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룸이 뭐길래? 백룸 뜻·리미널 스페이스부터 영화까지 한눈에 알아보기 🚪

백룸이 뭐길래? 백룸 뜻·리미널 스페이스부터 영화까지 한눈에 알아보기 🚪

고슴이의비트
@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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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제 유튜브 피드에 이상한 영상이 하나 떴어요. 썸네일에는 누런 벽지와 카펫만 보였고, 제목은 ‘백룸 기록 영상’(The Backrooms-Found Footage)이었죠. 클릭해 보니 20대처럼 보이는 청년이 90년대 느낌이 나는 캠코더를 들고 영화를 찍다가 갑자기 정체불명의 공간에 떨어지고, 9분 내내 헤매는 게 전부였는데요. 뭔가 익숙한데 이상하고, 무서운데도 계속 보고 싶었어요.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케인 파슨스(Kane Parsons)의 첫 ‘백룸’ 영상이었죠.

4년 후, 그 영상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영화로도 제작됐어요. 지난 5월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해서 저도 개봉 당일 극장으로 달려갔는데요. 미국에서는 개봉 6일 만에 누적 수익 1억 달러를 넘겼고, 힙한 영화 제작사로 유명한 A24 역사상 최고 흥행작 자리에도 올랐어요. 맥도날드, 이케아 등 글로벌 브랜드들도 백룸을 소재로 한 광고를 선보이며 트렌드에 동참하고 있고요.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백룸은 어떻게 누적 조회수 3억 5천만 회의 시리즈가 되고, 영화가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소재가 된 걸까요?


백룸은 어떻게 유명해졌을까?: ‘화질구지’ 사진 한 장, 전세계가 함께 키운 괴담이 되다

백룸은 2019년 5월 미국 커뮤니티 4chan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어요. 4chan의 미스터리 소재를 다루는 게시판에 ‘불편하고 어색한 이미지’를 올려 보자는 제안에 올라온 사진들 중 하나였죠. 사진 속 공간은 누렇게 바랜 벽지와 카펫 바닥, 형광등이 전부였는데요. 이렇게 텅 비었는데도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게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이후 다른 유저가 ‘게임 캐릭터가 오류 때문에 벽을 뚫고 맵 바깥에 떨어지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잘못 빠지면 이곳에 영원히 갇힌다’는 설정을 붙이며 더더욱 호기심을 자극했고요. 

백룸은 저작권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의 놀이터가 됐어요. 누군가는 끝없이 수영장만 이어지는 공간, 가구들이 기묘하게 배치된 공간 등 여러 레벨(level)을 상상했어요. 백룸에 갇힌 사람들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존재(entity)를 추가한 사람도 있었고요. 그러다 2022년, 16살이던 케인 파슨스가 3D 프로그램을 독학해 만든 9분짜리 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백룸은 하나의 장르가 된 거죠. 케인은 이후에도 꾸준히 백룸을 소재로 한 영상들을 시리즈로 제작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는데요. 여기에 주목한 A24가 케인에게 영화화를 제안했고, 올해 극장에 걸리게 된 거예요. 

브랜드들도 영화 개봉에 맞춰 백룸을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어요. 맥도날드는 백룸을 헤매다가 맥도날드 매장을 마주치는 '당신은 여기 와 본 적 있다(You've Been Here Before)' 영상을 올렸고, 이케아는 영화 속 소품처럼 자사 조명과 의자를 가져다 놨죠.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돌 르세라핌이 백룸의 미학을 활용한 티저 필름을 선보였고, ‘거제 야호’로 인기를 얻고 있는 리센느도 백룸을 소재로 한 쇼츠를 제작했어요.

이렇게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백룸 느낌의 공간을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라고 불러요. 원래는 네덜란드 인류학자 아르놀드 반 헤네프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전이 단계’를 뜻하는 학술 용어였는데요. 2010년대 들어 레딧 등 해외 커뮤니티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걸친 것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의미가 넓어졌어요. 이후 여러 사람들이 백룸 세계관에 살을 붙이고, 케인 파슨스의 시리즈가 히트하면서 대중적으로도 알려지게 된 거고요. 일본에서도 끝없이 반복되는 지하철 통로를 배경으로 한 게임 ‘8번 출구’가 큰 호응을 얻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도 이런 공간을 다룬 SNS 계정들과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고 있어요. 

