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이야기]사치품에서 국민술 “소주”
작성자 술호랑
우리술이야기
[우리술 이야기]사치품에서 국민술 “소주”
우리나라 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 초록병 소주를 떠올리지 않으셨나요? 물가 상승으로 소주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술자리를 지키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흔하고 친숙한 소주가 옛날에는 왕실이나 양반들의 사치품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귀중한 곡식으로 정성스레 빚어 만든 이 귀한 술이 어떻게 지금의 국민술이 되었는지, 오늘은 소주의 역사와 변화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식 소주와 전통 소주
우선, 우리가 흔히 보는 초록병 소주는 사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주가 아니에요. 이건 '희석식 소주'라고 하는데, 주정에 물을 넣어 희석해서 만든 것입니다.
반면 전통 방식으로 만든 '증류식 소주'는 쌀이나 고구마 같은 원료를 발효시키고 증류해서 만듭니다. 증류식 소주는 원료의 맛과 향이 살아있어 더 깊은 맛을 내지만, 만들기가 어려워 희석식 소주에 비해 가격이 비싸죠.
소주의 황금기
소주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어요. 고려시대 때 몽골의 침략과 함께 처음 들어왔다고 합니다. 특히 몽골군이 주둔했던 안동, 개성, 제주도는 이후 소주의 명산지로 유명해졌죠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집에서 만든 다양한 가양주가 발전하면서 지역마다 유명한 술들이 생겨났어요.
왕실에서도 소주를 즐겼다고 해요. 단종실록을 보면, 단종이 병이 났을 때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해 원기를 회복했다고 합니다. 또한 소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술 소비가 늘어나면서 곡식 낭비와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어요.
사라진 우리 소주
그런데 이렇게 인기 있던 전통 소주가 사라지기 시작해요.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였습니다.
먼저, 일본은 술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집에서 술을 만드는 걸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했죠. 이렇게 되니 집에서 술을 빚던 우리의 전통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1910년대부터는 일본에서 새로운 방식의 소주가 들어왔어요. 바로 '희석식 소주' 에요. 이런 방식으로 소주를 만드는 공장이 많이 생겼고, 우리의 전통 소주는 점점 자리를 잃어갔죠.
우리나라가 독립한 뒤에도 이런 상황은 계속됐어요. 1965년에는 쌀이 부족해서 술 만드는 데 쌀을 쓰지 못하게 하는 법이 생겼어요. 이 때문에 쌀로 만드는 전통 소주는 더이상 만들 수 없게 되었고, 대신 희석식 소주가 더 많이 만들어졌어요. 결국 우리의 전통 소주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30년 만에 돌아온 증류식 소주
다행히도 1990년부터 다시 증류식 소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우리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증류식 소주들이 하나둘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요즘에는 화요, 원소주와 같은 증류식 소주들을 마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죠.
이런 술들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전통 소주의 맛과 향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이 증류식 소주는 우리의 술 문화를 다시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우리 역사에서 전통 방식의 소주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다면, 지금쯤 어떤 향과 맛을 가진 소주들이 있었을까요? 집집마다 비법으로 전해 내려오는 소주 레시피가 있지 않았을까요?
참고자료
박롬담. 다시 쓰는 주방문. 코리아쇼케이스. 2005.
김지룡. 사물의 민낯:잡동사니로 보는 유쾌한 사물들의 인류학. 애플북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