움일까요?
한켠에는 한국말 ‘니가’ 가 n-word와 같은 발음이기에 흑인들의 반감을 샀고 그래서 한국 아이돌 등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흑인이 한국 곡 가사를 전수 검열하며 진지하게 분노했다는 정황은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타 인종/국가의 고유 언어가 발음되는 방식을 무시할 만큼 막무가내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보다 자주 목격된 건 ‘우리도 흑인에게 인종차별 당하는 피해자다’ ‘그러니까 우리도 n-word를 쓰고야 말겠다’는 일부 한국 사람들의 강한 의지였어요. 정해진 결론이 근거보다 선행한 일종의 ‘답정너’라고도 할 수 있겠죠.
저는 ‘니가’라는 한국어 발음이 정말로 전세계적으로 흑인 커뮤니티의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면,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힙합 씬의 유구한 아시안 차별적 워딩을 지적하고 서로를 가르치며 진보하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동양인이 흑인에게 당한 직접적인 차별과 폭력’이 흑인을 혐오해도 되는 이유로 끌려나오는 부분이 백미인데요. 이럴 때마다 꼭 거론되는 ‘92년도 LA폭동’에서 흑인 약탈범들이 한인들의 가게를 털려고 했기 때문에 흑인은 동양인의 영원한 적일 수밖에 없다는 비약이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때 백인 공권력에 희생된 로드니 킹의 죽음으로 인한 흑인 사회의 분노를 아시안 쪽으로 교묘하게 돌린 것도, 공격받는 한인 타운을 방치하고 그쪽으로 폭력의 방향을 틀었던 것도 모두 백인 권력이었다는 점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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