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깨부수기(2) 좋아지는 것보단, 나빠지는 걸 줄이자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식이장애 깨부수기(2) 좋아지는 것보단, 나빠지는 걸 줄이자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변화 속도가 너무 늦다고 했다. 몸무게도 생각보다 잘 안 오른다고 했다. 식사량도 더 늘리고, 운동량도 더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근데 사실 나한테 그건 너무 어려웠다. 나는 또 한 고집 하는 사람이다. (잘못된 거지만) 몸무게를 30kg대까지 뺀 것도 의지가 독해서였고, 어떻게 보면 그 무게로 살아있었던 것조차 나의 독기(?)가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독기가 강하단 건, 나는 내 스스로 동기부여가 돼야 움직이고, 그 동기부여가 되면 나는 확실히 강하게 움직일 수 있단 거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절대 안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30kg대까지 갈 때,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게 파국을 만든 거다.
결국 나는 내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나아져야 부작용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운동은 정말 천천히 줄여나갔다. 아침 기상 후 걷기, 홈트레이닝, 퇴근 후 걷기, 홈트레이닝 중 먼저 한 개만 없앴다. 3만보를 걸었다면 2만 5천보 정도만 걷기로 했다. 1시간 30분을 걸었다면 1시간 20분으로 바꿨다. 식사도 천천히 늘려나갔다. 하루에 빵 한 쪽만 먹었다면, 하루에 500kcal까지만 먹기로 한다. 그 뒤에는 이틀에 한 끼만 제대로 먹던 걸 하루에 한 끼 제대로 먹기로 한다. 사실 운동량은 여전히 많고, 식사량은 여전히 적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부작용이 적은 거였다. 당연히 이런 류의 병이 나으려면 좋아질 때도 있고, 나빠질 때도 있을 거였다. 좋아지는 형태는 계단 같은 형태와 롤러코스터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단은 안 나아지는 것 같다가 정신 차려보면 점프하는 거다. 롤러코스터 형태는 좋고 나빠짐을 반복하는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식이장애는 롤러코스터처럼, 주식 차트처럼 왔다갔다 할 거였다. 직선으로 오르기만 할 순 없다. 그럼 결국 그 왔다갔다 속에서 ‘좋아짐’은 크게 끌어 올리고, ‘나빠짐’은 최대한 적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좋아짐’은 꾸준히 진행할 수 있고, 내가 노력하면 되는데, ‘나빠짐’은 외부의 영향(소위 말하는 ‘트리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예측 불가한 영역까지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변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나빠짐’을 최대한 통제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좋아짐’을 위한 노력 폭을 아주 작게 가져가기로 했다. 운동을 너무 줄이면, 먹는 걸 너무 늘리면 내가 불안해져서 다시 확 안 좋아질까봐 최대한 나 조차도 모르게(?) 티 안 나게, 조금씩만 바꿔나가기로 했다.
실제로 걷는 시간을 10분만 줄여도 나는 초조해했기 때문에, 나아지는 속도가 조금 느리더라도 이건 정말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물론 당장 치료가 시급한 많은 사람에게 이 방법을 권할 순 없겠지만, 한 고집 한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방법일지도.
내게 식이장애 극복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좋아지는 것보다도 나빠지는 폭을 줄이는 게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