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것들을 위한 유토피아, ‘포켓몬 포코피아’

느긋한 것들을 위한 유토피아, ‘포켓몬 포코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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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연우(게임연구자)
사진 출처. 한국닌텐도

‘포코피아’에 대하여
‘포켓몬 포코피아(이하 포코피아)’는 발표와 동시에 포켓몬 팬덤 안팎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모았다. 포켓몬이라는 IP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이유는 충분했지만, 이 게임이 불러온 파장은 기존의 IP 팬들과 닌텐도 게이머 집단을 훨씬 넘어섰다. ‘닌텐도 스위치 2’ 품귀 현상 속에서도 이 게임을 위해 기기 구매를 고민한다는 반응이 이어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방대한 인기는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기존 시리즈 작품과 구별되는 ‘포코피아’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켓몬 포코피아’라는 타이틀명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포켓몬 시리즈의 제목은 오랫동안 일정한 틀을 따라왔다. 초대작인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에서 시작해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에 이르기까지, 본가 시리즈의 제목은 대체로 ‘포켓몬스터’라는 이름을 앞세웠다. 이는 외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포켓몬 카드 게임 Pocket’, ‘포켓몬 GO’처럼 이전까지의 시리즈는 ‘포켓몬’이라는 브랜드명을 서두에 강조해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점에서 ‘포코피아’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글로벌 출시는 ‘포켓몬 포코피아’라는 전형적인 규격의 제목을 따랐지만, 개발자들의 의도가 가장 강하게 드러난 일본어판에서는 ‘ぽこ あ ポケモン (poco a pokemon)’처럼 ‘포켓몬’이 후치된 형태의 제목이 사용되었다. 그래서인지 글로벌판 제목에서는 ‘포켓몬’이 전치되었음에도 ‘포코’가 보다 강조되어 ‘포코피아’라는 제목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포코피아’라는 낯선 단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포코피아’의 ‘포코’는 ‘천천히/조금씩’을 의미하는 ‘poco a poco’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확인되며, 접미사로 붙은 ‘피아’는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두 단어가 합쳐진 ‘포코피아’라 하면,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는 느긋한 것들을 위한 이상향‘ 또는 ’조금씩 천천히 즐길 수 있는 느긋함의 이상향’이 될 것이다. 따라서 ‘포코피아’와 그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이 지향하는 바인 ‘느긋함’을 파고들 필요가 있다. 

포켓몬 시리즈가 ‘느긋함’을 선택했다는 것
포켓몬은 언제나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시리즈였지만, 동시에 오래된 팬덤의 기억 위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제 9세대 동안 누적된 1,000개 이상의 포켓몬 종류부터 이들의 타입, 상성, 진화, 스킬 등의 규칙들을 간단하게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포코피아’는 팬덤의 기억 중 극히 일부만을 꺼내오면서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수용하고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포켓몬들은 대중적으로 친숙한 1세대 포켓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임 특성상 배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플레이어는 포켓몬이 직접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들의 특성을 적당히 고려하기만 해도 기본 골자를 전부 따라갈 수 있다. ‘포코피아’의 팬층이 각 포켓몬의 세부 특성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는 시리즈의 오랜 팬부터 기존 시리즈는 잘 모르지만 캐릭터 디자인에 이끌려 시작하게 된 사람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분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코피아’의 느긋함은 플레이 구조에서부터 드러난다. ‘포코피아’를 플레이하다 보면 게임이 시간 압박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안에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들이 촘촘히 제시되는 것도 아니고, 1일 미션을 끝내지 못한다고 게임 플레이에 큰 지장이 가지도 않는다. 포켓몬들이 다급하게 플레이어를 부르거나, 특정 행동을 즉각적으로 요구하는 일도 드물다. 도리어 이 게임은 플레이어를 기다리게까지 하는데, 서식지를 만들어두어도 새로운 포켓몬이 곧바로 찾아오지 않는다. 포켓몬들은 다른 일을 하거나, 주변을 둘러보거나, 그저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타날 뿐이다. 이렇게 ‘포코피아’는 다양한 플레이어를 같은 속도로 끌고 가는 대신, 플레이어가 각자의 속도로 다가올 수 있도록 느긋하게 기다린다. 

