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테일이 부족한 특수교육 현장에 대하여
작성자 레몬자몽
유아특수교육 현장 이야기
✏️ 디테일이 부족한 특수교육 현장에 대하여
얼마 전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일의 성공과 실패는 디테일에서 좌우된다는 내용이에요. 이 책의 저자는 유명 세일즈맨으로서, 영업이나 사업,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특수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특수교육도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저는 그 본질이 같다고 생각해요. 아래 글은 이 책을 통해 고찰한, 특수교육 현장에 대한 저의 생각이에요.
사실 특수교육 현장에 디테일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은 수없이 느껴왔어요. 예시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예로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중 유아특수교사로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바로 ‘완전통합 실현을 위한 기반 부족’이에요. 이 문제에 대해 크게 유아 배치, 특수교육실무사 배치, 그리고 추가 지원인력 배치에 대해 다뤄보려고 해요.
1️⃣ 특수 유아 배치 문제
초등특수나 중등특수와는 다르게, 유치원은 기본적으로 ‘완전통합*’으로 운영돼요. 즉, 일반 유아들과 특수 유아들이 일과 내내 한 교실에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해요.
한 유치원에는 (특수교사가 1명이라고 할 때) 특수 유아 정원이 4명이에요. 그런데 연령이 다 다른 경우가 태반이에요. 예를 들어 5살 1명, 6살 1명, 7살 2명이 배치됐다고 해볼게요. 그러면 특수교사는 몸을 셋으로 쪼개지 않는 이상, 하루에 1명 또는 2명밖에는 볼 수 없어요.
* 완전통합: 만 3–5세 장애/비장애 유아가 구분 없이 개개인의 요구가 반영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일반유아와 특수교육대상유아가 등원에서부터 하원하기까지 모든 일과를 완전 통합해,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협력하는 형태로 함께 학급을 운영하는 것.
이미 여기에서부터 교육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교사는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두 알기 어렵기 때문에, 보호자와 하원하며 대화를 나누면 전문가처럼 보이기 힘들어요. 실제로는 특수교사보다 특수교육실무사, 또는 특수교육 관련 자격증도 없는 일반 자원봉사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특수 유아도 있어요. (아마 보호자들이 구체적인 실정을 알게 된다면 무척 분노하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완전통합은 해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 유아특수교사들은 특수 유아가 기관에서 최대한의 교육 경험을 얻어갈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통합을 하라는 것 자체가 이미 디테일이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에요. (물론 저는 신규 교사일 때부터 혼신을 다해서, 어떻게든 완전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완전통합과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에서도 다뤘어요.
2️⃣ 특수교육실무사 배치 문제
다음으로 특수교육실무사* 배치 문제를 보려고 해요.
특수교육실무사는 교육공무직으로서 유아특수/초등특수/중등특수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채용돼요. 특수교사는 학교급별로 따로 뽑지만, 실무사는 그렇지 않아서 어떤 학교급에 배치될지 미리 알 수 없어요.
*특수교육실무사: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의 학습 및 생활을 지원하는 교육공무직원으로, 학습 보조, 생활 지원, 환경 관리 등을 담당하는 역할.
한 가지 확실한 건 대부분 유치원 근무를 기피하신다는 점이에요. 유치원에 배치되면 합격을 했음에도 가지 않고 다시 시험을 보시는 분들이 계실 정도예요. 그만큼 ‘유치원’이라는 곳의 업무가 과중하고, 유아들의 발달 특성상 손이 정말 많이 간다는 뜻이에요.
(물론 초등특수나 중등특수가 편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 저도 초등특수나 중등특수 동료들이 많아서 각 현장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잘 알고 있어요.)
유치원은 ‘쉬는 시간’의 개념도 거의 없고, 아이들의 연령이 낮아 자조기술이 부족해서 손이 많이 가고, 자잘한 시설 관리를 위한 일손도 부족해요. 저희 유치원의 특수교육실무사님만 해도 등원 지도, 쉬는 시간 없이 특수 유아 지원, 에듀케어반 하원 지도, 각종 전화 응대, 통합반 수업 자료 제작, 텃밭 관리, 모래놀이터 관리 등 잠시도 앉아 계시지 못할 만큼 많은 일을 하고 계세요.
이렇게 유치원이 일이 많아도, 아이들이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유치원 근무를 희망하시는 실무사님들도 분명 계세요.
그런데 현재는 학교급을 나누지 않고 특수교육실무사를 배치하고 있어요. 그래서 유치원 근무를 희망하던 실무사님이 중학교에 배치되거나, 중학교 근무를 원하시던 실무사님이 유치원에 배치되는 일이 종종 생겨요. 유치원 근무를 원치 않던 실무사님을 배치받게 되면 유치원 입장에서도 난감하고 협력이 쉽지 않아요.
이런 특수교육 현장의 니즈를 이해한다면, 더 나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특수교육실무사를 학교급별로 따로 채용해 배치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실무사님들이 원하는 학교급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비용이 더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고, 특수교사와 다른 교사들과의 협력도 훨씬 원활해질 테고, 이는 결국 특수 유아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니까요. 실무사님도 원하는 학교급에서 일하고, 학교도 그 학교급에 적합한 인력을 제공받는 셈이니 서로에게 좋은 구조라고 생각해요.
