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생각하는 사람들 💭
Quan
일 년 전•
AI가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다 해도 인간 정서의 영역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서적 사유들을 학습해 모방할 수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정서적 동요를 겪는 것은 인간만의 영광입니다. AI가 인간 생각의 연속성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따라 할 수는 있어도, 인간 정서의 연속성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따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창의성을 AI가 대체하고 우리의 사고를 AI가 대체해서 더 이상 우리가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고, 깊은 사고를 하지 않게 되어도. 우리의 정서의 영역을 AI가 대신 할 수 없습니다. AI에게 아무리 우리의 정서를 학습시켜도, AI는 인간 정서를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표현하지 못해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느껴진다’라는 것을 AI가 느낄 수는 없습니다. 느껴진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우리가 사고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뇌 속의 제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고, 사고하는 데에 쓰이는 힘들은 전부 화학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현상들은 물질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고. 육체가 죽은 뒤에도 사람의 사고가 유지되지 않기에 사람이 죽으면서 뇌의 기관이 완전히 멈추고 사용 흔적이 흩어진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작과 대체가 가능한 물리적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알죠. 이 모든 것들을 AI가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만이 느끼는 정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정서의 형태나 정서에서 기인한 현상을 학습하고 또 표현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 정서를 탄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요,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란 말이 있습니다. 결국 정서적 동요를 겪는 인간이기에 희극도 비극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AI에게는 희극도 비극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내용을 두번이나 반복한 이유는 내용에 대한 확신 보다 바람에 가깝습니다. 이것마저도 AI가 해내는 것은 두렵거든요. 그리고 만약 AI가 인간의 정서 마저 대체 할 수 있게되면 그걸 AI라는 선상에 두고 봐야할까요?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본 건데, 출근 길에 적느라 참 어수선한 내용이 되버렸네요. 매번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추가로 저는 고통, 통증, 괴로움에서 기인하는 것들이야말로 인간의 특권이라 생각하며 살아 왔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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