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영이 사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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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재현(‘씨네21’ 기자)
사진 출처. 쇼박스

왜 나는 문가영에게 이입할까. 평소 ‘나’를 주어로 상정해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 글만큼은 ‘나’를 밝히고 쓰는 편이 적절해 보인다. 나는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볼 때 안수영에게 가장 마음이 쓰였(으며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람들과 입에 거품을 물고 싸웠)고, tvN 드라마 ‘서초동’의 다섯 변호사 중에서도 김희지를 가장 응원했다.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속 이빨강이나 tvN 드라마 ‘명불허전’의 막개가 어른들의 속사정을 알아채면서도 남모르는 척 배려할 때, 그 깊은 시선에 나 또한 눈길이 갔다.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다가도 한정원이 이은호(구교환)와 헤어져도 은호 아버지(신정근)의 반찬만큼은 계속 먹을 수 있길 염원했다. 

왜 이성애자 남성인 나는 문가영이 연기하는 배역을 염려하고 그에게 심정적으로 동화할까. 잠정적 결론은 내가 아는 마음을 문가영 또한 알고 있다고 여겨서인 듯하다. 내가 알면서도 차마 꺼내두지 못하고 묻어둔 그 마음을 적어도 배우 문가영은 외면하지 않고 그의 연기에 녹여낸다. 이를테면 문가영은 ‘사랑의 이해’의 수영을 연기할 때 수차례 “배우는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를 설득해야 하지만, 수영에 한해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라며,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하고, 아닌 사람은 말고. 그래도 상관없었다.”라고 고백했다. 이는 수영의 지독한 회피 성향과 자격지심을, 그리고 이를 유발한 계급과 젠더의 중층 차별을 배우 또한 명확히 인지 중이라는 언표다.

캐릭터의 맨살은 자칫 그 하나의 특성이 인물 전체를 대변할 위험을 내포한다. 하지만 문가영은 인물의 단점은 다면적 인간이 보유한 수많은 속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태도로 배역이 현재 지경에 이른 상태 그 자체를 직시한다. 그러니까 문가영은 알고 있다. ‘후져’ 보이는 특성 앞에 변명하지 않을 때, 부러 허물 앞에 사족을 더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때, 캐릭터의 고유한 미덕이 비로소 그 결함 내부에서 발아한다는 것을. 문가영은 자기 배역을 연민하지 않음으로써 수영을 인간으로서 미화해낸다. 그렇게 문가영은 객체화될 수밖에 없는 인물을 감정적 주체로 이끈다. ‘사랑의 이해’와 ‘만약에 우리’를 떠올려보라. 두 작품 속 문가영에겐 상대 남성 배역이 있었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기실 남성 주인공이 시점 주체로서 서사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문가영은 주체의 시야에서 재단되기 쉬운 인물에게 입체성을 만들며 이야기 안에서 정념의 주체 자리를 선점한다. 그 성좌는 회피를 거부하는 용기 있는 자, 정확히는 용기 있는 배우만이 차지할 수 있다.

수영과 정원을 묶어 문가영의 세계를 바라보는 평자들은 두 캐릭터의 계급으로부터 공통점을 찾는다. 서울에서 자기 몸 누일 공간 하나 찾기 위해 분투하는 수영과 정원 속엔 연애가 틈입할 여유가 없고, 빈곤한 마음의 밭에 자존심이라도 챙겨야 겨우 사랑을 시도해볼 수 있다. 눈에 드러나는 공통점 외에 두 사람을 엮는 감정적 공통점은 방어기제다. 수영도 정원도 사랑 앞에 자기가 취약해질 때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어쩌면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를 발동한다. ‘만약에 우리’ 속 문가영의 연기가 탁월한 이유는 정원이 솔직하고 당당할 수 있는 원천을 비언어적인 요소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는 문가영의 눈이다. 정원은(이라고 쓰고 문가영이라고 읽어도 무방하다) 슬픔이 이미 제 것인지 오래라 이를 꺼내 보이는 건 문제도 아니라는 듯한 눈빛으로 은호를 바라본다. “나는 햇빛도 이만큼밖에 못 가지는구나. 그래서 슬펐어.”라며 은호에게 고백하는 정원의 눈엔 자기 처지에 대한 확신과 설움이 동시에 스친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최후 영점이 있다. 그 눈빛은 정원이 은호를 안을 때에서야 드러난다.