느긋한 것들을 위한 유토피아
‘포코피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은 인간들이 사라진 시점을 기준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포함한 박사와 모든 등장인물은 포켓몬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행동하지만, 사실 인간을 흉내내는 메타몽이다. 이 간단한 사실은 포켓몬 시리즈의 오랜 공식을 바꿔놓는데, 기존의 포켓몬 시리즈 게임이 인간 트레이너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포코피아’는 완전히 포켓몬을 중심에 놓고 전개된다.

지금까지 포켓몬 시리즈는 언제나 트레이너의 성장을 다뤄왔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인간 트레이너가 되어 포켓몬을 발견하고, 포획하고, 육성하고, 배틀에 내보내 승리한다. 여기서 주체는 언제나 인간 트레이너이며 포켓몬은 도구적으로만 존재한다. 물론 포켓몬 시리즈는 포켓몬들을 친구나 가족 같은 모험의 동반자로 그려오곤 했다. 그러나 이때의 포켓몬들은 언제든 트레이너의 성장 서사 안에 배치되었는데, 희귀한 포켓몬은 플레이어의 컬렉션이 되었고 포켓몬의 성장은 곧 인간 주인공의 성취로 환산되었다.

한편, 인간이 사라진 세계인 ‘포코피아’에서 포켓몬들은 전혀 다른 위상을 지닌다. 이곳에는 포켓몬을 포획해 도감에 채워 넣거나, 더 높은 랭크를 향해 달려 나가는 플레이어가 없다. 인간의 성취가 사라진 자리에서 포켓몬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전력이나 컬렉션으로 기능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한다. 여기서 포켓몬들은 쉬고, 걷고, 놀고, 머물고, 서로 어울리며 느긋하게 생활한다. 곧 인간의 시선, 경쟁, 효율, 수집욕이 뒤로 물러난 자리에서 비로소 포켓몬들이 자기 자신의 속도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 역시 포켓몬들의 느긋함을 지켜주도록 요구된다. ‘포코피아’에서 플레이어가 하는 유일한 일은 ‘포켓몬 생태계 복원’이다. 플레이어는 망가진 세계에서 물을 주고, 꽃과 풀을 심으며 포켓몬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인간이라는 외부 존재가 아니라, ‘메타몽’이라는 포켓몬의 일종으로서 다른 포켓몬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메타몽이 된 플레이어는 더 이상 세계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메타몽은 다재다능하지만, 본질적으로 남들과 같은 포켓몬이며, 능력 역시 다른 포켓몬들이 지닌 능력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게임에서 메타몽이 하는 모든 행동은 주체가 다른 주체와 맺는 호혜적인 관계 맺기다. 이렇게 이용이 아닌 상생을 지향한다는 것은 본가 포켓몬 시리즈와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인데, 지금까지 플레이어-트레이너가 포켓몬을 포획하기 위해 세계를 탐험하고 서식지를 발견한다면, ‘포코피아’의 플레이어-메타몽은 다양한 포켓몬들과 살아가기 위해 서식지를 복원한다.
 
빠르게 성장하고, 많이 소유하고,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세계가 아니라, 느린 존재들이 느린 채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이 게임은 바로 그 가능성을 포켓몬이라는 익숙한 존재들을 통해 상상한다.  ‘포코피아’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거창하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 모다피, 새로 만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파이리, 길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상해씨와 꼬북이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포코피아’는 포켓몬이라는 오래된 세계를 새롭게 만든다. 포켓몬을 더 빨리, 더 많이 소유하여, 더 강해지는 대신, 그들이 천천히 살아갈 장소를 마련하는 게임, ‘포켓몬 포코피아’는 느림을 결핍으로 보지 않고 긍정하는, 느긋한 것들을 위한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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