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체중계는 죄가 없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사실 체중계는 죄가 없다
2021년 2월 28일, 체중계 앱에 몸무게가 기록된 최초의 날이다. 그리고 이 날부터 2023년 5월 13일까지,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몸무게를 기록했다. 길고도 끔찍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동안 매일 무게를 쟀다는 사실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것들이 있다.
1. 매일 쟀다는 게 하루에 한 번만 몸무게를 쟀다는 게 아니다.
2021년 2월쯤 코로나가 시작됐는데, 식이장애 측면에서 보면 다행히도(?) 내 첫 번째 회사는 재택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먹고, 무게도 덜 쟀다. 그런데 2022년 이직한 회사는 재택을 했다. 뭐, 멸망의 서막이라고 봐도 되려나... 재택이 죄는 아닌데, 재택을 하니까 내 맘대로 안 먹을 수 있었다. 내 맘대로 몸무게도 계속 잴 수 있었다. 뭘 조금 먹으면 그대로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재택을 하는 날은, 어림잡아 기억해봐도 하루에 4번 이상은 몸무게를 쟀던 것 같다.
2. 나는 그 2년 동안 회사도 가고, 호캉스도 가고, 해외여행도 갔다.
그게 무슨 말인 줄 알아? 호캉스에 가서도, 여행에 가서도 몸무게를 쟀다는 거다. 끔찍하기 그지없다. 호텔에 가면 프론트에 체중계가 없냐고 물어봤다. 근데 사실 알겠지만, 체중이라는 게 같은 집에서 재도 바닥 각도나 위치 따라서도 달라지고, 체중계 따라서도 다르더라(경험담). 그래서 집에서는 체중계 자리가 있었다. 근데 나는 이 2년간 내 몸을 혹사하면서 이상한 규칙(쪄도 되는 날 1일, 빠져야 되는 날 1일 등)을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 몸무게가 빠져야 되는 날에 빠지지 않으면 말 그대로 '환장'했다. 이걸 종합하면, 나는 몸무게 재는 장소가 바뀌었으니까, 몸무게가 빠져도 '이거 집에서 내 체중계로, 내가 원래 재는 자리에서 재면 알고 보니 쪄있는 거 아냐?' 이런 답도 없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 체중계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 태국 여행을 갈 때도 그랬다. 수하물에 건전지, 체중계 넣어도 되는지 확인하는데 현타가 왔다. 근데 웃긴 게, 그렇게 내 체중계를 가져가도 '장소가 달라져서, 이 무게 믿을 수 있는 건가?' 또 의심했다. 찌면 찌는대로 난리, 빠져도 그 무게를 못 믿었다. 그래서 몸무게 잰 장소가 바뀌는 여행 첫날, 숙소 바뀐 첫 날 등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같이 여행 간 애인이자 지금의 배우자조차 편히 여행하지 못하게 하며,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내 사람을 열심히도 괴롭혔다.
체중계가 죄는 아닌데, 그 작은 네모난 물건이, 조그만 숫자가 나를 참으로 오래도 괴롭혔다. 정확한 식이장애의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숫자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기뻤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숫자는 '내려가야' 하는 숫자고, 빠지지 않으면 나는 절망하고 울고 좌절했다. 나는 내 앞에서 죄인이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