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이크가 그린 세 편의 자화상

드레이크가 그린 세 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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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게티 이미지, OVO Sound

2026년 4월, 드레이크(Drake)는 고향인 토론토의 한 주차장에 거대한 얼음 조형물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안에 새 앨범 ‘ICEMAN’의 발매일이 숨겨져 있다는 암시를 남긴다. 이 전례 없이 독특한 홍보에 열광한 팬들은 얼음 깨는 도구, 토치 등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얼음을 녹이려 애쓰는 모습은 SNS를 타고 퍼져 나갔으며, 결국 2026년 5월 15일이라는 발매일이 적힌 봉투가 발견된다.

이 홍보 방식은 다른 업계에까지 영향을 끼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예컨대 치키타(Chiquita), 쿠어스 라이트(Coors Light), 치폴레(Chipotle), 라네즈(Laneige), KFC 그리고 NFL의 뉴욕 자이언츠 같은 여러 유명 브랜드가 드레이크의 조형물에서 영감을 받은 자신들만의 조각상을 게시했다. 앨범이 공개되기도 전에 ‘ICEMAN’은 하나의 문화적 이벤트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5월 15일이 왔고, 드레이크는 약속대로 새 앨범을 발표했다. 그런데 한 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기다렸던 ‘ICEMAN’은 물론, 다른 두 장의 앨범 ‘HABIBTI ’와 ‘MAID OF HONOUR’까지 동시에 발매됐다. 그가 얼음 속에 숨긴 것은 발매일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드레이크는 모두의 시선을 ‘ICEMAN’에 집중시킨 다음, 그 뒤편에 훨씬 더 거대한 계획을 숨겨두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각각의 작품이 서로 다른 드레이크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아마도 수십 곡에 달하는 트랙리스트의 모든 곡이 같은 이유로 사랑받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곡은 랩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어떤 곡은 멜로디의 긴 여운으로 또 어떤 곡은 귀를 사로잡는 대중적 매력으로 각기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세 장의 앨범 전체를 살펴보기보다 각각의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핵심 트랙들에 집중해보려 한다. 각 앨범에서 반드시 들어봐야 할 하이라이트 트랙들이다.

‘ICEMAN’
‘ICEMAN’은 가장 랩/힙합 중심적인 앨범이다. 소울 샘플링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힙합 프로덕션부터 때로는 건조하고 음울하며 때로는 맥시멀리즘을 추구한 트랩 프로덕션까지 고르게 담겨 있다.

드레이크는 이 앨범에서 노래보다 랩에 무게를 싣고 감정보다 경쟁심을 앞세운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자 여전히 잘나가는 래퍼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추천 트랙 1) ‘National Treasures’
‘ICEMAN’에서 가장 중요한 곡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이 곡이다. 드레이크의 현재 스탠스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곡이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국보라는 단어를 자신에게 적용한 드레이크는 고향인 토론토에서의 절대적인 지위를 과시하며, 경쟁자들에게 토론토에 오래 머물지 말라고 경고한다. 타깃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켄드릭 라마를 겨냥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프로덕션은 이러한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비트는 불필요한 장식을 최대한 제거한 채 진행된다. 특히 음산한 신시사이저와 트랩 리듬이 어우러지며 흘러가다가 그레고리 하인스(Gregory Hines)의 ‘This Is What I Believe’(1988)를 샘플링한 비트로 변주되는 구성이 돋보인다.

이 곡에는 드레이크가 여전히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감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처럼 복합적인 감정의 결이 ‘National Treasures‘를 특별하게 만든다.

추천 트랙 2) ‘What Did I Miss?’
켄드릭 라마와의 거대한 디스전 이후 드레이크가 가장 집중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면 이 노래가 해답이 될 것이다. 제목에는 그가 느낀 당혹감과 의심 그리고 배신감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동안 협업과 공연 등을 통해 친분을 다져왔던 이들이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는지, 상황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정서는 프로덕션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트는 묵직하지만 과도하게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멜로디 역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절제된 균형을 유지한다. 그 중심에는 드레이크의 목소리가 놓여 있다. 그는 분노를 터뜨리거나 상대를 몰아붙이기보다 한 걸음 물러선 채 상황을 정리하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공격성보다 냉소와 체념에 가까운 피로감이 짙게 감도는 곡이다.

추천 트랙 3) ‘Make Them Cry’
앨범의 문을 여는 이 곡은 ‘ICEMAN’ 앨범 전체의 정서를 규정하는 선언문에 가깝다. 드레이크는 켄드릭 라마와의 디스전이 남긴 복합적인 상황과 감정의 결을 담아내는 동시에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긴장과 압박감 역시 꺼내 놓는다. 특히 적을 무너뜨리는 일보다 자신이 여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듯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드레이크는 이 곡에서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억눌러야 했던 수많은 감정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래서 ‘Make Them Cry’는 2026년의 드레이크가 어떤 심리적 위치에 서 있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로저 리들리(Roger Ridley)의 ‘What Am I’(1979)를 샘플링한 소울풀하며 멜로딕한 프로덕션이 노래에 인간적인 온기를 더했다.

‘HABIBTI’
‘HABIBTI’는 ‘ICEMAN’과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이 앨범의 중심에는 힙합보다 R&B가 놓여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컨템퍼러리 R&B의 감수성을 현대적인 프로덕션으로 재해석하는 한편, 최근 세계 대중음악의 흐름을 이끄는 아프로비츠와 중동·북아프리카 계열 리듬의 질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특히 공간감을 강조한 신시사이저와 절제된 드럼 프로그래밍은 드레이크 특유의 ‘심야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덕분에 ‘HABIBTI’에서는 래퍼가 아닌 싱어로서의 드레이크 그리고 감정을 서사로 만드는 송라이터로서의 드레이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추천 트랙 1) ‘Fortworth’
드레이크의 음악에는 오래전부터 도시의 야경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있었다. 눈부신 성공의 순간보다 모두가 떠난 뒤 찾아오는 공허함, 관계가 끝난 자리에 남겨진 감정의 흔적을 포착하는 데 그는 누구보다 능숙했다. ‘Fortworth’는 그 감각이 오랜만에 전면으로 드러난 곡이다.

