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모님과 콘텐츠중독자님 댓글에도 많이 공감해요! 내가 지나온 시절을 현재로 겪고 있는 타인에 대한 타자화 없는 이해는 정말 어려운 작업인 것 같기도 해요. 관련해서 어린이 글방 교사인 친구가 또 다른 아동문학 칼럼을 공유해주어 관심 가져주신 분들과 같이 읽고 싶었어요!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0724214600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어린이 독자’에 대한 고려는 독자인 ‘어린이’에 대한 고려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어린이’에 대한 고려란 ‘어린이는 자기 일상과 관련된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독자 반응을 예측하고 그에 부합하려고 애쓰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어른인 나는(작가는) 타자인 어린이를 어떻게 이해하며 작품에 담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자기반성(해석)이었습니다. 창작이든 비평이든 아동문학을 하려면 반드시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성찰이 요청됐던 것입니다.” “아동문학의 폐해인 ‘동심주의’와 ‘교훈주의’에 대한 비판은 당시 창작과 비평의 실제 작업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유용한 기준이 되어 주었습니다. ‘동심주의’는 이미 1930년대 아동문학에서부터 비평 담론을 구성한 중요 개념이고 1970년대 이오덕에게서 또다시 부각됐는데요. ‘동심천사주의’라고도 하듯 어린이를 천사처럼 순진무구한 존재로 묶어두려는 문학적 시도에 대한 비판입니다. 어린이를 현실과 유리된 채 살아가는 천진한 존재로만 바라보며 작품에 그리는 건 세태에 찌든 어른이 자기 욕망을 투사하는 일이라고요. 어린이를 타자화하는 가장 흔한 태도일 겁니다. ‘교훈주의’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아동문학 작품을 접근하는 시선이고요.” “지금까지 아동문학은 타자(어른)의 억압에 대항하는 어린이 주체를 강조했지만 내일을 살아가는 어린이에게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인간 주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온 문명이 줄곧 반성의 대상이 되고 기후위기가 눈앞에 다가와 있는 세계에서는요. 자기완성과 자아 독립을 강조한 성장 서사 역시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자기 개발 서사와 뚜렷한 차별성이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부모가 어린이에게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고 어떤 좌절도 없이 완성되는 성공으로 이끌어 주겠다며 어린이 발밑에 난 잡초와 돌들을 제거하는 게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이요. 체제와 권위를 기계적으로 전복하던 과거와 다르고,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지도 않는 ‘어린이 주체’와 ‘성장’을 선생님께서 계시던 그때처럼 다 함께 북적이며 고민하고 싶습니다. 시대를 거부하는 욕심일까요. ‘동심주의’와 ‘교훈주의’ 비판이 빈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지금 얼마나 실질적인 비전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할 듯싶습니다. 혹시 저희 어른들이 ‘동심주의’를 염려하느라 어린이 재현에 막연한 거리를 두거나, ‘교훈주의’를 피하느라 모든 문학이 당연히 지니는 계몽성까지 도외시하지 않았는지 짚어 봅니다.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외국문학인 영미 아동문학을 보면 최근 ‘다양성’이란 가치를 아주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아동문학은 어떤 비전과 윤리를 공유하고 있는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바를 찾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