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진정한 나 자신은 신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으로 실존한다는 개념을 떠나, 정신적 실존을 탐구하는데 있어서도 도움되는 수단인 것 같아요. 작년에 ‘나의 진정한 욕구’를 찾는 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요, 몇몇 책에서 공통된 맥락을 보며 그 해답을 ‘신체’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특히 ‘취향-심귀연 저‘ 책에서는, 개인의 취향이 다양한 분야에서 흔히 거론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취향‘이라는 게 진짜 스스로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요. 저자가 정의한 취향이란 ’몸이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이라고 하더라구요. 나의 신체를 통해 감각했을때 기분이 좋은 것이 곧 취향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진정한 나의 존재 확인)을 나의 신체의 감각과, 그 반응을 잘 들어보는 것으로 찾을 수 있다고도 보였어요. 이걸 인식한 이후로 저는 그 순간 나의 가장 순수한 감정과 생각을 찾기 위해 신체의 반응으로 검증(?)해보기도 하는데요. 가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면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를 감각하는 것도 헷갈릴 때가 있더라구요. 그럴 때 마다 무언가를 생각했을 때 저의 몸의 반응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몸의 반응을 잘 들을 때 마다 저는 진정한 저를 느낄 수 있었던지라, 진정한 나 자신은 신체로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모엘
2024.01.21•
안녕하세요, 지오님. 얼마전에 뉴닉에 소개하셨던 책을 소개해주셨네요. 철학자로서는 이에 가장 근접한 대답을 한 사람이 메를로-퐁티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떠한 객관적인 상태에서 표상된 언어로 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분명하게 명료하게 말할 수 없는 내 피부로 느껴지는 쾌의 "느낌"이 있겠죠.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몸의 철학이자, 애매성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의 사상을 따라가다보면, 지오님의 생각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철학사적으로 봤을 때 사실 신체의 역할을 매우 간과하고 멸시한 부분이 있었죠. 신체를 정신보다 열등한 걸로 여기고, 그저 욕망으로 인해 사유활동을 방해하는 그런 껍데기로 여긴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가 신체를 갖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면, 무언가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ㅎㅎㅎ 저 또한 지오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ㅎㅎ🙆
👍1
1
답글 1
모엘 님에게 도움과 영감을 주는 답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