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이 고전을 다시 쓰는 법 빌려온 이름들이 맞이하는 새로운 결말
글. 최민서
사진출처. 쏘스뮤직
르세라핌의 음악에는 오래된 이야기에서 건너온 인물들이 살아 숨 쉰다. 인어공주와 히드라, 이브와 프시케와 푸른 수염의 아내, 흑조 오딜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까지. 오랜 동화나 발레처럼 오랜 역사를 거쳐 기억된 인물들에게는, 그들이 통과해온 시간과 끝내 맞이한 결말이 꼬리말처럼 따라온다. 그러나 르세라핌의 앨범에 당도한 인물들은 그 결말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개척해 나간다. 인어공주는 ‘The Little Mermaid’가 아닌 ‘The Great Mermaid’가 되어 육지 대신 더 넓은 바다를 택한다. 두려울 것이 없기에 강하다고 외쳤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두려움을 함께 나눌 이가 있어 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처럼 새롭게 쓰인 이야기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르세라핌의 서사를 완성하는 한 축이 된다. 우리의 뇌리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익숙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다시 쓰였는지, 르세라핌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해 들여다본다.
사랑보다 빛나는, 나라는 진주
르세라핌의 데뷔 앨범 ‘FEARLESS’의 오프닝 트랙이자 데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The World Is My Oyster’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동명의 다큐멘터리에는 르세라핌이라는 진주를 찾기까지 멤버들이 거친 고통스러운 과정이 담겨 있다. “この世界に満足できない / 世界を手に入れたい。**” 스스로 진주를 쟁취해낸 그들의 다음 목표는 세상을 손에 넣는 것이다. 르세라핌이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 곡 ‘FEARLESS’에서 “욕심을 숨기라는 네 말들은 이상해”라고 노래하며 욕망을 긍정하는 이유다.
같은 앨범의 수록 곡 ‘The Great Mermaid’ 역시 인어공주의 원제 ‘The Little Mermaid’의 ‘Little’을 지우고, 그 자리에 ‘Great’라는 수식어를 채우며 희생의 상징과도 같던 동화 속 인어공주의 의미를 전복시킨다. 원전은 인어공주의 자기희생을 숭고한 사랑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위대해진 르세라핌의 인어공주는 “I’m living my life / 원하는 건 다 가질 거야”라며 욕망을 긍정하고, 자신 앞에 놓인 양자택일의 상황을 거부하며 “목소릴 버리라니 crazy / 사라질 수 있다니 왜 이래”라고 되묻는다. 르세라핌의 메시지를 입힌 새로운 인어공주에게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버리는 행위는 “뒤틀린 사랑”일 뿐이다. 원작 속 인어공주는 희생정신을 인정받아 천국으로 승천하게 되고, 디즈니판 ’인어공주(1989)’에서 에리얼은 왕자와 결혼하여 육지에 살게 된다. 반면 르세라핌의 인어공주는 “차라리 내게 내놔 ocean / 세상을 내 바다로 덮쳐”라며 바다를 그들의 야망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재정의한다. “제동 없이 커져가는 꿈”일지언정, “포기만 안 하면 결국엔 truth”가 되리라 믿으며 이 세상을 본인의 바다로 덮치고자 하는 욕망과 기개를 표현하는 존재. 이것이 르세라핌이 제시하는 새로운 ‘The Great Mermaid’다.
무엇도 버리지 않는 사랑은, 바꿔 말해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Sour Grapes’는 이솝우화의 ‘여우와 포도’에 등장하는 여우를 화자로 삼는다. “갖고 싶어 손쉽게 / 낭만적인 fairy tale”라며 이 노래에서 르세라핌은 사랑의 낭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 쥘 수 없는” 사랑에 자신이 다칠 것을 직감하자, “그런 게 만약 사랑이면 맛보고 싶지 않아”라면서 희생이 필요한 사랑보다 자신을 선택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원전 속 여우는 손에 닿지 않는 포도를 “어차피 시어서 맛없을 거야.”라고 단정짓는 어리석은 존재로 그려졌다. 반면 르세라핌의 ‘Sour Grapes’ 속 화자는 사랑의 감정과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를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한다. 결국 르세라핌의 데뷔 앨범 ‘FEARLESS’가 이야기하는 두려움 없는 상태란, 진주가 되기까지의 고통이 따를지라도 과감히 목표를 쟁취하며, 그런 스스로의 욕망과 감정을 긍정하는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The World Is My Oyster : “Why, then the world’s mine oyster, which I with sword will open.”
