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의 좀비는 어떻게 진화했나_‘부산행’에서 ‘군체’까지

연상호의 좀비는 어떻게 진화했나_‘부산행’에서 ‘군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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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선우(‘씨네21’ 기자)
사진 출처. 쇼박스

연상호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다작가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해 그래픽노블, 실사 영화, 드라마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각본과 제작으로만 참여한 프로젝트를 포함하면 필모그래피는 더 두터워진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장르물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각기 다른 규모와 밀도를 자랑한다.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영화를 오가는 작업은 연상호 감독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이어진 ‘계시록’, ‘얼굴’, ‘군체’의 릴레이만 봐도 그렇다.

매체 특성에 맞게 유연함을 과시해온 이야기꾼에게도 한 우물이 있다. 바로 좀비를 묘사하는 것, 나아가 좀비로 세태를 은유하는 것. 지난 5월 21일에 개봉해 선전 중인 ‘군체’에 이르기까지, 연상호 감독은 뚜벅뚜벅 ‘K-좀비’의 초행길을 개척하는 중이다. 그의 좀비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걸어 왔을까.

신선한 소재, 익숙한 전개로 달린 ‘부산행’(2016) 
좀비로부터 딸을 지키려는 아빠의 사투이자 기차를 무대 삼은 군상극이라 요약할 수 있는 ‘부산행’은 수식어가 많은 영화다.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실사 연출작,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그리고 천만 관객 기록 등이 그 예다. 이 표현들은 ‘부산행’이 거둔 성과를 압축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에 특화된 과감함으로 학교 폭력의 여파(‘돼지의 왕’(2011))를 그리고, 인간과 신앙의 관계(‘사이비’(2013))를 묻던 연상호 감독이 국내에서 비교적 낯설던 소재를 큰 스케일로 영화화해 기록적 성공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그전까지 좀비란 할리우드를 필두로 한 서구권 콘텐츠에서야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신체들이 선사하는 공포란 아는 사람에게는 친숙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울 법했다. 이를 의식한 듯 ‘부산행’은 곧은 길을 매끄럽게 달린다. 달리 말해 연상호 감독은 좀비라는 장치를 감싼 모든 요소를 ‘아는 맛’의 풍미로 다듬었다. 재난 영화, 가족 영화, 무엇보다 오락 영화로서 관객이 익숙해져 있는 문법을 따르되 좀비라는 양념을 흩뿌려 적재적소에서 의외성을 제공하기. 이것이 ‘부산행’의 레시피다.

그렇다면 ‘부산행’ 속 좀비들은 무얼 하나. 빠른 주력을 지닌 그들은 주인공 일행 앞에 닥친 조건으로 기능했을 뿐, 동등한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등장인물 중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지 가늠하는 리트머스지에 가깝다. 핵심은 판별 결과와 생존 여부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 따위를 모르는 좀비들은 본능에 의해 먹잇감을 찾을 뿐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서스펜스가 발생한다. 다만 연상호 감독은 좀비의 탄생 배경에 주가 조작으로 득을 보고자 한 바이오 기업이 있었다는 맥락을 심었다. 그 의도는 프리퀄로 알려진 ‘서울역’에서 한결 거칠게 드러난다.

갈 곳 잃은 도시인들의 ‘서울역’(2016)
‘부산행’보다 개봉은 늦었으나 제작은 먼저 된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두 청년의 대화로 문을 연다. 그들은 보편 복지의 필요성을 논하다 한 노인을 발견한다. 청년은 목덜미를 부여잡고 걷는 노인에게 도움을 주려고 다가가지만 이내 코를 막고 되돌아간다. 노인이 서울역 앞에 사는 노숙자라고 손사래 치면서. 이 짧은 장면은 직관적인 아이러니를 각인시킨다. 입으로는 평등을 외치면서 몸으로는 그 기회를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 그게 ‘서울역’이라는 제목에 내포된 장소성이다.