백룸 열풍을 분석하는 관점도 다양해요. 무한하게 이어지는 디지털 공간의 감각이 현실과 뒤섞이면서 느껴지는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감정이 매력적이라는 분석도 있고, 사람이 사라지고 기능이 모두 멈춘 공간이 인간적 연결이 뜸해진 현대 시대의 불안을 비춘다는 분석도 나오죠. 90년대에 한 번쯤 본 공간을 닮아서 더 오싹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어요. 백룸이 향수나 불안을 느끼는 계기가 되는 건 맞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도 굳이 현실에서 백룸 같은 공간을 찾아다니고,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고, 패러디 콘텐츠까지 만드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기묘하게 무섭고 으스스하면 피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왜 사람들은 백룸이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요?


사람들은 왜 백룸에 매력을 느낄까?: ‘초가공 콘텐츠’의 시대, 정답 없는 이야기의 재미

저는 백룸 유튜브와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기 떨어진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상상을 정말 오랜만에 했어요. 길은 어떻게 찾을지, 정체불명의 존재를 만나면 어떻게 대할지 영화관을 나온 후에도 계속 상상했죠. 그러다가 문득 ‘어떤 콘텐츠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상상해 본 적이 언제였나’ 싶었어요. 요즘은 그럴 틈이 별로 없으니까요. 영화는 결말까지 정리된 요약본으로 보고, 드라마는 2배속으로 넘기고, 궁금증이 생기기도 전에 알고리즘이 다음 쇼츠를 보여주니까요.

미국 내과 전문의인 존 라 푸마(John La Puma) 박사는 이런 환경을 두고 “우리는 초가공시간(ultra-processed time)을 살아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어요. 꼭꼭 씹어 삼킬 필요가 없는 초가공식품처럼, 자극적이고 중독성 있는 콘텐츠들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거죠. 여기에 자동 재생과 알고리즘 같은 기능까지 더해져서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과정, 다 보고 난 뒤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지워버리는 거고요. 편한 만큼 우리가 직접 궁금해하고 상상할 일이 줄어드는 거예요. 

백룸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어요. 여기가 어디인지, 왜 떨어졌는지, 출구가 있긴 한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거든요. 그러니 보는 사람이 직접 그 여백을 채워야 하죠. 누군가는 복도 끝 괴물을 상상하고, 다른 사람은 어린 시절 다니던 상가를 떠올려요. 자기만의 백룸 층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요. 정해진 게 없다는 게 사람들을 그 안으로 끌어당기는 거예요. 

영화를 만든 케인 파슨스도 이 점을 언급했어요. 그는 인터넷이 수년간 백룸에 덧붙여 온 방대한 설정을 영화에 그대로 쏟아붓는 대신, 일부러 비워 두는 쪽을 택했다고 말해요. 인터넷이 쌓아 올린 설정을 빠짐없이 설명해 버리는 ‘설정 과잉(lore bloat)’만큼은 피하고 싶었다면서요.

끝까지 답을 손에 쥐여 주지 않는 것. 그게 백룸이 관객에게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인 셈이에요. 파슨스가 AI 대신 2800㎡ 스튜디오에 실제 세트를 지은 것도 같은 고집이고요. AI로 찍으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공간’처럼 느껴져 관객이 구석구석 들여다볼 마음이 사라진다고 봤거든요. 브랜드들이 앞다퉈 패러디에 뛰어들 수 있던 것도 결국 같은 이유예요. 비어 있으니까, 누구든 자기 것을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거죠.

물론 답을 주지 않는 이야기가 모두에게 편한 건 아니에요.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호불호도 분명히 갈리죠. 그런데도 다 차려진 콘텐츠가 쏟아질수록, 빈자리를 남겨두는 이야기의 힘은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 같아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신나게 상상할 수 있는 존재였는지 백룸을 통해 알게 된 거죠. 뉴니커는 결말 분석이나 해설을 찾아보지 않고 직접 빈칸을 채워 가며 본 콘텐츠가 있나요? 이번 기회에 백룸처럼 정해진 답이 없는 콘텐츠를 찾아가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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