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패션 트렌드 ‘컬러 블로킹’: 무채색 대신 원색 패션이 뜨는 이유 🎨
최근 몇 년간 패션은 미니멀리즘과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 속에서 은은하고, 고급스럽고, 조용한 방식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속에서 잔잔한 컬러들이 주류를 이뤘죠. 여기에 더해 밀레니얼 세대의 상징 같은 그레이와 베이지 컬러가 몇 시즌을 주도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채도 높은 원색이나 완전히 상극인 색을 섞어 입는 방식이 자주 눈에 띕니다. 과연 어떤 변화가 생겨나고 있는 걸까요?

드뮤어 룩과 미니멀리즘에서 컬러 블로킹으로, 컬러 패션의 등장

한동안 패션 시장은 베이지와 카멜, 블랙 위주의 드뮤어 룩이나 조용한 럭셔리, 미니멀리즘 등이 주도해 왔습니다. 요란했던 스트리트 패션의 시절이 지나가고 난 후 그에 대한 반발로 절제와 간결함, 안정과 지속성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전하고 차분한 뉴트럴 톤의 지속이 피로감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부유층의 유니폼, 취향을 보여주기 위한 절제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 거죠. 이에 따라 컬러의 사용이라는 반동이 찾아왔습니다.
컬러의 유행에는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컬러 사용이 급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까이는 2008년 금융 위기 때 맥시멀리즘이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도파민 드레싱이라고도 합니다. 세상이 불안정해지는 걸 느낄 때 사람들은 옷을 통해 자신이 여기 있다는 존재의 감각을 깨우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흐름을 거치며 시각적 자극을 주는 컬러에 대한 열망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컬러 코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제 강렬한 색의 대비는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무채색의 지루함을 깨는 환기의 방식입니다.
특히 SNS 플랫폼에서 이런 방식은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컬러는 옷의 정교한 패턴, 봉제의 완성도, 소재의 질감보다 훨씬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예컨대 블루 기반의 데님이나 스포츠웨어와 옐로 컬러의 결합은 레트로 Y2K 룩에서 인기를 끌었고, 브라운 컬러에 핑크 조합은 따뜻함 속에 튀는 포인트를 만들며 키치한 2000년대 초반 감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물론 이런 컬러 조합이 예전에 없던 건 아닙니다. 다만 사용되는 맥락과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디지털 세대가 과거의 유산을 시각적 콘텐츠로 재생산하며 유행의 한복판으로 다시 가져온거죠.

원색을 활용하고, 잘 사용하지 않던 색을 충돌시키는 ‘컬러 블록킹’은 단순한 레트로의 재현이나 튀는 포인트를 넘어서 체계적이고 세련된 미감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여러 패션 디자이너의 컬렉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크뮈스의 경우 남프랑스 감성을 기반으로 원색의 강렬한 미학을 감각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화이트와 함께 핫핑크와 솔리드 레드, 파스텔 옐로, 인디고 블루 등을 큼지막하게 배치해 휴양지 감성과 모던한 분위기를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미우미우나 프라다는 약간 다른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단정한 프레피 룩, 미니멀 착장을 선보이면서 퍼플 니트에 옐로 칼라, 그레이 슬랙스에 원색의 스니커즈 등으로 어딘가 이질적이고 어색한 컬러 조합을 제시합니다. 치노 팬츠에 셔츠처럼 익숙했던 이전의 룩이지만, 새로운 컬러 조합을 통해 훨씬 신선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마르니도 컬러 블록킹을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브랜드입니다. 채도 높은 상극의 컬러를 스트라이프나 체크 패턴, 배색 니트로 풀어내면서 시각적인 위트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현대적 미니멀리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오라리는 원사 본연의 결을 살려 조색된 뉴트럴, 어스 톤 속에서 옐로, 그린, 블루 등의 파스텔 컬러를 절묘하게 배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들 로고를 숨기는 대신 ‘이질적인 색의 조합’으로 개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하이엔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패션의 반전: ‘모나미 룩’에서 강렬한 컬러 유행까지

