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편도 읽고 온 후 의견을 남깁니다. 저는 예술가가 비도덕적인 것과, 그의 작품이 비도덕적인 것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예술가가 본인의 내면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기는 하나, 인간의 내면은 평면적이지 않으니까요. 예술가가 가진 입체적인 내면에서는 분명 비도덕적이지 않은 부분도 존재할 겁니다.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들자면... 우리나라의 한 연쇄살인마는 가족을 정말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잔인하게 살인을 했을 때보다도, 살인 직후 아들에게 전화가 왔을 때가 가장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라고 말했죠. 만약 그런 예술가가 있다고 치고, 그가 ‘가족에 대한 사랑’ 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고 했을 때 그 작품에서만큼은 해당 예술가의 비도덕적인 면이 투영되지 않았을 수 있죠. 거짓되거나 악의 있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오히려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훨씬 높은 작품성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해당 작품은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작가의 비도덕성이 흠이 되어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받을 수는 없겠지만, 객관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그 작품성까지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감상자 입장에서 예술가와 작품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므로,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작품을 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요.(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다만 작품에 본인의 비도덕을 투영한 경우라면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감상이라는 것은 대상을 미적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비도덕적인 내용들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조금이라도 미화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특히 그 예술가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다면 더더욱 소비하면 안 되겠죠. 예술을 예술로 바라볼 수 있는 일에도 결국에는 도덕이 관여할 수밖에 없기에, 비도덕이 예술가 개인의 내면을 넘어 작품에까지 영향을 주는지 아닌지가 제 개인적인 작품 소비의 기준인 것 같습니다. 번외로, 의견을 작성하며 생각난 건데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 논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인간은 다면적인 동물이기에 완벽한 도덕, 완벽한 비도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일생을 그 누구보다도 도덕적으로 살던 사람이 돌연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번 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과연 ‘비도덕적인 사람’ 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 혹은 반대로 평소 비도덕을 일삼던 사람이 어느 날을 기점으로 도덕적인 행동만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을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