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밖에 못 먹는 맛집 인스타그래머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한 입밖에 못 먹는 맛집 인스타그래머

멀쩡한 척이 하고싶었나보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쯤, 나는 맛집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원래도 먹을 걸 좋아하고, 창작 욕구가 강한 편이라 이전에도 맛집 인스타그램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그치만 오래 가진 못했다. 이번 맛집 인스타그램은 창작 욕구도 있지만, 음식에 대한 집착이 그 시작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나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정말 좋아하는데, 식당에 가면 조금밖에 못 먹으니까 할 게 없다. 누군가 먹는 걸 지켜봐야 한다. 그 시간은 정말 괴로웠다. 나 잘 먹을 수 있는데. 특히 내 식사를 대부분 함께 하는 그 당시의 남자친구, 지금의 내 남편은 먹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솔직히 보고 있자면, ‘내가 더 잘 먹는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괴로웠다. 그래서 식사 시간에 다른 할 거리가 필요했다.

음식 사진을 찍었다. 동영상도 찍었다. 한 입 먹어본다. 무얼 먹었는지 메뉴를 기록하고, 맛을 자세히 표현한다. 식당 정보와 분위기를 쓰고, 해시태그까지 열심히 만든다. 그동안 남편은 먹는다. 그러고 나면 식사 시간이 겨우 끝난다.
내 맛집 인스타그램은 맛 표현이 엄청 자세했다. 내가 뭐 대장금 같은 미각을 가져서가 아니다. 솔직히 한 입 먹으면 그다지 쓸 말이 없다. 그러면 재료를 하나하나 다 분석한다. 오이냉국을 먹으면 오이, 얼음, 깨, 미역, 국물 등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쓴다. 사람들은 내 맛 표현이 자세해서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라도 음미하며 음식 맛을 오래 느끼기 위함이고, 내가 많이 먹지 못하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고, 내가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가스라이팅 같기도 했다. 나는 이런 맛집 인스타그래머라고. 써야 되니까 안 먹는 거라고.

먹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길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에 돈만 쓰는 것도 싫었다. 요새는 인스타그램도 체험단이 잘 돼 있어서, 팔로워 1천명이 안 됐을 때쯤 첫 번째 협찬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주로 체험단이 있을 때만 밥을 먹었다. 그리고 체험단의 경우, 대개 음식 제공량이 푸짐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주로 남자친구와 체험단을 다녔다. 남자친구는 원래 식사량이 많은 편이 아니다. 나는 배가 고픈데 음식이 눈 앞에서 남는 걸 보는 게 싫었다. 남자친구에게 계속 먹어달라고 했다.
내가 먹지 못하는 걸 숨기기 위해서, 내 자신조차 속이기 위해서 휴일에는 하루에 체험단을 3개씩 잡기도 했다. 아침에는 닭 한마리, 점심에는 토스트, 저녁에는 일식 집을 갔다. 남자친구는 그러면 꾸역꾸역 닭 한 마리를, 토스트 2인분을, 일식 집에서 주는 볶음밥과 오므라이스를 다 먹어야 했다. 사장님이 체험단 글 잘 부탁한다고 서비스라도 주면, 그게 너무 무서웠다. 나도, 남자친구도 그랬다. 남자친구는 먹느라 괴로웠다. 나는 음식이 남으면 울곤 했다. 나는 배가 고픈데 음식이 남는 게, 내가 생각해도 이상해서 계속 먹어달라고 했다. 때로는 이상하리만큼 먹었다. 남는 걸 못 보겠어서, 밑반찬류까지 다 먹었다. 족발집에 가면 나오는 나물, 김치, 쌈무, 채소, 젓갈, 콩나물 국 등을 다 먹어야 했다. 대개 족발집, 고기집, 한식집은 반찬을 되게 넉넉하게 주는데, 나는 메인 음식을 먹다 지친 남자친구가 남긴 반찬만 계속 먹었다. 남자친구는 억지로 먹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음식이 남는 걸 보는 게 싫어서 먹었다. 그러고 후회하고, 운다.

소위 말하는 먹토를 하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치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남자친구도 나도 망가져만 갔다. 마른 체형에 가깝던 남자친구는 어느덧 입던 옷이 안 맞기 시작했고, 바지사이즈 28을 입던 나는 26도, 24도 안 들어가서 마른 사람들을 위한 쇼핑몰에서 옷을 사야 했다. 그러고도 안 돼서 매일 매일 벨트를 매고, 벨트를 가장 졸라매서 바지 허리는 늘 구겨진 상태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늘 바지 안에 다른 바지를 받쳐 입기도 했다. 사실 살이 찌고, 말고는 상관 없다. 내가 30kg든 130kg든, 남자친구가 50kg든 70kg든 상관 없는데, 중요한 건 둘의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가고 있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