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0kg대를 봐야 정신을 차릴까?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내가 30kg대를 봐야 정신을 차릴까?
이미 이상한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정신을 못차렸다. 그리고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나도 이게 아닌 거 아는데.. 이때 쯤 일본여행을 갔는데, 체중계 가져가면서 현타를 제대로 느꼈다.
왜냐하면, 이미 그때 내 몸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추위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느꼈다. 더위를 못탄다. 내가 베트남 여행을 여름에 갔는데, 35도였나...? 에어컨도 잘 안 틀어주는 베트남인데도, 운동 강박 때문에 베트남을 하루에 4시간씩 걸어다녀도 나는 추워했다. 웬만해서는 가디건을 입고 다녔으며, 땀도 거의 흘리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어떤 외국인이 와서 말을 걸기도 했다. 태어나서 나보다 마른 사람 처음 본다고. 같이 있던 남편이 뭐라고 하려고 했는데, 내가 말렸다. 나도 내가 비정상적으로 마른 걸 알아서.. 그 상황이 참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할 짓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39kg를 보고도 정신을 못차렸다. 뭐,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싶지도 않지만 대충 복기해보자면 40kg대까지는 괜찮으니까(아니다), 30kg 후반대는 그냥 오차범위이지 않을까? 한 거다. 그리고 그 오차범위는 점점 커져가더라. 몸무게는 계속 계속 내려갔다. 158cm에 몸무게 30kg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이 때쯤부터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다. 왜냐면 먹어야 되니까. 맨날 배탈났다고 하고, 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MBTI ESFJ이던 내가, 일주일에 최소 5회 이상 약속을 잡던 내가 1달에 약속을 1~2개정도로 줄였다. 인간관계가 거의 파탄나고 있었다. 그나마 이걸 이해해 주는(?) 남편, 그 당시 남자친구가 옆에 있었지만, 기도 세고, 억지로 먹였다가는 울거나 난리 치는 나를, 그는 말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내가 계속 이러니까, 역설적으로 그는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와서 그도 뼈를 치고 후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식이장애가 우리 둘 모두를 가스라이팅한 걸까?
그 무서운 식이장애,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식이장애인줄 몰랐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해도 한 번도 식이장애라는 말을 떠올려 보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