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작가 시점, 메타-강박

전지적 작가 시점, 메타-강박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전지적 작가 시점, 메타-강박

나나
나나
@naneunn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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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새 내 삶은 혼란 투성이다. 인생을 너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고 있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행동, 태도, 내면까지 모두 분석해서 서술하는 기법. 나는 내 삶을 그렇게 보고 있다. 내가 뭔갈 느낀다기보다는, 계속 분석하려고 한다. 내가 배가 고픈지, 부른지, 고픈 척하는 건지, 부른 척하는 건지 등등. 강박의 메타 강박이랄까?

나는 배고픔과 배부름의 경계를 잃었었다. 상담 선생님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했지만, 그 뒤에도 사실 애매하다.

탄수화물 강박 때문에, 덮밥을 시킬 때 밥 빼고 달라고 했다.

적정량이란 뭘까? 사람들마다 먹는 양이 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렇다.

‘배가 부른 것 같다’-> ‘사실은 배가 안 부른데 더 먹기 싫어서(거식증) 부른 척하는 건가?’ -> ‘아님 내가 더 먹고 싶어서 폭식하려고 이러나?’

그래서 나는 내가 많이 먹어놓고 합리화하는 건지, 적게 먹어놓고 합리화하는 건지도 모른다. 거식과 폭식, 양쪽으로 모두 의심을 한다.

오늘의 썸네일. 내가 상담을 시작한 날, 용기내어 먹은 디저트다. 나에게는 너무 감동적인 한 입이었다. 티그레라는 게 너무 먹어보고 싶었다. 생각만큼 맛있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내 인생에서 제일 감동적인 디저트.

운동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식이장애를 앓기 전에도, 운동 강박이 생기기 전에도 남편과 엄청 걸어다녔다. 마포구에서 성북구까지 쭉 걸은 적도 있다. 그게 또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배가 부르니까 좀 걸을까?’->’강박 때문에 걷는 건가?’->’사실 원래 같았어도 걷는데, 강박이라는 생각 때문에 안 걷는 게 더 인위적인가?’

그래서 나는 어떤 쪽으로든, 많이 걷는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하고, 아예 안 걷는 게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하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할 것 같다. 나도 그렇다. 같은 행동이 거식 같기도 하고, 폭식 같기도 하다. 뭐가 자연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내 상황을 너무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다 보니, ‘전지적 작가 시점’만 남아 있고, 내가 느끼는 ‘나’는 없다.

이전에 글쓰기에 대한 책 등을 찾아 볼 때, 내 감정에 대해 ‘~ 것 같다’를 남발하는 건 안 좋다고 했다. 내가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고’하는 거지, ‘나 기쁜 것 같다’, ‘나 슬픈 것 같다’, ‘나 화나는 것 같다’, ‘나 짜증나는 것 같다’는 어색하다는 거다. 나도 공감했었다. 근데 이제 식사와 운동에 관해서는, 나는 내 감정을 잃었다. ‘나 배부른 것 같다’, ‘나 배고픈 것 같다’, ‘나 더 걷고 싶은 것 같다’, ‘나 더 걷기 싫은 것 같다’만 있다. ‘배부르다’, ‘배고프다’, ‘걷고 싶다’, ‘걷기 싫다’를 좀 더 편하게 내뱉고 싶다. 요새는 이런 말을 내뱉어도 계속 내 자신을 의심하고 분석한다.

정말 일상적이고 쉬운 말이, 나한테는 이제 분석의 대상이 돼버렸다. 내 자신을 아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종종 슬퍼진다. 하루 세 번, 식사로 느낄 수 있는 기쁨이 나에게는 하루 세 번의 도전이 된다.

*****************사진 주의***************

지금부터 식이장애 상담 직후, 내 모습을 내가 인지하기 위해 찍은 내 사진을 공개한다. 너무 말랐고, 날 것 그대로라 누군가는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사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그렇게 비참하게 앙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티클 발행을 위해 사진을 봤는데.. 너무 비참하게 앙상하다. 이 사진이 혹시 '그냥 마른 거다'라고 생각하는 식이장애 친구들이 있다면, 아니다. 이거 이상한 거다. 몸무게가 몇 kg이든 내가 행복하면 되지만, 이게 정상으로 보인다면... 내가 '미'에 대해 타이트한(X), 나를 해치는(O) 기준을 갖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봐야 한다. 나도 이 사진을 보니 가슴이 철렁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심각성을 더 솔직히 드러내고 싶어 공유한다.

앙상한 다리와 발
원래도 핏줄이 잘 보이는 편이었지만, 이건 뭐... 해부학 책에 실릴 법한 그림 수준이다.
걷다 보면, 늘 내 뼈끼리 부딪혀서 날카로운 뼈가 반대쪽 살에 상처를 내곤 했다.
겨울에 발이 트는 건 원래도 그랬다. 그치만 봄-여름에도 나는 발이 아예 찢어질 정도로 부르텄다.
허벅지가 움푹 패여 있다.
무슨.. 닭다리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30kg여도 150kg여도 상관은 없다. 그치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마른데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가 없다. 행복할 수가 없다.

뭐 때문에, 뭐 좋자고 이렇게까지 했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