절제된 드럼과 넓은 공간감을 강조한 프로덕션은 곡 전체를 부유하는 듯한 분위기로 이끈다. 그 속에서 사운드는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감싸안고, 리듬보다 정서의 결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한다. 피처링한 파티넥스트도어(PARTYNEXTDOOR)와의 협업도 성공적이다.

두 아티스트의 목소리는 같은 감정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추며 곡의 깊이를 더한다. 드레이크가 관계에서 비롯된 피로감과 후회를 비교적 선명한 언어로 풀어낸다면, 파티넥스트도어는 그 감정을 더욱 흐릿하고 몽환적인 질감으로 확장했다. 감정의 온도와 여백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움직임을 잘 포착해낸 곡이다.

추천 트랙 2) ‘Gen 5’

드레이크의 음악에는 관계의 시작과 끝을 노래한 곡들이 많다. 그러나 이 곡은 조금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별의 순간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도 아니다. 이미 균열이 생긴 관계 앞에서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돌아보는 순간에 가깝다.

곡의 제목은 5세대 글록 권총을 의미하지만, 노래가 진정으로 응시하는 것은 사랑과 거리감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에게 무언가를 건네지만, 그 모든 순간들 사이에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틈이 존재한다. 곁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닿지 못하는 감정, 가까움과 낯섦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어색한 긴장감이 곡 전체를 감싼다.

절제되어 있는 프로덕션은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차갑고 여백이 넓게 드리운 비트 위에서 드레이크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은 채 조용히 흘려보낸다. 덕분에 가사 속에 담긴 불안과 취약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HABIBTI’가 감정의 앨범이라면, 이 곡은 그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순간 중 하나다.

‘MAID OF HONOUR’
드레이크 신보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앨범은 ‘MAID OF HONOUR’다. 이 작품은 드레이크가 지난 10여 년 동안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팝, 하우스, UK 개러지, 아프로 퓨전, 멜로딕 랩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각각의 요소들은 개별 장르의 경계를 강조하기보다 하나의 글로벌 팝 언어 속에 녹아들었다.

드레이크는 오래전부터 특정 장르의 대표자라기보다 여러 장르를 연결하는 큐레이터에 가까운 아티스트였다. ‘MAID OF HONOUR’는 그러한 역량이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된 작품이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혁신이 아니라 숙련이다. 자신이 구축해온 음악 세계를 더욱 정교하게 확장하며 오랜 시간 축적된 감각과 스타일의 힘을 다시 한번 펼쳐냈다.

추천 트랙 1) ‘Cheetah Print (feat. Sexyy Red)’
이 곡은 완성도나 서사보다도 앨범이 추구하는 에너지를 가장 확연하게 보여준다. 드레이크는 경쟁이나 평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클럽의 열기와 순간적인 쾌감에 몸을 맡긴다. 섹시 레드(Sexyy Red)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극대화한다. 툭툭 떨어뜨리는 래핑으로 곡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사운드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몰고간다.

하우스, 마이애미 베이스, 팝랩 요소가 자연스럽게 뒤섞인 프로덕션 역시 장르적 정교함보다 분위기가 우선한다. 리듬이 시작되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만드는, 철저히 감각적인 음악에 가깝다. 그만큼 순간의 에너지와 쾌감이 잘 살아 있는 노래다.

추천 트랙 2) ‘New Bestie’
서로 다른 음악적 질감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팝 사운드로 엮어내는 능력은 드레이크의 강점 중 하나다. 이는 ‘More Life’ 이후 그가 꾸준히 발전시켜온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New Bestie’는 그러한 역량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난 곡이다.

노래 곳곳에는 저지 클럽, 댄스홀, 하우스의 흔적이 공존한다. 리듬은 꾸준히 형태를 바꾸며 움직이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멜로디는 가볍게 흘러가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잔상을 남긴다. 서로 다른 음악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듣는 사람을 부담 없이 끌어당긴다. 그 유연함이야말로 이 곡의 가장 큰 매력이다.

추천 트랙 3) ‘Outside Tweaking (feat. Stunna Sandy)’
데뷔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지만, 드레이크는 여전히 새로운 음악과 문화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티스트다. 떠오르는 래퍼 스터너 샌디(Stunna Sandy)와 함께한 이 곡에서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시카고 주크와 저지 클럽 음악의 즉각적인 쾌감이 뒤엉키며 전개되는 ‘Outside Tweaking (feat. Stunna Sandy)’은 최근 세대가 선호하는 속도감과 자극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온라인 문화의 리듬을 효과적으로 포착했다.

특히 드레이크는 자신의 강점인 멜로디 감각과 대중적인 설득력을 더해 곡을 한층 균형감 있게 다듬었다. 그 결과, 신선한 에너지를 유지하면서도 폭넓은 리스너층이 즐길 수 있는 형태를 갖췄다. 스터너 샌디의 무심하면서도 도발적인 플로우 역시 곡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요소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이지만, 끝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ICEMAN’이 래퍼 드레이크의 초상이라면, ‘HABIBTI’는 싱어이자 스토리텔러 드레이크의 기록이다. 그리고 ‘MAID OF HONOUR’는 글로벌 팝스타 드레이크의 완성된 모습이다. 세 장의 앨범은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인 동시에, 각기 다른 얼굴을 담아낸 세 편의 자화상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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