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생각하는 사람들 💭
하늘소
2024.01.06•
굉장히 고민되는 질문이네요. 어릴 적이라면 고민도 없이 파란약을 골랐을 거예요. 무정한 현실은 보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거든요. 동화 같은 삶을 살면 행복할 거라고 말이예요. 우리 삶 속엔 수많은 거짓들이 있어요. 선의의 거짓일 수도 있겠지만, 욕망이 담긴 거짓도 많죠. 어릴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각종 위험들이 현실에 넘쳐나요. 결국 저도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살 순 없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색안경은 나만 바보로 만들 뿐이더라고요. 현실을 볼 줄 안다는 것은 나를 보호할 수 있고, 나를 성장시키고 더 좋은 삶을 만들 힘이 된다는 것,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좌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죠.
솔직히 저는 변혁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서 파란 약을 더 먹고 싶긴 합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치욕스럽게 죽느냐, 고되게 살다가 정의롭게 죽느냐를 묻는다면 현실을 즐기다 가는 행복한 돼지고기가 마음은 편하겠죠. 그러나 거짓된 세상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서 제 삶이 거짓이 되어 버린다면 빨간 약을 고를 것 같아요. 물론 두 알약 모두 먹지 않을 수 있다면 먹지 않을 거예요. 고통스럽게 직면하거나 철저하게 도피하는 두 상황 모두 무섭기 때문이죠.
저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예요. 제가 빨간 약을 고르는 이유는 거짓된 세상이 더 무섭기 때문일 거예요. 내가 바보가 되고, 너무나도 이상한 이 세상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나 자신이, 그리고 스스로 거짓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말이예요. 편안함만이 행복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언젠가는 진실을 알고 마주해야 하고 그 진실만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니까요. 후회가 될 때도 많겠지만, 둘 중 하나를 골라 먹어야 한다면 빨간 약을 고르고 나름의 최선을 선택한 것이라고 믿어야겠지요. 혹여 진실의 세상에서 빨간 약을 고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면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추가해 보자면 이 선택은 어디까지나 파란 약이 행복한 디스토피아일 때를 가정했습니다. 단순히 세상의 형태가 이상한 것이라면 어차피 이상한 세상인데 더 이상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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