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리와 사랑의 공통점, 번거로움

[에세이] 요리와 사랑의 공통점, 번거로움

작성자 아워익스프레스

아워익스프레스 에디토리얼

[에세이] 요리와 사랑의 공통점, 번거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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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번거롭다. 먹는 시간은 10분인데 요리하는 시간은 최소 2-30분이다. 사실 이것도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무슨 요리를 할지 구상을 끝마쳤고, 모든 재료가 준비돼 있고, 레시피가 숙지돼 있으며, 변수가 발생하지 않아야만 가능한 시간이다. 한참 마늘을 볶던 중, 새우를 해동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야 떠올렸다면, 10분이 추가된다. 게다가 센 불로 볶는다고 요리가 일찍 끝나지도 않는다. 재료가 일찌감치 탈 뿐이다. 약불로 오래도록 휘저어줘야 맛도 시간도 낭비되지 않는다. 말이 좋아 정성이지, 요리란 번거로움의 연속이다.

요리의 과정을 조금 확대해 보면, 사정은 보다 복잡해진다. 장을 봐야하고, 식재료를 관리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 10분 동안 먹기 위해 요구되는 심신의 에너지는 몇 시간짜리다. 직접 요리해 먹는 게 절약에도 건강에도 좋다는 말은 순진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폭등하는 식재료 값과 절하되는 내 인건비를 고려하면 요리란 합리적이지 못한 행위다. 심지어 내 요리는 그리 맛있지도 않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애써 요리하는가?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의 한 장면.

나를 지속하게 하는 번거로운 요리

번거로운 요리가 지겹다. 그런데 이 번거로움이 '나'를 지속한다. 5평짜리 작은 원룸에는 토끼 같은 자식들은 없어도 성가신 식재료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배달음식처럼 1인분이 없는 식재료들은 언제나 애매하게 냉장고를 차지한다. 양파 반 개, 애호박 2/3개, 달걀 6개, 양배추 3/4통의 각기 다른 유통기한이 다가온다. 볶음밥으로 한 끼를 해결했더니 애호박 1/3개, 달걀 5개, 양배추 3/5통이 남는다. 볶음밥을 하기에는 가짓수가 부족하고, 입맛도 질렸으니, 내일은 찌개를 끓이기로 한다. 그러려면 두부와 감자가 필요하다. 내일 찌개를 끓이고 나면 냉장고에는 두부 3/4모와 감자 5개, 달걀 5개, 양배추 3/5통이 남을 것이다. 식재료는 늘 부족하면서 남아돌고, 나는 냉장고를 비우면서도 동시에 채워야 한다.

남은 재료들이 책임감이 되어 번거롭게 괴롭힌다. 그건 곧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성가신 동력이 된다. 싱싱하게 유지해야만 하는 식재료들은 내가 살아 있고, 살고 싶고, 살아야만 한다는 증거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를 성가시게 했던 냉장고 속 남은 식재료들 덕분에 비좁았던 자취방을 '나의 집'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마음 붙일 안락하고 넓은 방은 없지만, 눈길 줘야 할 야채들은 많았기 때문이다. 집에 가야만 했고, 내일을, 내일모레를, 일주일 후를, 1년 후를 생각해야 했다. 냉장고에서 성가시게 뒹굴거리는 식재료들과 함께 나의 삶도 번거롭게 지속됐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에서 직접 재배한 토마토로 만든 파스타.

바깥 음식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세상은 완성된 음식들로 가득하다. 편의점에만 들어가도 음식을 몇 초만에 살 수 있고, 몇 분만에 다 먹을 수 있다. 편의점 음식을 먹는 게 왠지 내 몸에 몹쓸 짓을 저지르는 찝찝한 기분이 들 때면, 식당에 가면 된다. 돈을 조금 더 내면 그만이니까. 따뜻하고, 맛있고, 운 좋으면 친절하기까지 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뭐가 더 건강하고 덜 해로운지는 아리송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바깥 음식들이 내 외로움을 채워주진 못했다는 점이다.

돈을 주고 먹은 음식은 먹기 쉽고 맛도 좋은데, 그것만 먹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숫자를 먹는 기분이었다. 네모난 영양성분 표에 굵게 적힌 250 칼로리를, 단백질 12g을, 메뉴판에 촘촘하게 적힌 13,000원을 먹었다. 하루치 열량과 단백질과 예산을 채웠다. 간단하고 정확했다. 돈과 시간을 주고 영양과 배를 채웠지만, 외로움은 쉬이 채워지지 않았다. 외로우니 살이 쪘다. 나는 사랑이 필요했다.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삼각김밥을 먹고 있다.

사 먹을 수 없는 사랑

사랑이란 편리함을 거부하는 태도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대를 위해주는 마음이다. 사랑은 간편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다. 돈을 주고 시간을 살 순 있어도 사랑을 살 순 없다. 바깥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순 있지만, 그 음식은 나를 사랑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바깥 음식을, 숫자를, 외로움을 먹다 보면, 나를 사랑해서 만든 음식이 간절해지곤 한다. 나를 번거롭게 하고, 내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이 먹고 싶어진다. 엄마가 신발장에서 먹여 주던 조미김만 두른 따끈따끈한 맨밥과, 아빠가 몸에 좋다는 야채는 다 넣고 끓여버린 오묘한 맛의 찌개가, 그리워진다.

이치코와 엄마.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에서, 엄마가 떠난 뒤 이치코는 엄마가 종종 해주던 푸성귀 볶음을 직접 만들어 본다. 아무렇게나 자란 푸성귀를 뜯고, 큼지막하게 썰고, 달달 볶고, 적당히 소금간을 하면 끝나는 간단한 요리다. 분명 엄마의 것과 과정은 같은데 맛이 다르다. 이치코는 엄마의 맛을 재현하려 갖은 방법을 시도하지만 어째서인지 전부 실패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마침내 깨달은 엄마의 비법은 바로 껍질 벗기기다. 푸성귀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보니 드디어 엄마의 맛이 난다. 이치코는 엄마 맛이 나는 푸성귀 볶음을 천천히 씹으면서 정성 들인 요리 좀 먹어보자며 투정부린 지난 날을 떠올린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어.' 엄마 없는 식탁에서 이치코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입 안의 푸성귀 볶음은 그때처럼 부드럽다.

나를 위한 요리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푹 익혀져 있다. 한 겹씩 껍질을 벗겨 만든 푸성귀 나물처럼, 요리와 사랑은 번거롭고 애틋하다. 애써 요리하는 이유는 사랑의 시도이다. 오늘의 내가 지겨워도 내일의 나를 지속하게 하는 사랑이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흉내내며 스스로를 대접해 보는 연습이다. 맛도 없고, 시간도 돈도 그리 절약되진 않지만, 번거롭게 오늘도 요리한다. 오늘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

By Heeseung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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