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소화제 먹고 극복해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식이장애? 소화제 먹고 극복해

식이장애의 정확한 시작은 모르지만, 심각해지게 만든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이직한 회사에서, 적어도 처음에는 팀장은 나를 꽤 좋아했다. 솔직히 내가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특히나 나는 손이 빠른 편이어서 기본적으로 업무 처리 속도가 빨랐다. 전 회사에서도 꽤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 받았고, 내 실력에 비해 과분한 평정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적어도 평균 이상은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니어임에도 이직에 성공했다. 이직했지만 막내였고, 막내인 만큼 각종 잡무도 빠르게 처리하면서, 경력직이니까 본업도 잘해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입사 후 1년 정도는 야근도 많이 했었는데, 식이장애가 조금씩 발현되면서였는지, 워라밸에 대한 열망이 생겼는지, 어쨌든 야근을 조금 덜하기 시작했다. 팀장은 전형적으로 야근을 해야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따로 불러서 야근 좀 하라고 했다. 그래야 조용한 환경에서 제대로 일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단다. 나는 내 시간도 중요한 사람이라, 팀장님께 ‘좀 일찍 나와서 해보겠다’고 했다. 일찍 나오는 건 의미가 없단다.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뭐, 꼭 이 이유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내가 진짜 뭔가 못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팀장은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나와 A 사원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A 사원이 실수를 해도 나를 혼냈다. 팀장이 나를 싫어하는 건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은 내가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내 탓을 했고, 몇몇 사람들은 네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팀장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 때쯤 한 동료와 술을 마셨는데, 동료가 되게 안타까워 하며 말했다. 웬만하면 남의 커리어라 함부로 얘기 안 하는데, 어쨌든 나랑 팀장은 성향이 안 맞고, 내가 굽신굽신하며 숙이고 갈 게 아니면 이직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 내가 너무 위태롭고 버티기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특히나 팀장과 이런 갈등을 겪으며 나는, 주로 거식으로 나타나던 식이장애에 눈에 띄는 폭식이 더해진 상황이었다. 동료는 이런 내 상황을 대략은 알고 있었다.
그 때 내 상황은 심각했다. 팀장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어김 없이 폭식을 하곤 했다. 어떤 날은 전골을 나름 든든하게 먹고도, 고칼로리의 르뱅/스모어 쿠키를 7개씩 먹었다. 남편은 나를 말리지 못했다. 폭식은 갑자기 짐승처럼 뭔가 먹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너무 슬퍼하면서 꾸역꾸역 먹었다. 그리고 그만 먹을까 싶을 때, ‘내일이면 내가 이 쿠키를 다시 편하게 못 먹겠지? 그땐 1개도 못 먹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주문한 쿠키를 다 먹어버리는 거다. 스트레스 받아서 먹는 것도 슬프고, 내가 좋아하는 쿠키를 폭식이 아니면 못 먹으니까 그것도 슬프고. 그걸 보는 내 남편(그 당시 애인)도 슬펐다.

이런 식으로 폭식을 하고 나면 어김 없이 운동 강박은 찾아왔다. 애초에 이 식이장애 자체가 지금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운동 강박이 하나 있다. 대개 운동 강박은 하루에 끝나지 않는다. 계속된다. 3일간 이 미친 운동 강박이 발현된 적이 있다. 첫째 날은 밤 11시에 용산에서 집까지 걸었다. 네이버 지도 3시간 20분 거리다. 웃긴 게 나는 걸을 때 운동 효과가 떨어질까봐 휴대폰을 안 봤는데, 당시 애인은 내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늦은 시간에 혼자 걸으니 말리지도 못하고, 근데 화도 나고, 걱정도 되고. 그 다음 날은 안암에서 집까지 걸었다. 네이버 지도 5시간 1분 거리다. 근데 네이버 지도는 최적 경로 기준이고, 나는 발 닿는대로 걸어 최적 경로로 걷지 않았다. 더 걸었다. 그 다음 날은 홍대에서 집까지 걸었다. 네이버 지도 1시간 51분 거리다. 3일 연속 일어난 일이다.
이러니 내 다리가 남아날 리가 없다. 나는 점점 움직이는 게 힘들어졌다. 계단을 잘 못 올랐다. 뛸 수도 없었다.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다. 어떻게 빠른 걸음 같은 느낌으로 버스를 타면, 버스 계단 두 칸이 그렇게 높아보일 수 없었다. 왜 저상 버스가 필요한지를 이런 식으로 알 생각은 없었다. 내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갈 때 의도적으로 계단을 피해주었다. 고맙지만 슬프고 비참했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자 역설적으로 내 우울감은 더 심해지고, 나는 이를 자학하듯 또 거식과 폭식, 강도 높은 운동으로 풀었다. 그럼 당연히 건강은 더 안 좋아졌다. 이런 상황을 보고, 회사의 다른 분이 이 정도 건강 상황이면 팀장에게 이야기하고, 병원을 다니든 뭔가 회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받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팀장에게 말하는 게 답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쨌든 내 이런 상황을 팀장이 알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설령 내가 진짜 일을 못해서 내가 미웠다면, 어쨌든 이런 배경이 있으니 그랬을 거라 양해해 주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 생각은 틀렸다. 아주 그냥 틀려 먹었다. 팀장에게 “팀장님, 요새 제가 혹시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냐”며 운을 뗐다. 팀장은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름대로 담백하게 이야기하려 했다. 사실 제가 조금 아프다. 아시다시피 밥도 잘 못 먹고, 건강도 안 좋아지고, 그래서 팀장님이 원하는 성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 몸도 회복하려 노력하면서, 일도 열심히 해볼 거다.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런 상황도 있으니 어쨌든 말씀은 드리고 싶었다고.
내가 얘기를 너무 압축한 걸까? 팀장은 내 말이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는듯 반응했다. 소화제 먹고 밥 먹으려는 노력이라도 해봤냐고 했다. 응? 아무리 식이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이게 소화제랑 무슨 상관인가.
내가 어릴 때 정신병원을 정신병원이라 하지 못하고,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만큼 정신병에 대해 쉬쉬했다. 인식도 그만큼 안 좋고, 무지했다. 근데 지금은 많이 나아진 줄 알았다. 아니더라. 여전히 이해가 부족하고, 근데 당사자가 아니니 100%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렇다 쳐도, 무지가 무례가 되는 경우가 있더라.
원래도 기대감은 없었지만, 이 때부터는 그냥 감정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