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식이장애가 제일 답답한 건 나야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이 식이장애가 제일 답답한 건 나야


'니는 한 번도 말랐던 적이 없노'라는 엄마의 말은 내 가슴 속에 깊게 박혀 있었던 걸까? 사실 처음에 그냥 운동을 시작했는데, 많이 먹으니까 살 찌는 것 같아서 체중계를 샀고, 따로 목표랄 게 없었다. 근데 점점 무게가 빠지는 걸 보니, '어? 그럼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번 말라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아마 46.77kg가 내 키의 표준 무게 범위 중 가장 낮은 무게였다. 그래서 46.75kg정도까지 빼야겠다고 생각했다.(내 체중계는 0.05kg 단위로만 무게가 나왔다.)

근데 여기서 또 내 몹쓸 성격(?)이 나왔다. 나는 '미리미리' 한다. 이렇게 어딘가 글을 쓰면 세이브 원고가 있어야 되고, 회사에서 일을 해도, 학교에서 뭔갈 할 때도 다 '미리미리', '빨리빨리' 해야 마음이 놓였다. 예측치 못한 상황이 오는 게 싫었다. 근데 나는 먹는 걸 좋아하고, 내 무게 추이를 보니까 좀 잘 먹는 날은 1~2kg가 금방금방 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늘 저체중이고 싶으니까, '미리' 2kg 정도는 빼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4.75kg가 다시 내 목표가 됐다.
근데 그러고 나니까, ‘이틀 연속 많이 먹으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또 다시 목표를 잃었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40kg 초반대가 돼 있었다.

이전까지는 '운동 열심히 했나보네, 비결이 뭐야' 등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쯤부터는 '왜 이렇게 말랐냐', '어디 아프냐'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다. 'ㅇㅇ님은 언제부터 그렇게 병적으로 말랐어요?'라는, 그 때 내 모습을 보면 되게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꽤 무례하기도 했던 말을 들은 때도 그 시기였다.
근데 나는 그 이상한 관심이, 더 이상하게 받아들여졌다. '받아들였다'라는 표현을 써야 맞을 것 같지만, '받아들여졌다'라는 표현이 그 당시로는 더 적절했다. 그냥 뭔가 씌인 것처럼, 누가 나한테 말랐다고 하는 게 싫으면서도 그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늘 통통과 뚱뚱 사이였던 내가 말랐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때로는 무례한 말을 듣는 게 싫으면서도 다시 뚱뚱하다는 말을 듣는 게 무서웠나보다.
당연히 나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진짜 웃긴 얘기지만, 사실 나는 꽤나 똑똑한 사람이다. 공부도 꽤나 잘했고, 그래도 엄마가 주변인들에게 꽤 자랑할 만큼의 대학을 나왔다. 그래서 나도 알았다.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는 걸. 그 당시에 내가 내 남편에게 했던 말이, "누군가가 지금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당연히 그러지 말라고, 네가 말랐든 뚱뚱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냥 네가 행복한 게 중요한 거라고 말할 텐데 나는 그게 안 돼"였다.
그렇게 마르는 게 이상한 걸 몰랐던 게 아니다. 아는데 안 됐다. 그래서 정말 답답했다. 그래, 이 식이장애가 제일 답답한 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