**この世界に満足できない / 世界を手に入れたい。: 이 세계에 만족할 수 없어 / 이 세계를 손 안에 넣고 싶어
추락은 비상을 위한 연료
“I’m not afraid of storms, for I’m learning how to sail my ship.*” 루이자 메이 알코트의 ‘작은 아씨들’중 막내 에이미가 결혼해 집을 떠나기 전 남긴 대사다. 성장을 상징하는 이 문장은 ‘ANTIFRAGILE’ 앨범을 여는 곡인 ‘The Hydra’의 가사에서도 인용된다. 르세라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을 깜깜한 바다에 빠뜨려 보라(“私を黒い海に投げてみて”)고 말한다.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빠지는 과정 역시 이들에게는 오히려 “추락하며 추는 춤”일 뿐이다. 이들은 목이 잘리면 두 배로 자라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괴물 히드라를 페르소나로 삼아, 자신이 쉽게 무너질 거라 여기는 상대를 향해(“Do you think I'm fragile?”) 그렇다면 내 목을 한 번 잘라 보라(“私の首を切ってみて”)면서 꺾이지 않고 도리어 강해지는 재생력, ‘안티프래질**’로 응수한다.
원전 속 히드라의 적수는 불이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잘린 목을 불로 지지자, 히드라는 재생을 멈췄다. 그러나 르세라핌은 치명적인 파괴의 수단마저 스스로를 밀어 올리는 연료(“私を燃やしてみて(나를 태워 봐봐)”, “더 부어 gasoline on fire / 불길 속에 다시 날아 rising”)로 쓴다. 타이틀 곡 ‘ANTIFRAGILE'은 “가시밭길 위로 riding you made me boost up”이라며 고난의 순간과 힐난의 시선을 오히려 반기고, 이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toe shoes”, “무시 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처럼 실제 멤버들이 걸어온 길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은 아씨들’의 대사와 신화 속 히드라의 의미는, 폭풍우와 불길 같은 고난마저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는 르세라핌의 태도와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I’m not afraid of storms, for I’m learning how to sail my ship.” : 나는 더 이상 폭풍우가 두렵지 않아. 배를 운전하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
**안티프래질 : 충격을 가할수록 강해진다는 안티프래질은,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가 제시한 개념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히드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오디세이
동화 속 신데렐라는 왕자가 찾아올 날을 기다리다, 결국 그와 결혼해 공주가 된다. 그러나 ‘ANTIFRAGILE’에서 “갖다버려 줘 너의 fairy tale”이라며 동화 같은 삶을 거부하던 르세라핌은, 다음 앨범 ‘UNFORGIVEN (feat. Nile Rodgers)’의 동명 타이틀 곡에서 용서받지 못하는 빌런이 될지라도 신념을 지키겠다(“신념이 죄면 난 villain I'm not that cinderella type of a girl”)고 노래한다. 그들은 자신을 “freak”이자 “골칫거리”로 치부하는 세상의 시선을 “낡은 대물림”이라 부르며 맞서고, “바란 적도 없어 용서 따위는”이라며 빌런을 용서받아야 할 존재로 그리는 전통적인 플롯의 구조를 탈피하고자 한다.
