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이야기]포트와인보다 100년 앞선, 과하주
작성자 술호랑
우리술이야기
[우리술 이야기]포트와인보다 100년 앞선, 과하주
여름이면 생각나는 그 술, 과하주
사실 여름 하면 으레 떠오르는 건 시원한 맥주입니다. 땀이 뻘뻘 흐르는 더위 속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생맥주를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곤 하죠. 하지만 저는 여름 하면 꼭 찾게 되는 또 다른 술이 있습니다. 바로 과하주입니다.
처음 과하주라는 이름을 들으면 '과일'이 들어간 술일 것 같지만, '지날 과(過)', '여름 하(夏)' 두 한자로 이루어진 이 술은 '여름을 나는 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주로, 더위 속에서도 변질되지 않고 오래도록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술입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다니, 왠지 더 끌리지 않나요? 저는 해마다 '올해도 여름 잘 보내보자'라는 생각으로 이 술을 꼭 찾아 마시고 있습니다.
전통주의 여름나기: 과하주의 등장
우리가 흔히 아는 막걸리, 약주, 청주 같은 전통주는 대부분 발효주입니다. 이들은 맛은 좋지만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어요. 바로 여름철에 쉽게 변질된다는 것.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고민 끝에 '과하주'라는 술을 만들어냈습니다.
과하주는 약주를 베이스로, 여기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섞어 만들어요. 왜 하필 도수 높은 술을 넣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면 술의 맛을 변하게 하는 효모들의 활동이 중단되기 때문이에요. 효모 활동이 멈추면 더 이상 발효가 진행되지 않아 술이 변질되지 않기에 무더운 여름에도 오래도록 맛있는 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하주와 포트와인
이렇게 발효 중인 술에 도수 높은 알코올을 첨가하는 방식을 ‘주정 강화’라고 합니다. 조금 어려운 용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에게 꽤 익숙한 술들도 있어요.
대표적인 예로 포르투갈의 포트와인과 스페인의 셰리 와인이 이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져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과하주의 역사가 포트와인보다 무려 100년이나 앞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문헌인 '음식디미방'에 과하주 제조법이 기록된 시기가 1670년경인데 반해, 포트와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1700년대 초반입니다.
잊혀진 명주
과거 과하주의 인기는 대단했던 모양이에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아 한일 합작 회사 형태로 수출까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명성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광복 이후 주류 정책이 변화하면서 많은 전통주가 사라졌고, 과하주도 그 흐름을 피해 가지 못했죠.
마트에서 만나는 과하주 ‘백세주 과하’
다행히도 최근 옛 문헌을 통해 과하주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전통 방식의 과하주를 만들어 판매하는 양조장들이 늘어나며, 과하주가 조금씩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이런 흐름에 맞춰 이제는 대형 마트에서도 과하주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과하주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바로 '백세주 과하'입니다. 이 술은 여름 한정으로 판매되는 제품인데, 2023년 첫 출시 당시에는 인기가 너무 좋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특히 잔이 함께 들어있는 패키지 제품은 품절 대란을 일으켰는데, 저 역시 이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결국 구매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더 상황이 나아졌어요. 현재 이마트, 롯데마트, 농협 유통망을 통해 판매 중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추천합니다.
'백세주 과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세주를 베이스로 하여, 여기에 우리 쌀로 빚고 10년 이상 숙성한 쌀 소주를 더해 만든 술입니다. 백세주 특유의 약재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며, 국화를 연상시키는 꽃향기도 맡을 수 있어요.
'백세주 과하'의 경우 단맛이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에요. 대신 처음에는 상큼한 산미가 느껴지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달콤해지는 맛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어요. 알코올 도수는 18도로, 꽤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향에서는 알코올 향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으나 목 넘김 이후에 약간의 알코올 감을 느낄 수 있어요.
냉장 보관 후 실온에서 5~10분 정도 지난 뒤 마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술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갈수록 숨어있던 향과 맛이 풍부하게 살아나기 때문인데요. 차갑게 마시면 상큼한 맛이 두드러지지만, 온도가 올라갈수록 은은한 단맛과 복합적인 향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과하주는 대부분 도수가 높고 바디감이 있는 편이라 어떤 안주와 먹을지 고민이 되기 마련입니다. 저는 기름기 있는 막창과 함께 마셔봤어요. 막창 한 점을 먹고 과하주 한 잔을 마시니, 입안에 남아있던 느끼함을 깔끔하게 씻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름을 특별하게 만드는 한 잔
대중적으로 출시된 과하주를 통해 우리는 역사가 담긴 전통주를 좀 더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과하주 한 잔으로 올여름을 특별하게 보내보는 건 어떠실까요? 이 시원한 전통주와 함께 여러분만의 여름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즐거운 시간 보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