앞서 휘청이던 노인이 좀비가 되고, 역 인근은 아수라장이 되면서 전작과 느슨한 연결 고리를 확보한 ‘서울역’은 또 한 번 ‘부산행’을 연상시키는 카드를 꺼낸다. 이번에도 서사의 중심에 딸과 아빠가 있는 것이다. 성매매 업소를 벗어나 애인과 동거 중인 여자가 딸, 인터넷 게시물에서 그녀를 봤다는 연락을 받고 길을 나서는 남자가 아빠로 불린다. 좀비의 습격을 피해 도망치던 그들은 결국 어느 모델 하우스에서 재회한다. ‘서울역’은 그때부터 더 잔인해진다. 가족인 줄 알았던 이들이 실은 고용 관계였다는 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좀비 사태 속에서 여자를 쫓던 남자의 동기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아닌 채무에 얽힌 원한이었다. 가족애를 강조한 ‘부산행’과 대비되는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좀비는 갈 곳 없는 도시인의 진화형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여자는 좀비를 따돌리며 시청역을 빠져나오다 집에 가고 싶다고 한숨짓고, 동행하던 노숙자는 그에게 공감하다가도 내겐 돌아갈 집이 없다고 울부짖는다. 즉, 좀비가 나타나기 전부터 정처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좀비라는 위협은 그들의 결핍을 더 강화하는 환경일 뿐이다. 그러다 좀비에게 감염되는 결말은 이미 오래된 불행에 마침내 순응해버리는 태도처럼 비친다. 쫓기는 인간으로 사느니 쫓아가는 좀비로, 집을 그리워하느니 집을 망각한 채로 살겠다는 체념. ‘서울역’에는 그런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본격 좀비 아포칼립스로의 초대, ‘반도’(2020)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도착한 ‘반도’는 다시 ‘부산행’의 장르적 쾌감을 돌려준다. 빛과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의 특징을 활용한 카체이싱 액션이 대표적이며, 초반부는 케이퍼 무비의 스릴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주인공은 좀비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한국을 떠나 홍콩으로 피신한 난민이라 할 수 있다. 그 출신으로 인해 차별받으며 살고 있는 그에게는 누나와 조카를 잃은 아픔과 언젠가 가족을 우선시하느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모녀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공존한다. 이야기는 그가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한반도로 회귀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좀비는 ‘부산행’에서보다 덜 위협적이고, ‘서울역’에서보다 덜 상징적이다. ‘부산행’의 좀비가 미지의 괴생명체로서 공포를 자극했다면, ‘서울역’의 좀비는 염세적인 세계관을 대변했다. 반면 ‘반도’의 좀비가 지닌 파괴력은 다소 아쉽다. 이쪽은 그저 상실과 자책에 휩싸여 있던 남자의 회복기에 동원되는 아포칼립스 배경의 일부로 느껴진다. 좀비마저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빌런들이 등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중 인간성 말살의 화신으로 그려지는 631부대는 좀비와 사람의 숨바꼭질 게임을 일삼는다. 어딘가에 갇혀 있던 좀비를 풀어 그들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도’는 조건이나 환경이 아닌 도구로서의 좀비를 선보인다. 이는 다른 좀비물에서도 등장한 묘사고, 좀비를 입체적으로 다루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다만 ‘반도’는 ‘부산행’의 평면적인 선악 구도를 반복하되 ‘부산행’만큼 직선대로를 달리지는 못한다. 좀비를 유희거리로 삼는 악당들의 위력을 좀비의 위력보다 강력히 표현한 가운데 주인공의 내적 성장에 집중한 결과일 테다. 아쉽지만 이는 ‘반도’ 속 좀비 현상에 대한 관객들의 해석 욕구가 다소 반감된 이유이기도 하다.

AI 시대를 향한 불안을 품은 ‘군체’(2026)
‘군체’는 제목에서부터 차별화된다. 이 제목은 연상호 감독의 좀비 유니버스에서 처음으로 공간이 아닌 집단을 가리킨다. 좀비가 헤집어놓은 곳과 그 안을 방황하는 사람들이 아닌 좀비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예고한 대로 ‘군체’는 지금껏 좀비의 발생과 습성을 간결하게 서술해온 연상호 감독이 준비한 회심의 일격과도 같다. 이번에 그는 누가, 어떻게, 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렸는지 상세히 설정해놓고, 생명공학 박사를 프로타고니스트로 내세워 수수께끼를 풀게 한다. 박사가 좀비의 기질을 하나둘 파악할수록 좀비의, 아니 좀비를 조종하는 안타고니스트의 목적도 베일을 벗는다. 그 답안을 역이용해 좀비로부터 탈출하는 게 박사의 역할. ‘군체’는 이 과정을 빠른 전개로 몰아붙이며 재미를 충족하는 와중에 문제의식까지 분명히 한다.

메시지를 운반하는 매개는 역시 좀비다. ‘군체’의 좀비는 집단지성으로 소통한다. 첫 감염체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모습은 집단지성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지성에 가까워 보인다. 그 획일화는 무기가 되기도, 구멍이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빌런은 불완전한 소통이 빚은 비극에 질려 바이러스를 개발했지만, 박사는 불완전한 소통일지라도 연대를 거듭하며 상황을 극복해 나간다. 개별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교훈은 그렇게 매듭지어진다. “보편적 사고의 총합”과 다름없는 AI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나리오를 발전시켰다는 연상호 감독의 결론은 명쾌하다. 장르 문법을 충실히 옮기는 것으로 K-좀비의 포문을 연 뒤 시대를 염려하는 좀비 영화까지 완성한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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