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우리는 보통 부모님의 도시에서 삶을 시작하잖아요. 대학 진학이나 취업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기도 하지만 그런 이벤트가 없다면 평생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특히 그 시작이 서울이었다면 더더욱 그렇고요.

저도 태어난 이후로 줄곧 서울이라는 도시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렀어요. 부모님을 따라 몇 번의 이사를 하거나, 취업 후 독립, 결혼 후 신혼집을 얻기도 했지만 동네만 조금 달랐을 뿐 결국 모두 서울 내의 이동이었죠. 서울살이에 큰 불만은 없었어요. 그러던 제가 신혼집을 얻으며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던 것 같아요. 꼭 서울에 살아야 하는 걸까? 하고요.

신혼집을 고를 때 딱 두 가지만 고려했어요. 남편과 나의 회사에서 가까운가, 감당 가능한 금액인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신혼집을 얻었지만 주거 환경 자체는 그다지 쾌적하지 못했어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8분 정도 거리임에도 언덕 지역에 위치한지라 땀이 많은 남편은 여름 퇴근길이면 온몸이 젖은 채 집에 도착하곤 했죠. 건물과 건물 사이가 좁은 빌라 단지라 거실 창문을 열면 건너편 집이 보여 커튼 없이는 생활할 수 없었고요. 또 공원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운동 한번 하려 해도 공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미 기운이 다 빠지더라고요. 출퇴근 거리가 가장 큰 장점이었지만 2호선은 언제나 지옥철인지라 그마저도 그리 큰 장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점점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저는 부동산 어플로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물론 서울의 집만 알아봤습니다. 서울을 벗어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으니까요. 근데 저희가 모은 돈으로 살(buy) 수 있는 집이 없더라고요. 평당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고 찾다 보니 지도는 점점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기도의 한 지역을 보게 되었는데 저희 신혼집 전세보다 저렴하면서도 집은 넓고 창문도 뻥 뚫려 있는 거예요. (거실 창문을 열지 못하는 게 은근 스트레스였거든요.) 주변엔 공원과 도서관이 있고 대형 몰도 있어 생활하는데도 편리해 보였어요. 강남에 있는 저의 회사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지만 남대문인 남편 회사까지는 30분이면 갈 수 있었죠.

주말에 경기도에 있던 그 동네에 방문했고 그곳은 제 마음에 쏙 들었어요. 그리곤 허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그동안 서울만 고집했을까. 아니, 왜 서울밖의 삶은 고려해보지 않았던 걸까. 그간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았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퇴사 후 세계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서울 밖 살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그때부터 이미 서울 탈출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회사와의 거리도 고려할 필요가 없기에 그때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되었고요. 오직 내가 원하는 도시의 조건만 고려할 수 있게 되었죠.

✨ 그럼 이제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을 생각해 볼까요?

저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데요. 바로 방구석 지도 여행이에요. 방구석 지도 여행은 카카오맵 켜고 대한민국 지도를 확대해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아주 저렴한 여행 방법이에요. 여긴 주택단지가 많네, 여긴 카페가 많네, 여긴 도서관과 책방이 많네, 여긴 공원이 많네. 생소한 지역을 지도를 통해 한 곳씩 방문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방구석 지도 여행을 떠날 때마다 제 손가락이 줌을 당기게 만드는 곳은 연두색으로 표시된 곳 즉, 큰 공원이 있는 곳이었어요. 이런 저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아무래도 제가 살고 싶은 도시의 첫 번째 조건은 녹지가 많은 곳, 큰 공원이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시골의 자연도 좋지만 저는 도심 속 자연을 좋아해요. 세계여행을 하며 외딴곳의 시골집에도 살아보고 도시에도 머물러봤는데 저는 아무래도 도시 타입이더라고요. 특히 미니 서울 같은 알바니아의 티라나라는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할 때 만족도가 가장 높았어요. 서울 같은 편리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울보다 인구는 적어 복잡스럽지 않고, 곳곳에 작고 큰 공원이 정말 많아 산책하기도 좋았거든요.

공원과 더불어 호수도 있으면 좋겠어요. 오흐리드라는 도시의 호숫가 근처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호수는 공원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푸르른 나무 아래서 물멍을 때리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저녁을 먹고 호숫가를 따라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면 '아, 오늘 잘 살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요.

도심 속 공원, 호수와 더불어 포기하지 못하는 조건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도서관, 책방, 서점의 유무입니다. 부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에 살고 싶습니다. 그럼 도서관 운영도 활발할 테고 동네 책방도 제법 많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거든요. 

🙋🏻‍♂️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니니 남편의 의견도 물어봐야겠죠?

나 : 여보, 여보가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은 뭐야?

남편 : 음... 적당한 유동인구가 있으면 좋겠어. 너무 바쁘지도, 너무 한가하지도 않을 만큼.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 힘들었던 것 같아. 지금 머물고 있는 서산은 반대로 좀 적은 것 같고.

나 : (인터넷 서칭을 해본다) 2024년 기준, 서울(605.2 km²)의 인구는 936만 명이고 서산(739.2 km²)의 인구는 17만 명이래. 면적대비 인구가 너무 극과 극이긴 하네. 다른 조건도 있어?

남편 : 집 근처에 쾌적한 산책로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 5분 거리 내에 대형마트가 있으면 더 좋고. 우리는 장을 자주 보는데 차는 없잖아. 또, 요즘 드는 생각은 새로운 인풋을 얻을 수 있거나 머리를 리프레시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나 : 음... 그럼 우리는 시골살이는 못해보겠는걸?

남편 : 그러게...?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저희는 아무래도 미니 서울을 바라고 있나 봅니다.

🏡 정리해 보자면, 저희가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은 이렇습니다.

나 : 도심 속 자연, 공원과 호수, 도서관/책방/서점

남편 : 적당한 유동인구, 산책로, 대형마트, 문화공간

살고 싶은 도시를 떠올려보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했어요.

책과 관련된 공간이 많았으면 하는 저의 바람과 새로운 인풋을 얻을 수 있는 문화공간을 원하는 남편의 바람을 통해 외부로부터 긍정적인 인풋을 얻고 싶어 하는 저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365일 붙어있는 부부이기에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고요. 또, 시골의 자연보다 도심 속 자연을 선호하는 점, 적당한 유동인구를 원하는 것을 보면 저희는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 인것 같고요.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은 계속 구체화하는 중이에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완벽한 곳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곳을 자세히 그리다 보면 내가 살고 싶은 도시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