사실 국내라고 모노톤의 소위 모나미 룩과 무채색이 언제나 주류였던 건 아닙니다. 90년대를 돌아보면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잼이나 영턱스클럽 등의 댄스 그룹들, 베네통과 아이스버그, 랄프 로렌 같은 컬러풀한 브랜드의 인기, 스키장과 스노보드 패션 등이 이어지면서 X세대의 시대에 원색과 네온 컬러, 컬러 블록킹은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IMF 구제 금융 시절을 거치고 세계적인 흐름이었던 헬무트 랭이나 질 샌더 등의 미니멀리즘 트렌드, 벤처 붐과 함께 한 스마트 캐주얼 같은 분위기를 거치며 보다 안전하고 실수가 없는 무채색 트렌드가 오랫동안 이어지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모범 답안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글로벌 트렌드의 최전선을 동시에 달성하는 꽤나 모순적인 미션을 수행해 왔습니다. 스마트 캐주얼을 비롯해 올 블랙, 무채색,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등 자연스럽게 패션 센스를 드러내는 방법들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사실 국내 상황을 보면 원색의 컬러를 도입하고 그 충돌이 만드는 불협화음을 즐겨보기에 상당히 괜찮은 환경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컬러 스타일링이 전신을 컬러로 덮는 적극적인 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국내의 경우 이를 보다 현실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 입던 무채색 베이스를 유지하면서 이너와 신발, 가방이나 모자 등 소품에 비비드한 컬러를 도입하거나, 컬러를 의도적으로 충돌시키는 방법입니다.
무신사나 29CM, 지그재그와 에이블리 등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쇼핑몰의 인기 많은 옷들이 다들 실루엣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옷의 형태 만으로 개성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어진 재료를 놓고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고 싶은 이들은 똑같은 옷을 입더라도 남들은 시도하지 않을 법한 컬러 제품을 찾아 조합하게 됩니다. 기성품을 입되 남과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방법을 능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트렌드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패션은 SNS에서 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컬러의 대비가 더 활발하게 사용되죠. 국내 브랜드들도 이런 흐름을 읽고 원색이나 컬러 블로킹이 돋보이는 룩북을 선보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특유의 시그니처 컬러를 활용하거나, 룩북 등을 통해 강렬한 색의 대비를 보여주거나, 시즌 컬렉션 속에서 흔하지 않은 컬러 조합을 시도하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그니처 컬러인 제트 블루(Z-Blue)를 미니멀한 디자인 위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 아더 에러, 북유럽의 감성과 한국의 스트리트 패션을 결합해 한 의류 안에서도 몇 가지 상극의 컬러의 이용한 충돌을 활용하는 앤더슨 벨, 어두운 고프코어 기반 위에 라임, 스카이 블루, 차콜, 브론즈 오렌지 같은 세련된 컬러를 활용하는 산산 기어 같은 브랜드들이 눈에 띕니다. 이외에도 오호스, 마뗑킴, 던스트 등등 컬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브랜드들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이 브랜드들은 강렬한 컬러를 남발한다기보다 무채색 일색이던 패션에 세련되고 어긋난 톤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일상복에서 접근하기 조금 더 쉬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찾아온 컬러의 시대, 컬러 패션은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온 컬러의 시대의 흐름을 보면 패션에 대한 태도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매스 트렌드의 시대에 수많은 트렌드의 이름들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사실 패션은 꽤나 비슷비슷하고 평탄해지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불안정과 디지털 노출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세월이 흘러도 유난스럽지 않으면서 럭셔리 대접도 받을 수 있는 ‘스텔스 럭셔리(조용한 럭셔리)’, 생존을 위한 기능성을 바탕에 깔고 있는 아웃도어와 고프코어, 우악스럽게 자신을 방어하는 발렌시아가나 릭 오웬스 같은 브랜드의 과장된 미학 등등. 이런 패션들은 적당히 자신을 감추며 세상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 로고와 브랜드가 빛을 내되 익명성 속에 파묻히는 방식을 제시해 줬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방어적 패션의 단조로움과 답답함에 대한 반동이 나타나기 시작한 상황입니다. 이에 더해 소비자들이 패션 세상에서 조금 더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데미지 가공, 자수, DIY 장식 등을 통해 기존의 심플한 제품을 변형하는 패션이 꽤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역시 개별화의 미감을 보여줍니다. 적극적인 컬러의 활용도 비슷한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지적받지 않기 위한 방어적 착장에서 시각적 자극을 활용하고 즐기는 방식으로의 전환입니다. 브랜드들이 컬러의 활용과 상품화를 제시하고 있고 그를 참고할 만 하지만, 사실 굳이 특정 브랜드에 구속되지 않아도 약간의 과감함만 발휘한다면 시도하기 좋은 방식입니다.
패션에서 컬러는 실루엣과는 또 다른 내러티브를 가집니다. 실루엣이 체형을 다룬다면 컬러는 입는 사람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죠. 특정한 컬러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시도하는 원색의 컬러와, 기존 패션 잡지에서 피하라고 하는 컬러 조합을 적극 시도하는 건 기성의 트렌드에 자기 나름으로 도전하는 방법이기도 하죠. 음식에서 나쁜 조합은 탈이 날 수 있다지만 패션에서는 그저 뭔가 어긋난 어색함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어긋남을 통해 자연스럽고 뻔한 가치만 추구하지 않는 것은 최근 패션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남들이 뭐라든 알게 뭐야’ 하는 태도를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과연 몇몇 주도적인 이들의 시도와 예측, 브랜드들의 기대처럼 다가올 계절에는 예전보다는 넘실대는 컬러의 충돌을 볼 수 있게 될지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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