물론 유치원에 지원하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라면 유치원의 업무량이 실제로 많다는 걸 의미하니까, 그에 맞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요? 어쩌면 유치원이라는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업무량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요.
(사족: 특수교육실무사와의 긴밀한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든 유아특수교사들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협력적인 실무사님을 배치받는 건 쉽지 않아요. 유치원 일이 너무 힘들다며 교육과정 시간이 끝난 1시 30분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실무사님들도 계세요. 그러면 유치원은 이 팀원 한 분을 잘 달래서 함께 가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이건 조직 전체에 정말 비효율적이에요. 저는 감사하게도 아주 협조적이고 열정적이신 실무사님 두 분과 일해본 경험이 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특수교육실무사와의 협력에 관한 내용도 따로 써보려고 해요. 그리고 지금 함께 일하고 계신 특수교육실무사님과의 인터뷰도 담아볼 계획이에요.)
3️⃣ 추가 지원인력 배치 문제
특수교육 현장의 디테일 부족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추가 지원인력 배치’예요. 물론 기본적으로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예산 자체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인력 부족이 너무나 자명한 현실이니, 이번에는 그 ‘기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그에 앞서, 특수 유아들이 어떻게 유치원에 오게 되는지 설명이 필요해요. 이 아이들은 특수교육대상자로 진단을 받고 유치원에 ‘배치’돼요. 공립유치원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적 장애* 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로 판정받아서 오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발달지체***’로 선정되어 와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영유아 시기에 특정 ‘장애’로 진단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낙인을 피하기 위함이에요. 그러다 보니 유치원에 배치되는 특수 유아들 중 ‘발달지체’로 선정되는 아이들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어요.
*지적 장애: 지적 기능과 적응 행동에 어려움이 함께 있어 교육적 성취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자폐성 장애: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과 활동을 보임으로써 교육적 성취 및 일상생활 적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
***발달지체: 신체, 인지, 의사소통, 사회·정서, 적응행동 중 하나 이상의 발달이 또래보다 현저히 지체된 영아 및 9세 미만 아동.
이러한 ‘발달지체’ 판정의 취지는 정말 좋아요.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문제는 유아들의 장애 중증도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지원인력 배치’예요.
언어, 인지, 자조 기술 등이 거의 일반 유아와 다르지 않은 특수 유아도 ‘발달지체’예요.
반대로, 시도 때도 없이 교실을 뛰쳐나가고, 다른 아이를 때리고, 놀잇감을 훼손하는 특수 유아도 똑같이 ‘발달지체’ 판정을 받아요. 후자의 경우에는 일대일로 지원 인력이 붙어도 아이를 놓치는 일이 있고, 실제로 통제가 쉽지 않아요.
교육청의 지원 인력 배치 매뉴얼이 어떻게 되는지는 ‘심의위원회의 기밀 사항’이라며 알려주지 않아요.
어떤 매뉴얼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대부분 특수 유아의 ‘중증도’가 아니라 ‘숫자’를 먼저 본다는 점이에요. 왜 그럴까요? 숫자가 가장 수치화하기 쉽고, 눈에 보이며, 명확한 지표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아요. 특수 유아 숫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힘든 건 아니에요. 제가 작년에 맡았던 특수 유아 4명에게 들어간 에너지를 다 합쳐도, 올해 맡았던 특수 유아 1명에게 들어간 에너지의 절반도 되지 않았어요.
특수교육에서는 ‘특수교육대상학생에 대한 개별화교육(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IEP)’을 실천하라고 해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도 명확히 명시되어 있어요. 그런데 정작 그 특수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전혀 개별화되어 있지 않아요. 디테일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특수 유아를 배치하는 과정에서부터 연령을 뒤섞어서 배치해 특수교사를 매일 만나기조차 어려운데, 어떻게 질 높은 특수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더공감교실*’ 같은 사업으로 조금씩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너무 많아요.
*더공감교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학급별로 특수교사를 배치해 공동담임제로 통합교육을 실현하는 사업.
특수교사와 가장 긴밀하게 아이를 지원하는 특수교육실무사를 채용하는 과정부터 디테일이 부족한데, 어떻게 유아와 보호자가 만족할 만한 특수교육을 공교육 내에서 제공할 수 있을까요?
교육 현장의 필요를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지표만으로 추가 지원 인력을 배치하는데, 현장의 교사들이 어떻게 열의를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개별화된 지원을 제공하기 어려운 교육 환경에서, 과연 양질의 개별화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특수에듀케어와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그 부분은 다음에 다뤄보려고 해요.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질 높은 유아교육 현장을 만들기까지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하물며 유아특수교육은 더더욱 그렇겠지요.)
저는 올해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나 소진이 심한 한 해를 보냈어요.
아이들을 보다가 몸이 망가져서 다니는 정형외과나 한의원 비용?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보호? 그런 건 정말 괜찮아요.
제 심리적 소진의 8할은,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교실을 둘러보고는 현장의 고충을 이해한다 말하는 장학사님들, 어려운 건 알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교육청 관계자분들, 유치원의 완전통합교육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으면서 이런 어려움을 ‘해걸이’라고 표현하시는 교육과장님 때문이었어요.
저는 현장을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내년에 대학원에 가게 되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될 것 같아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유아특수교육 현장이 지금보다 더 디테일해졌으면 좋겠어요.🌱
*대표 이미지 출처: ChatGP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