‘UNFORGIVEN’의 수록 곡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역시 호기심으로 금기를 깨고 대가를 치렀던 여성들의 결말을 새롭게 쓴다. ‘구약성경’의 이브는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고 낙원에서 추방당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시케는 금기를 깨고 남편 에로스의 정체를 확인하면서 곤경에 처한다. 샤를 페로의 동화 속 푸른 수염의 아내 역시 남편의 명령을 어기고 금지된 방을 열었다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르세라핌은 “보지 말라 보고 파 날 둘러싼 이 금기들”, “Girl wanna have fun”이라며 금기를 깨는 과정이 주는 짜릿한 쾌감에 집중한다. “이게 타락이면 we fall fall fall”이라며 대가를 무릅쓸 것을 자처하고, “내 룰은 나만 정할래”라며 끝에 어떤 결말이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원하는 바를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르세라핌에게 정해진 선을 넘어서는 것은 비극의 발단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일탈이다. ‘구약성경’ 속 이브에게 옷은 수치심을 상징이자, 후대에까지 남겨지는 기나긴 죄의 낙인이다. 반면 르세라핌에게 옷을 입는 행위는, 타인의 신경을 쓰지 않고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며 즐길 수 있는 자기표현의 수단(“I'm a mess in distress / but we're still the best dressed / Fearless say yes, we don't dress to impress”*)이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Fire in the Belly’는 동화 ‘피노키오’ 속, 피노키오가 상어 뱃속에서 직접 불을 피워 탈출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 그리고 피노키오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웃어 웃어 더 인형이 되렴 / 싫어 싫어 난 인형이 아냐” 정해진 틀 속에서 인형처럼 움직이다가, 스스로 자아를 갖고 속박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Fire in the Belly’에서 르세라핌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너, 내 동료가 돼라”. ‘UNFORGIVEN’에서도 “unforgiven girls”와 “unforgiven boys”를 호명하며 “나랑 선 넘어 같이 가자”고 외쳤던 것처럼, 르세라핌은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난 모든 이들에 대한 연대를 외치고, 빌런들의 오디세이아를 쓰기 위해 함께 떠난다.
*“I'm a mess in distress / but we're still the best dressed / Fearless say yes, we don't dress to impress” : 난 엉망진창이지만 / 여기서 옷은 우리가 제일 잘 입지 / 겁이 없지 우린 / 잘 보이기 위해 차려입지 않지
흑조는 어떻게 주인공이 되는가
발레 ‘백조의 호수’ 속 흑조 오딜은 자신이 아닌 백조 오데트의 얼굴로 왕자 앞에 선다. 왕자의 사랑은 오딜이 아니라, 오딜이 연기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오데트를 향한다. 르세라핌의 앨범 ‘EASY’의 수록 곡 ‘Swan Song’에서 르세라핌은 오딜이 오데트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Blah, blah, blah, 또 뭐라 하겠지”라는 수군거림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는 오롯이 사랑받기 어려운 현실. ‘EASY’에서 “세상에게 난 반쪽짜리 seraphim, yeah”라는 고백은 이 선택을 설명한다. 온전한 자신으로는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자각과 그럼에도 반쪽짜리 천사로나마 사랑받고 싶다는 바람. 요컨대 ‘Swan Song’은 대중 앞에 서는 이들이라면 모두 경험할 수밖에 없는, 무대 위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을 그려낸다.
그러나 다른 얼굴을 택했다고 해서 세상의 시선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앨범의 수록 곡 ‘Good Bones’는 무대 뒤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그림자를 그린다. “불이 꺼진 스테이지 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이 나를 덮쳐”, “Inferiority / 하위 / 순위 / 成績 / 성적” 그리고 “끊임없는 증명” 앞의 “Doubt”. 사랑받기 위해 오데트의 얼굴을 택한 오딜처럼 무대 위에서의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난 뒤에도 그들을 향한 추궁과 비교는 여전히 숙제처럼 남는다. “그럼에도 나는 가라앉지 않아.” 르세라핌은 그림자에 잡아 먹히는 대신 무대에 남는 쪽을 택한다.
