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나이 많은 여자를 대하는 게 어렵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나는 사실 나이 많은 여자를 대하는 게 어렵다
팀장이 내게 그렇게까지 무례하게 했는데도, 나는 팀장이 미운 마음 반, 여전히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그러니까 팀장에게 처음 아픈 얘기를 정식으로 했을 때도 ‘내가 진짜 일을 못해서 미웠다면, 이런 사정이 있으니 다시 날 예쁘게 봐주길’ 바랐던 것 같다. 이미 상처 받았는데, 내 아픈 얘기까지 해서라도 예쁨을 받길 바랐던 거다.
여기서 모든 얘기를 풀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짧지만 깊게 가족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아빠가 없다. 아빠는 치과 의사라고 한다. 아빠에 대한 유일한 기억은 2가지인데, 하나는 5살 때 우리 엄마랑 외할머니랑 (아마) 이모들까지 아빠 치과에 찾아 가서 서로 싸웠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병원 의자에 앉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한테 아몬드 빼빼로를 줬다. 아빠 얼굴은 기억 안 난다. 싸운 소리와 내 시야에 보였던 내 무릎, 아몬드 빼빼로만 기억 난다. 그리고 어린이집인지 유치원인지, 그 시절에는 아빠 참관 수업이란 게 있었다. 나만 못 가는 게 억울했다. 그 때 아빠랑 통화를 했던 것 같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이혼한 거야, 뭐야? 무슨 관계야? 궁금해할 것 같은데, 놀랍게도 이혼은 안 했다. 그 시절 이혼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뭔지는 나도 모른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듣기로는 결혼 초반 아빠 치과 개업 위치로 갈등을 겪었다. 우리 집은 대도시와 소도시의 경계 어디쯤에 살았고, 엄마는 소도시 출신이었다. 아빠는 지방에서도 아주 작은 소도시에, 엄마는 큰 도시에 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의견은, 그 당시만 해도 그 지역에는 가짜 의사, 돌팔이 의사가 있었고, 그런 시골에서 치과가 될 리가 없단 거였다. 엄마 의견을 따라 큰 도시에 냈는데, 치과가 생각만큼 안 됐다. 그러면서 갈등이 커졌다고 한다. 여기서 누구 편을 들 생각은 없다. 사실 지역이 문제가 아니었을 수 있어서 엄마 탓이라 생각진 않는다. 여담으로 아빠 치과 위치를 알고 있어서 후기를 찾아봤는데, 몇 안 되는 후기 속 불친절하다는 후기가 꽤 있었다.
어찌됐든, 엄마는 그래서 나를 혼자 키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맡겨진 시간이 많았고, 초등학생 때부터는 이모 집에서 자랐다. 엄마는 본인이 자라던 소도시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로 했다. 원래 엄마랑 나랑 살던 집에 이모네가 이사 오고, 나는 이모네와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전후해서 일어난 일이다. 내 교육을 위해 나를 대도시에 뒀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그 대도시와 소도시, 엄마 집과 이모 집은 차로 20분 남짓이었다. 나는 주말에만 엄마를 봤다. 많은 일이 있어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어렵긴 한데, 어찌됐든 그러면서 엄마랑의 유대를 쌓지 못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겠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자랐다.
엄마 머리 속에서는 ‘치과의사인 아빠’의 존재, 그리고 ‘엄마 혼자 키우는 딸’이라는 키워드가 (나에게는) 조금 무서운 형태로 결합됐나보다. 아빠가 치과의사니까, 그것보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직업을 가지길 원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하버드 가라’는 말을 꽤 진지하게 들었다. (하버드 못갔다. 원서도 안 썼으니 안 갔다고 하는 게 맞나?) ‘의학 박사’하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의학 박사가 뭔지 모르고 장래희망에 의학 박사를 썼더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거 되게 어려운 거야’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 때부터 시험 몇 개 틀렸는지에 대한 압박이 있었고, 반에서 3등 안에 들지 못하면 아주 크게 혼났다. 평일엔 엄마를 보지 못하니 전화로 혼나고, 주말에 얼굴을 보고 또 혼났다. 그게 무서워 거짓말을 하기도 했고, 그게 들켜서 더 크게 혼나기도 했다.
나는 음악을 사랑했다. 가수가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진짜 엄청 크게 혼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우회해서(?)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엄마는 “니 그딴 거 하라고 내가 돈 버는 줄 아나?”라고 했다. 그딴 거 아닌데..
물론 부모 자식은 늘 갈등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갈등을 겪고, 혼나기도 하고, 서로 부대끼며 감정의 잔해를 풀어간다. 나는 같은 행동을 평일에는 전화로 혼나고, 주말에는 만나서 또 혼나고, 그러고 나서는 다시 평일이 찾아왔다. 떨어져 있으니 그 감정을 풀지 못했다.
이게 문제였던 건지, 나는 사실 나이 많은 여자를 대하는 게 어렵다. 내가 엄마와 떨어져 살기 시작한 때 엄마가 아마 30대 후반이었을 거다. 그러고 내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수 없고, 아무런 기대치를 가지지 않게 된 게 엄마의 50살 내외일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나이대의 여자를 대하는 게 너무 어렵다. 무서우면서도 사랑 받고 싶었던 존재라, 그 나이대 여자를 대할 때 자꾸 삐걱댄다.
팀장도 딱 그 나이대 여자였다. 나는 방어에 대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