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kg가 안 되면 수면 내시경 못함,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40kg가 안 되면 수면 내시경 못함,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2년에 한 번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한다. 사실 대한민국 성인이 건강검진 결과가 완전 깨끗한 건 잘 못 본 것 같다. 자세가 문제가 있거나, 위염이 있거나 등등. 나는 주로 야식이나 매운 음식을 먹는 습관 때문에 위염 관련 소견이 계속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조금 다른 소견이 나왔다.
일단 소견을 듣기도 전에, 검진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나는 수면 내시경을 신청했는데, 담당 간호사님이 내 차트를 보고는 “이거 본인 무게 맞아요?” 물었다. “40kg 안 되면 위험해서 수면 내시경 못하세요” 충격적이었다. 내시경 기계가 입으로 들어왔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꺽꺽. 눈물이 나온다. 그게 내시경 기계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정신 없이 검사가 끝났다.

우울증이 있을 거라고 했다. 백혈구 수치도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낮다고 했다. 체중이 낮으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제일 큰 문제는 산부인과였다. 일반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면 저런 소견들은 검진 후 2~4주 안에 메일 등으로 전달 받는다. 심각한 게 아니라면.
그날 건강검진에서,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늘 당장 산부인과 예약을 잡고 가라고 했다. 나는 체중이 줄어가던 2021년 말부터 생리가 뜸해졌다. 사실 코로나 백신 때문일 수도 있다. 백신 1차 접종을 하고, 늘 1달에 한 번 잘 찾아오던 생리가 2달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2차 접종을 한 뒤에 아예 끊겼다. 또, 다낭성 난소 증후군 때문일 수도 있다. 근데 사실 55kg 내외이던 사람이 34kg까지 떨어졌는데, 이걸 원인에서 마냥 배제할 수도 없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내 자궁이 폐경 직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했다.

일단 외면했다. 먹지 못해서 그런 걸 아니까, 그리고 진료를 받으면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서 싫었다. 그 뒤에는 우울증 상담을 잡으려고 대학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예약이 너무 어려웠다. 막 울면서 전화하니까, 담당하는 직원이 나를 너무 안쓰러워했다. 그래도 진료 순서를 당길 수는 없었다. 한참 뒤로 진료를 잡아뒀다. 물론 이 예약은, 나는 결국 진료 전에 취소하고 말았다. 용기가 없었거든.
지금은 놀라우리만치 식사량도 늘었고, 꽤나 잘하고 있는다. 근데 사실 아직 내 생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을 가면 될텐데, 아직 뭔가 무섭기도 하다. 아, 다행히 수면 내시경은 하고도 남는 무게이기는 하다.
병원 가는 게 왜 무섭냐면, 내 몸이 망가졌다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 아프고, 당장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생리 안 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긴 하지만.. 아직 이런 측면에서는 갈 길이 멀었다. 인터넷에 나처럼 과도한 감량으로 인해 생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얘기가 나오는데, 예전 무게만큼 돌아가야 생리를 되찾은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내 무게가 어떻든 상관 없다고 말하면서도, 아직 예전처럼 통통한 몸을 갖는 게 두려운 걸까? 많이 올라 왔는데, 이런 사실을 직면하면 때때로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내 이야기를 보고,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한다. 내 글이 식이장애의 한 가운데 있는 누군가에게는 거의 트리거가 될만큼 솔직한 이야기라,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글일 거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쓰는 이유는 ‘반면교사’가 됐으면 해서다. 망가진 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는 머리가 많이 빠지지 않고, 내시경은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생리를 하지 않는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나는 배가 고픈데, 먹을 수 없는 게 너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래서 나는 제로음료와 곤약젤리 등 0kcal 식음료를 미친듯이 섭취했다. 방울토마토 등 칼로리가 낮은 음식은 안 됐다. 칼로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절대 안 됐다.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제로콜라 355ml 캔을 7캔씩 먹고, 곤약젤리를 8팩씩 먹었다. 이러면 어떻게 되냐면, 소변이 고장난다. 말 그대로 고장난다. 계속 화장실을 간다. 잔뇨감이 계속 있다. 조금만 소변을 참으면 말 그대로 너무 너무 아프다. 먹는 건 없는데 저렇게 액체나 젤리 같은 것만 냅다 들이부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어딘가를 갈 때 화장실 위치 파악은 필수였고,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화장실을 갔다. 그러면서도 배가 고파서 제로콜라를 계속 먹었다. 내 몸이 망가지는 걸 아는데도 계속 그랬다.
사실 아직도 제로 콜라를 많이 마시긴 하지만, 음료를 좋아하는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게 마신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고장’난 상태로 살아간다. 아주 조금만 많이 마시면 1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고, 소변 때문에 잠에서 계속 깨고, 소변이 계속 마려워서 잠도 못 잔다. 어제도 밤 10시에 잠들어 12시 4분에 화장실 때문에 깨고, 1시까지 3번 화장실에 갔다. 소변을 보는데도 3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겨우 잠들고 4시 30분에 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고, 소변을 보느라 잠이 깨서 다시 30분간 휴대폰을 보니 또 소변이 마려워 또 화장실을 갔다. 겨우 잠들었다. 오늘 하루도 피곤할 것이다.

한 번 망가진 몸은 돌아오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본인의 몸을 파괴하는 이 행위를 멈출 수 있다면, 내가 이 아픔을 하나하나 꺼내는 게 아주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식이장애는 그냥 몸을 마르게 하는 게 아니고, 정신만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그건 꽤나 불편한 흉터다.
이게 너무 슬퍼서 미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때때로는 생리를 잃어버린 내가, 화장실을 계속 가야 하는 내가 너무 아플 때가 있다. 나는 나다. 나 자체로 행복해야 한다.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다가 아프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