무대 위 르세라핌의 모습은 타이틀 곡 ‘EASY’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Yuh know that I make it look easy” ‘백조의 호수’에서 극의 주인공은 오데트지만, 관객들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순간은 연속 가장 고난이도의 기술로 평가받는 오딜의 32회전 푸에테(Fouetté)다.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를 모방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오딜이지만, 빌려온 모습으로 추는 32바퀴만큼은 가짜 오데트가 아닌 오딜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내 상처뿐인 다린 / Whip it whip 쉰 적이 없지”라는 가사처럼, 무대 위에서 여러 페르소나를 요구받는 르세라핌에게도 춤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Stage 위엔 불이 튀어, 내 body / Pull up and I rip it up like ballet”)이다. 이처럼 ‘백조의 호수’에서 사랑의 방해물로만 해석됐던 흑조 오딜의 이야기는, ‘EASY’와 만나면서 화려한 무대 뒤로 숨겨진 아티스트의 고뇌와 눈물을 대변하는 서사로 거듭난다.
맞잡은 손을 뻗고 두려움 저 너머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1818)’ 속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을 창조하지만,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괴물’로 여기며 혐오하고 방치한다. 창조주에게 버림받고 인간 사회에서도 배척당한 괴물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 괴물은 스스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강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선언 후 괴물은 끝없는 고독과 파멸의 길로 빠진다.
‘I’M FEARLESS’의 애너그램이 곧 팀명이기도 했던 르세라핌 역시 데뷔 곡에서 “I’m fearless”라고 선언했다. 그 후 몇 년이 흐른 2026년, 르세라핌은 정규 2집 ‘PUREFLOW pt.1’을 통해 두려움이라는 정서를 다시 들여다본다. 앨범의 인트로인 ‘Pureflow’의 가사는 괴물의 선언 “For I am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의 주어를 우리(‘We’)로 바꾸고, 두려움 앞에 이를 부정하는 ‘not’을 추가한다. “For we are not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 ‘FEARLESS’ 앞에 ‘not’을 붙이며 르세라핌은 내면의 약함을 인정하고(“You and me both, we’re all weak inside(‘Pureflow’)”), 다른 수록 곡 ‘iffy iffy’에서 “내 두려움도 이젠 같은 배를 함께 타게 된 my friends”라며 두려움을 부정하는 대신 끌어안는다. 그리고 ‘CELEBRATION’에서 축배를 들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It’s time to say goodbye 두려움이 없던 나에게)”. 그렇게 르세라핌은 ‘Creatures’에서 스스로를 “자유로운 상처투성이”로 재정의하기에 이른다.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에서 괴물은 빅터에 대한 원망을 죽음으로 갚지 않는다. 대신 빅터의 주변 인물들을 제거해 그를 자신과 같은 고독에 빠뜨린다. 만약 빅터와 괴물이 서로 교감을 했다면, 서로 손을 맞잡아줬다면. ‘Pureflow’는 마치 빅터와 괴물이 친구가 되는 상황을 가정하듯, 외로운 존재들이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연대하는 내용을 그린다. “힘들면 혼자 힘들지 / 남까지 힘들게 하자는 거야? / 구원은 셀프로 하시고” 서로를 향한 거리두기는 곧 반문에 부딪힌다. “You and me both, we’re all weak inside / What does that leave you with? / An ounce of pride? / Seriously?”*.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세워둔 벽은, 사실 상대방이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実のところ踏み込んでほしいんでしょう / 結局私たちって同じなんだから”**)이었다. 그래서 르세라핌은 “私と手をつないで落ちてくれて(내 손을 잡고 함께 추락해줘서) /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대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같이 휩쓸리자”. 이들은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나눌 존재가 있기에 끝내 강해진다. “For we are not FEARLESS, and therefore powerful”.
*“You and me both, we’re all weak inside / What does that leave you with? / An ounce of pride? / Seriously?”: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속은 나약하잖아 / 그래서 너한테 남은 게 뭔데? / 한 줌의 자존심? / 진심이야?
**“実のところ踏み込んでほしいんでしょう / 結局私たちって同じなんだから”: 사실은 더 깊이 다가와 주길(선 안으로 들어와 주길) 바라는 거잖아 / 결국 우리는 서로 같은 종류의 사람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