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순율님! 반가워요~ 맞아요. 칼 포퍼의 반증주의라거나(반증이 되어야만 과학이라거나), 토마스 쿤이 이야기했던 패러다임(뉴턴의 패러다임에서 아인슈타인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이라거나.. 등등은 과학에 철학적 접근을 하기 위해 이야기가 되었던 거고.. 한편으로 순율님께서 말씀하신 논쟁은 지금까지도 떡밥으로 논의가 되고 있는 거겠죠. 사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일반적으로 우리가 필수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거시과학을 기준으로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흔히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연현상 그 자체죠. 학교 수업을 기준으로 볼 때, 국어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수학이나 과학에서 요구하는 것은 답을 내라는 거잖아요. 한편으로 이것도 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 모순율님이 앞서 언급했던 문제들은 미래에 과학이 더욱 발전한다면, 각 논쟁에 대한 답이 정해질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과학은 사유라기보다는, 관찰에 의거하며 사실을 다루기 때문이죠. 다만 인문학에 대해서는 의견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어야 논쟁이 성립하지 않겠죠. 찬반 논쟁이 가능하다는 것은 각자 주장하는 입장이 다르다는 겁니다. 객관적인 정답이 있다면, 모두가 동의하겠죠. 인문학이나 윤리학은 분명 상대성을 띱니다. 상대성을 띤다는 건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보편논쟁, 심신문제, 인과문제 등의 분석철학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은 모두 정답이 없기에 하나의 주장의 형태로 등장했겠죠. "1+1=2"인 걸 찬반을 가지고 이야기하진 않잖아요.ㅎㅎ 정교한 논증이 있는 것도 논리적인 반론이 있다는 건 인문학의 특징이죠. 그리고 학문이고 체계인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정답은 없죠. 정답이 있었으면 논쟁이 없었을 테니까요. 각자가 믿고 있거나 각자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신념들은 있겠죠. 그것의 총집체가 인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