문득 질문. 우리는 연애 중 언제 상대에게 가장 솔직해질까. 적어도 나는 서로가 부재할 때 가장 솔직해진다고 믿는다. 연인과의 만남마다 거짓말을 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데이트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했을 때 나를 찾는 연인의 표정에서, 나와 만나지 않는 날 SNS에 올라온 연인의 문장에서 나를 향한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그래서 함께 있지만 나를 안고 있어 볼 수 없는 상대의 얼굴이 궁금하다. 다시 영화로. 정원은 “돌아갈 데가 없어서 무서워.”라고 말하며 은호를 껴안는다. 이때 은호는 볼 수 없는 정원의 눈에서 전에 본 적 없는 불안이 스친다. 관객만 볼 수 있는 눈빛이다. 정원은 이 불안까지는 은호가 모르길 바랐을 터다. 급기야 정원이 유독 주전자가 끓듯 우는 이유도 그 비명 안에 감추고 싶은 최후의 보루가 담긴 게 아닐까 예측하게 된다. 지금까지 언급한 정원은 영화의 시점에서 과거의 모습이다. 영화는 현재 시점의 건축가가 된 정원까지 비춘다. 과거와 현재의 정원을 연기적으로 구분짓는 요소 또한 눈(빛)이다. 과거의 정원은 하염없이 하늘과 상대를 올려다보는 반면, 현재의 정원은 은호를 내려다본다. 일견 오연해보이기까지 하지만 시선을 아래에 두는 정원은 더는 무얼 희구할 게 없는 사람의 고독을 눈에 담아낸다. 애써 방어기제를 발휘하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속내를, 문가영의 눈이 말한다.

반면 ‘사랑의 이해’ 속 문가영의 방어기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수영의 회피 성향으로 드러난다. 대화를 하더라도 수영은 확답을 하지 않고 질문 속에 숨는다. 자기 생각을 절대 말하지 않은 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만 한다. 그의 도피는 곧 자기 파괴로도 이어진다. 스스로 소경필(문태유)과의 추문을 직접 유포하면서까지 하상수(유연석)와 정종현(정가람)을 끊어낸다. 끝없는 잠수 속에 상수를 포함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수영은 자기 감정에 끝까지 솔직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수영에게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실패 후 치를 기회비용조차 그에겐 수지타산이 안 맞는 과소비다. 계급의식도, 가족도 온통 그를 압박해오기 때문에 자격지심이라도 붙드는 선택을 해야 나와 상대의 삶에 겨우 애착할 수 있다. 수영은 전진하다가도 후퇴한다. 그의 대사처럼 수영은 모래성을 제 손으로 쌓고 부수는 여자다. 언젠가 무너질 걸 알면서도 감정을 쌓고, 어차피 무너질 걸 알기 때문에 감정을 제 손으로 붕괴시켜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다.

근래 문가영이 기자들로부터 수차례 공통적으로 받은 질문이 있다. ‘사랑의 이해’와 ‘만약에 우리’의 홍보 활동마다 기자들은 문가영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를 물었다. 또 한 번 ‘나’를 불러올 차례.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짐작하면 기자들도 문가영은 사랑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진지하고 신중한 호흡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시대에 문가영이 체화하는 멜로는 시류와 확실히 다르고 그 다른 정서를 배우 본인이 구체적으로 이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일 터다. 문가영이 사랑에 대해 정의한 가장 최신의 답은 ‘선택’이다. 문가영에 의하면 여러 갈림길 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계속 허용할 수 있는”,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선택”하는 관계가 사랑이다. 문가영은 자기가 연기하는 여자들에게 끊임없이 반론의 여지를 허했다. 아마 그는 그만큼 수영과 정원을 사랑했나 보다. 문가영의 수많은 ‘선택’이 ‘사랑의 이해’와 ‘만약에 우리’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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